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반짝 들어서고 후딱 사라지는 팝업스토어가 여전히 인기예요. 다양한 모양새와 형식의 팝업이 서울의 핫플레이스인 성수, 홍대, 강남, 도산, 가로수길, 연남 등지에 매일 새롭게 등장한 후 사라지고 있어요. 몫 좋은 동네는 이미 수개월치 예약이 꽉 차 있다네요. 백화점 내 팝업스토어도 사정은 마찬가지예요. 실제로 팝업의 성지라 불리는 서울 성수동의 연무장길에선 월평균 100개 이상의 팝업스토어가 열리는데요. 덕분(?)에 2019년 ㎡당 10만 원이던 대관료는 최근 25~30만 원대로 껑충 올랐어요.
뚝섬역 주변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3층 규모에 마당이 있는 건물에서 팝업스토어를 열려면 하루 2500만 원 이상의 임대료를 감당해야 하는데 하겠다는 브랜드가 줄 서 있다”라고 귀띔하더군요. 줄 서는 이유 중 하나는 기존 매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매출에 있어요. 일례로 백화점에 입점한 최상위 패션브랜드의 월 매출은 3억∼4억 원대. 더현대서울의 인기 팝업스토어의 경우 1~2주 운영 기간에 매출 10억 원을 넘기기도 했거든요. 여기에 오픈런과 입소문도 뒤따라요.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는 브랜드가 패션, 푸드, 문화를 넘어 금융 분야까지 확대되는 이유예요.
1. 오픈런·완판… 결국 콘텐츠
팝업스토어는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의미의 ‘팝업(Pop-Up)’과 가게나 매장을 뜻하는 ‘스토어(Store)’의 합성어예요. 2000년대 미국에서 시작됐어요. 당시엔 브랜드를 시장에 내놓기 전 임시 매장을 세워 소비자의 반응을 관찰하는 역할을 했는데요. 초기 팝업스토어는 최소한의 인테리어만 한 채 가판대 위에서 제품을 팔았기 때문에 투박하고 초라했어요. 그러던 임시매장에 패션이 접목되며 화려함이 더해졌고, 그 화려함에 소비자의 시선이 멈추자 유행을 타기 시작했어요. 국내에서도 첫 팝업스토어는 패션브랜드였어요. 2009년 제일모직의 ‘구호(KUHO)’가 선두주자예요. 트렌드에 민감한 브랜드들은 팝업스토어란 공간에 주목하고 있어요.
짧은 시간에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소비자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어요. 대중적인 브랜드부터 럭셔리 끝판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콘텐츠로 브랜드를 무장한 후 팝업스토어에 데뷔하는 것이죠. 루이 비통은 한식을, 아모레퍼시픽은 설화수 대신 고즈넉한 정원에서의 휴식을 내세워 팝업스토어를 열었어요.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팝업스토어는 벽에 설치된 수화기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했는데, 결과는 완판이었고요. 일부 팝업스토어는 럭셔리 매장에서나 볼 수 있던 오픈런까지 생겼어요. 그런가 하면 침대가 주상품인 시몬스는 침대 대신 ‘삼겹살 모양 수세미’ ‘햄버거 모양 포스트잇’ ‘이천 쌀 패키지’ ‘형형색색 농구공’ 등 이색적인 굿즈를 판매하기도 했어요.
부산에선 로컬 수제 햄버거 가게 ‘버거샵’과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발란사’, 호텔 세리토스, 케즈 등과 협업해 감각적인 공간을 구성했죠. 이른바 ‘침대 없는’ 시몬스의 팝업스토어는 색다른 경험과 신선한 재미를 중요시하는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했어요. 팝업스토어 기간 중 누적 방문객 수는 20만 명. 최저 1000원대인 굿즈의 매출은 약 11억 원에 이르렀다는군요. 김성준 시몬스 브랜드전략부문 부사장은 “매트리스(침대)는 매일 소비하는 게 아니라 구매 주기가 긴 가구인만큼 수시로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브랜드와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나아가 팬덤까지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젊은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계속 상기시키며 팬이자 고객으로 전환했던 것이 주효했다”라고 전했어요.
