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광양회(韬光养晦), 유소작위(有所作为). 그리고 신품질 생산력(新品質 生産力)
그동안 중국이 보였던 일련의 대외정책 흐름을 요약하는 단어들입니다. 능력을 감춘 채 조용히 실력을 길렀던 '도광양회' 중국은 시진핑 정권 출범 이후 '유소작위'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겼습니다. 유소작위는 꼭 해야 할 일은 한다는 의미로, 도광양회 속 소극적 역할론에 가까운 방침이었는데요. 시진핑 정권 들어선 중국의 공세적 외교를 대표하는 개념이 돼 버렸습니다. 커져버린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만큼이나, 중국이 '꼭 해야 할 일'의 개념 또한 대폭 확장해 버렸거든요. '중국몽', 이나 '전랑외교'에서 보이듯 말이죠.
그런데 지난해 9월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입에서 '신품질 생산력'이란 말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거의 참석하는 자리마다 신품질 생산력을 강조하고 있어요. 기술 혁신에 기댄 생산력 향상을 의미하는 말인데요. 배경엔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대중국 제재가 있습니다. 미국의 견제에 맞서 과학기술을 혁신해 첨단 산업을 육성하고, 경제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슬로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도 진행 중이죠.
일각에선 신품질 생산력을 강조하는 것을 두고 중국이 도광양회로 회귀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합니다. 중국몽과 같은 키워드보다는 한 발 후퇴한, 대내적 실력 기르기의 느낌이 강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여전히 정면 돌파에 대한 의지를 좀 더 강하게 느낍니다. 신품질 생산력의 방점은 첨단 기술에 찍혀 있는데, 첨단 기술은 미국의 대중국 제재 기조인 '디리스킹'의 핵심 제재 영역이거든요. 결국 첨단 기술 자립을 통해 미국과 서방 세력의 디리스킹 공급망 포위선을 뚫어내고,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미중 간의 패권 경쟁,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중국 기업들은 스마트시티, ICT, 자율주행차 등의 사업은 물론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역량을 빠르게 강화하고 있습니다. 내수 만으로도 충분한 시장을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등에 업고 있는 만큼 우리 기업들에겐 엄청난 위협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 정부, 기업도 중국의 첨단 기술 자립 정책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겠죠.
2. 포천 500대 기업, 중국 만년 2위일 이유
2019년 우리는 중국이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을 더 많이 배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1995년 리스트 첫 발표 이래 미국이 줄곧 1위였고, 미국의 경제 규모는 중국보다 50% 더 컸던 시점이다. 하지만 불과 1년 후, 중국은 2020년 리스트에 124개의 기업을 올려놓으며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중국의 1위는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해 미국은 136개, 중국은 135개로 미국이 다시 1위를 탈환했다. 두 경제 강국이 근소한 차이로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생각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다시 1위 자리를 되찾을 가능성은 낮다. 단순히 코로나 때문에 경제가 일시적으로 탄력을 잃어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갖고 있던 경제적·사회적 요인들 때문이다. 크게 6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미국의 비즈니스 펀더멘털이 견고하다.
미국은 2023년 전체 1위 탈환뿐만 아니라, 상위권에 많은 기업을 올렸다. 상위 10곳 중 절반이 미국 기업이었는데, 지난 4년 동안 3개 기업이 늘어난 결과다. 순위 내 미국 기업의 매출은 평균 958억 달러로 중국 기업의 833억 달러보다 15% 더 많았다. 수익성도 중국 기업보다 114% 이상 높았다. 무엇보다 미국 기업들의 수익성 성장률은 27.6%로 중국 기업의 18.1%를 압도했다.
둘째, 일본과 유럽이 바닥을 쳤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이 얻은 거의 모든 이익은 일본과 유럽의 손실에서 왔다. 팬데믹과 회복기를 포함한 지난 4년 동안 일본은 500대 기업이 53개에서 41개로, 프랑스는 31개에서 24개로, 영국은 22개에서 15개로 각각 줄었다. 이들은 수십 년 동안 글로벌화로 수익원을 다각화했고, 서비스와 기술 기반 경쟁 우위로 중국 기업보다 앞서 있다. 중국 기업의 매출은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수익률 측면에선 주요 경쟁국에 크게 뒤처져 있다.
셋째, 중국에 대한 국제적 저항이 커지고 있다.
2023년 퓨리서치에 따르면 24개 국가 조사 결과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는 67%에 달했다. 특히 미국에선 2005년 35%에 불과했던 비호감도가 83%로 뛰었다. 남중국해에서 무역, 인권, 지식재산권, 데이터 통제, 영유권 주장을 둘러싼 마찰이 증가하면서 부정적 견해가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그밖에 중국의 노동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으며, 중국 대기업 대부분이 국영기업이라는 점도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중국의 부채 부담 역시 증가하는 추세다. IMF에 따르면 2022년 중국의 GDP 대비 민간 부채는 196%로 미국보다 28% 높았다. 부채가 많은 중국 기업은 자금 조달을 정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다만 중국 정부는 상상 이상의 방식과 범위로 대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에 서구 기업들은 다음과 같은 전략을 펼칠 수 있다. ① 적합한 비즈니스 경쟁 분야를 선택하고 ②현지 브랜드를 활용해 소유권을 모호하게 보이도록 하는 중국 기업의 전략을 역으로 활용해 중국 시장에 진출하고 ③ 중국 경쟁업체를 능가하는 혁신에 집중하고 ④ 중국 기업과 차별화할 수 있는 다양성을 경쟁우위로 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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