가히 '제국의 몰락'이라고 할 만합니다. 인텔 얘기입니다. 지난 16일 인텔이 53억 달러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파운드리 사업부를 자회사로 분사하는 사업구조 조정안을 발표했습니다. 창립 이후 50년 이상 내부 조직으로 두었던 반도체 제조 부문을 자회사로 떼어내겠다는 강수를 둔 건데요. 파운드리 사업부의 적자가 인텔 전체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고, 재무 구조를 개선하려는 목적입니다. 수십조 원을 투자한 파운드리 사업이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기도 전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결정한 건데요.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한 팻 겔싱어 CEO의 야심 찬 '반도체 제국 재건' 승부수는 결국 실패로 귀결되는 모양새입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제국을 건설했던 인텔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 때 PC용 중앙처리장치(CPU)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인텔이지만, 모바일칩 시장에선 애플과 퀄컴에게 뒤처져버렸고, 서버·PC 시장에선 AMD에게 추격을 허용했습니다. 첨단 공정 제조경쟁력은 TSMC에게 추월당했고요. 인공지능(AI) 기술로 초점이 바뀐 반도체 아키텍처의 거대한 변화도 놓쳤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 시장에서 이미 엔비디아에 밀려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제국의 몰락을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부분은 경영의 방향성입니다. 2010년대 들어 인텔은 기술보다 재무를 우선시하는 경영을 합니다. 비용절감을 해서 수익성을 높이고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에 주력했죠. 새로운 도전과 실험은 후순위로 밀렸고, 수준 높은 기술자들은 대규모 정리해고를 통해 자리를 잃었습니다. 인텔이 가지고 있던 엄청난 자원과 기술력을 생각하면 사실 차세대 시장에서도 충분히 선도적인 위치를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과 경영 속에 시장 변화 대응과 혁신에 실패했고, 후발주자들을 오히려 추격해야 하는 입장이 됐습니다.
몸집이 큰 대기업, 변화가 쉽지 않은 기성 기업이 어떻게 하면 혁신의 불을 댕길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룹니다. 대기업에게 혁신이나 새로운 사업분야 도전은 어려운 일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잃을 게 많은'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를 비롯해 다양한 영역에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삼성전자의 상황만 봐도 그렇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안주의 끝에 기다리는 건 도태이고, 도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기업, 기성기업이 어떤 방법을 통해 혁신할 수 있을지 오늘 뉴스레터를 살펴보며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벤처, 스타트업 활용을 넘어 혁신적인 의사결정이 나오게 하려면 조직이 어떤 기조를 갖춰야 하는지도 함께 챙겨보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1. 대기업은 문샷을 위해 세워진게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기성 기업에게 벤처기업을 본받으라고 촉구한다. 스스로를 파괴해 남들보다 먼저 과감한 혁신에 나서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실현 가능한 전략이 아니다. 기업 소유주들은 위험을 싫어하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려 하지 않는다. 대기업은 점진적 혁신에 의존하게 되고, 도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혁신 프로세스를 잘 관리하면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대기업은 다양한 역량,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획기적인 제품과 서비스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가적 파트너, 사내의 기업가적 관리자와 공유할 수 있다.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프로젝트별로 성공 가능성이 명확해질 때까지 육성할 수도 있다.
이런 접근법은 복잡 미묘하다. 신중한 관리가 필요하다. 필자들은 유럽 기업인 아틀라스 콥코, 에넬, 에피록 등 12개 이상의 대규모 다국적 기업을 연구했다. 이들 기업의 혁신 프로세스는 탐색, 헌신, 스케일업 등 3가지 필수 단계를 포함하고 있다.
2. 탐색 : 스타트업 찾기
기성 기업은 기존 상품과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고 고객의 선호에 적응하도록 설계돼 있다. 기업지배구조와 자본 통제가 그렇게 마련돼 있다. 그래서 다음의 3가지 관행을 따른다. 먼저 다양한 파트너십 구축이다. 화이자-바이오엔텍의 코로나19 mRNA 백신과 MS의 지원을 받는 오픈AI의 생성형 AI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명한 기성 기업은 보통 스타트업에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지만 초기 지분 투자는 피한다.
한 스타트업과의 단일 계약규모는 기성 기업이 다른 파트너와 협력하는 것을 방해해선 안 된다. 다음은 허브 구축이다. 벤처 팀이 회사의 중간 경영진, 일선 현장과 연결되도록 돕는 혁신 허브를 구축한다. R&D 부서, 액셀러레이터, 인큐베이터는 혁신 활동을 일반 비즈니스와 분리하는 경향이 있지만, 허브는 오히려 조직 전체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확산시킨다. 마지막으로 기업 내 인재 육성이다. 운영 관리와 일선에서 혁신을 지원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기회를 실험하는 관리자에게 대대적인 승진 보상을 제공하는 식이다.
3. 헌신 : 장점 활용하기
벤처가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면 희망과 기대가 치솟는다. 이때 기성 기업은 진지한 투자나 인수를 통해 헌신을 강화하기 시작해야 한다. 이 단계는 '불확실성의 통로'로 불린다. 성급하게 많은 돈을 투자하면 자원이 낭비되고, 혁신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이해관계자의 지원을 잃을 수 있다. 반대로 투자가 늦어지면 경쟁사나 다른 진입자에게 추월당할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게 다음의 4가지 질문이다. ① 실행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인가? 무엇을 어떻게 생산해 공급하고 수익을 창출할 것인가? ② 성장을 뒷받침할 생태계가 구축돼 있는가? 혁신 제품을 산업규모로 출시하기 위한 부품 개발자, 다운스트림 유통업체, 서비스 파트너 등 상호보완적 비즈니스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는가? ③ 고객은 얼마나 구매할 준비가 돼 있는가? 잠재고객 풀을 매핑했을 때 어떤 프로젝트와 파트너십이 우선순위에 있는가? ④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지지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회의적인 이해관계자와 규제당국을 설득할 방법은 무엇인가?
4. 스케일업 : 빠르게 움직이기
새로운 벤처의 비즈니스 모델이 실행 가능하고, 많은 사용자나 고객의 관심이 분명해지면 혁신의 적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시장 경쟁 또한 치열해진다. 그래서 기존 기업은 자원을 신속하게 동원하고 혁신을 빠르게 확장할 수 있도록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 이제 투자하지 않을 때의 위험이 투자할 때의 위험보다 더 커진다.
안타깝게도 바로 이 시점에서 기존 기업은 종종 겁을 먹는다. 막판 질문과 장애물로 신생 벤처 리더십팀의 실행을 방해하기 시작한다. 반도체 산업과 같이 다운스트림 비용이 높은 R&D 집약적 산업에서 흔히 나타나는데, 투자가 아닌 위험 회피로 빠르게 방향을 전환하곤 한다. 주저함에 따른 지연은 시장을 선도할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인재를 잃게 된다. 프로젝트 추진을 원하는 젊은 임원은,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경쟁업체로 이직할 수 있다.
'사업 > 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대 전용 계정 만든다는 인스타그램 (feat. 유해한 콘텐츠) (3) | 2024.09.23 |
---|---|
좋은 브랜드 슬로건의 요건 (feat. 우리 브랜드의 가치를 담은 한마디) (11) | 2024.09.20 |
부산과 함께 성장 중인 모모스커피 (feat. 현재까지 3개 지점) (7) | 2024.09.19 |
커넥트현대가 정말로 연결하고 싶었던 건 모든 세대 (7) | 2024.09.19 |
정기구독으로 가격 확 낮추어 기업화한 꽃집 (feat. 화려한 스타트업) (9) | 2024.09.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