마케팅 컨설팅업체 디트리스의 조명광 대표는 관련 저서에서 “팝업스토어가 최근 더 이슈가 된 건 온라인 상점 발달의 반작용”이라며 “온라인에서 느낄 수 없는 경험과 감정을 오프라인 팝업스토어에서 느낄 수 있도록 시도하는 브랜드들이 생겨났고 이에 호응하는 소비자들이 팝업스토어에 몰리기 시작했다”라고 분석했어요. 그는 “물론 모든 기업이나 브랜드의 팝업스토어가 성공하거나 회자되지는 않는다”며 “MZ세대와 잘 파(Zalpha) 세대의 마음을 잡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라고 덧붙였어요.
2. 해외로 진출한 한국식 팝업
이른바 K-팝업의 위상은 해외에서도 기세를 올리고 있어요. 현대백화점이 지난 5월 일본 도쿄 파르코백화점 시부야점에 개설한 ‘더 현대 글로벌’ 팝업스토어는 단 한 달 만에 매출 13억 원을 넘어섰어요. 당초 목표를 50%나 넘어선 수치예요. 파르코백화점 팝업스토어 중 매출 기준으로 역대 1위 기록이기도 해요. 올 초 더현대 서울은 태국의 리테일 그룹 시암 피왓과 업무협약을 맺고 오프라인 매장 기획과 운영 방식 등을 전수하고 있어요. 시암 피왓이 이색적인 팝업스토어와 매장 구성 등 개장 2년 9개월 만에 연매출 1조 원을 넘어선 더현대 서울의 성공 공식에 주목했다는 후문이에요.
롯데쇼핑이 선보인 베트남 최대 쇼핑몰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에서도 한국식 팝업스토어가 인기예요. 잠실 롯데월드몰의 팝업 DNA를 성공적으로 이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826㎡(250평) 규모의 실내 아트리움 광장과 1653㎡(500평) 대의 야외 분수광장에서 현지 최초로 초대형 팝업스토어를 선보이며 ‘팝업=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라는 공식을 각인시켰어요. 팝업 누적 방문객만 100만 명, 팝업 1회당 평균 방문객은 3만 명이 넘어요. 최고 방문객을 기록했던 지난해 연말 샤넬 뷰티 팝업에는 약 10만 명의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네요. 지난해 9월 개장한 롯데몰 웨스트레이크하노이는 올 1월 누적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한 데 이어 6월엔 2000억 원을 넘어섰어요.
3. 온·오프라인 경계 없어져
마케팅 전문가들이 꼽는 팝업스토어의 장점은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어요. 첫째는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 형성이에요.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직접 경험한 후 바이럴(입소문) 마케팅까지 유도한다는 것이죠. 둘째는 낮은 비용으로 시장 진입 가능성을 테스트해 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1~2개월가량 운영해 고정적인 매장보다 적은 비용으로 소비자 반응을 확인할 수 있어요. 셋째는 제품 출시 전 주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의 소비행태를 마케팅에 반영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성공을 위한 첫 단계는 무엇일까요. 명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엔데믹 이후엔 온라인 시장의 한계를 보완하고 오프라인 시장의 강점을 살려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가 대세였다”며 “하지만 올 들어 높아진 팝업스토어의 임대료에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에서의 팝업스토어도 주목받고 있다”라고 전했어요. 그는 “소비자가 직접 상품을 경험해 보고 구매할 수 있는 방식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느냐가 여전히 중요한 문제인데, 우선 그 부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유명 브랜드나 아이돌들의 굿즈 관련 온라인 팝업스토어가 이어지고 있다”라고 덧붙였어요. 배일현 협성대 유통경영학과 교수는 “주소비층 인 MZ세대는 자신의 취향이나 주관이 확고하고, 소비 측면에서도 뚜렷한 소비 기준을 보이며 그에 따라 브랜드를 선택한다”며 “MZ세대와 얼마나 친밀하게 소통하고, 그들의 취향을 반영하느냐에 따라 미래 브랜드의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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