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과 변동성이 가속화되는 이 시대에 기업은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와 복잡하고 모호한 문제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승자가 반드시 내일의 승자라는 보장이 없죠. 때문에 과거의 경험과 노하우가 혁신의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현재의 성공에 만족해 안주하다 보면 뒤쳐지고 도태되기 쉽습니다.
작년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은 사명을 ‘메타 Meta‘로 변경했고, 지난 6월 70년 전통의 한 국내 대형 금융 그룹은 구성원의 공감과 합의를 바탕으로 기업의 존재 이유와 방향성을 재정립했습니다. 정답도 없고 끝도 없는 변화의 시대에는 현상 유지가 아닌 지속성장과 창조적 혁신만이 기업의 살길임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 변화의 시대에 주목받는 핀란드의 정신유산 ‘시수’
습관적 익숙함과 편안함을 벗어나려면 기업도 개인도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핀란드의 시수(Sisu)는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의 한계에 기꺼이 맞서는 강인한 정신력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 시도로 도전하는 핀란드의 국민적 기질이자 문화의 정수입니다.
회복 탄력성, 강인함, 근성으로도 번역되는 시수는 순간의 용기가 아니라 그 ‘용기를 버틸 수 있는’ 불굴의 정신을 의미합니다. 핀란드는 어둡고 혹독한 추위의 겨울이 6개월이나 지속되지만, 핀란드인들은 바꿀 수 없는 자연환경에 불평하는 대신 미리 대비하는 습관과 제도로 맞서서 즐기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나쁜 옷차림만 있을 뿐 나쁜 날씨는 없다’며 생각과 옷차림을 바꾸고, 한겨울에도 얼음 수영과 야외 활동으로 면역력을 높이며, 폭설에도 끄떡없는 제설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변화의 시작은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는 지혜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의 절대적 통제가 불가능한 환경 탓, 남 탓을 멈추고 변화에 어떻게 반응할지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실행하면서 용감하게 맞서서 시도하는 게 핀란드의 시수 정신입니다.
내수 시장이 협소한 핀란드의 지정학적 한계는 오히려 범국가적으로 과학 기술 교육을 강조하고 인재에 대한 실용적 투자를 촉진하는 기회가 됐어요.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로 유명한 알토대학교의 시작도, 매년 세계 각국의 투자자들과 혁신 기업들이 모여드는 스타트업 축제 ‘슬러시(SLUSH)‘도, 한계와 위기를 기회로 삼는 시수 정신으로 이뤄낸 결과입니다.
2. 실패경험의 가치, 노키아 브리지
핀란드의 시수 정신은 ‘노키아의 위기’를 ‘핀란드의 축복’으로 전환한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10여 년 전 노키아의 쇠퇴와 국가적 실업난을 극복하고 스타트업 국가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핀란드 전체로 실패를 하나의 경험이자 가치 있는 자산으로 여기는 문화가 확산됐습니다.
노키아는 실패의 원인을 구성원들에게 떠넘기는 대신 퇴직자 대상 창업 교육, 투자 지원, 기술 전수를 위한 ‘노키아 브리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노키아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온 구성원들의 새로운 도전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이는 새것을 시도하니까 실패해도 괜찮다는 ‘실패 용인 문화’와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경험의 가치를 높이 사는 ‘격려 문화’가 핀란드 기업의 보편적 문화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습니다.
실패를 두려워 않는 조직 문화에서 구성원들의 새로운 시도가 일상으로 자리 잡아야 기업의 지속성장과 혁신이 가능합니다. 핀란드 기업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을 선택의 문제로 여깁니다.
그래서 시행착오로 인한 창조적 실패는 받아들여도 시도하기를 실패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위험 요인을 염려해 시도조차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핀란드 기업들은 변화에 따른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계획하고 테스트하기를 반복하며, 유연하고 민첩한 수정과 보완으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합니다.
3. 샴페인으로 실패를 축하하는 슈퍼셀
하루 25억 원을 버는 직원 100명짜리 게임 회사로 유명한 슈퍼셀(SuperCell)은 새로 론칭한 게임이 실패할 때마다 일반 스파클링 와인이 아닌 진짜 샴페인으로 축하 파티를 엽니다.
슈퍼셀 창업자인 일카 파나넨은 “실패가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으로 성공한 게임들을 만들어냈고, 이는 슈퍼셀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라고 회고했습니다. 그는 “창조와 혁신의 시도가 성공하려면 어느 정도의 모험은 감수해야 하고,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면 아직 제대로 된 모험을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실패를 축하하는 문화는 시행착오의 경험을 동료들과 공유하고 서로 격려하며 구성원들이 다시 도전할 힘과 용기를 얻게 합니다.
4. 혁신을 위해 도전하는 핀란드 기업의 공통점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위험을 전제로 하고, 도전의 결과가 항상 성공한다는 보장 역시 없습니다. 하지만 넘어지지 않으려고 주저하기보다, 넘어져도 일어나 또다시 시도할 수 있어야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단 한 번의 실패조차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가 만연합니다.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하면 획기적 혁신의 시작이 될 새로운 도전마저 주저하게 됩니다.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포기하는 겁쟁이처럼 익숙함에 안주하는 태도는 곤란합니다.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걸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이제는 기업도 실패 강박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합니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으로 높은 수준의 혁신을 위한 도전을 거듭하고 있는 핀란드 기업들의 3가지 공통점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5. 수평거리와 성장잠재력을 위한 여백
핀란드 기업들은 구성원의 성취감과 성장을 위한 심리적 안전감 제공에 우선순위를 둡니다. 국내 한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된 핀란드 버스 정류장 사진처럼, 평소에도 2m 간격을 유지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핀란드 일상의 흔한 풍경입니다.
핀란드인들은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며 관계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합니다. 핀란드 기업에서는 이러한 물리적·심리적 거리와 더불어 서로 다른 역할과 전문 분야를 존중하는 구성원 간 ‘수평적 거리’를 유지합니다. 직책은 상명 하복의 수직적 관계를 의미하지 않고 리더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도 않습니다.
구성원들은 불필요하게 동료를 견제하는 대신 협력과 상생을 추구합니다.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리더와 스페셜리스트는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으며 치열하게 토론하고 맡은 분야의 전문가로서 각자의 업무주도성과 자율성이 보장된 구성원들은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며 성취감을 경험합니다.
또한 핀란드 기업은 구성원의 현재 역량뿐 아니라 미래의 성장을 위한 넉넉한 여백을 제공해 구성원 모두가 잠재력의 최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에 주력합니다. 기업은 인재 채용부터 나이 및 학력보다 지원자의 경력·경험과 더불어 성장 잠재력을 엿볼 수 있는 동기를 비중 있게 다룹니다. 입사 후 얼마나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어떻게 조직과 함께 성장해 나가느냐가 채용평가의 중요한 기준이고, 면접은 지원자의 이러한 동기·태도·가치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익숙한 환경에서 할 만한 일만 반복해선 창조적 발상 전환이나 파괴적 혁신의 열매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익숙한 편안함을 벗어난 구성원들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잠재적 가능성을 발견하기 시작하면 이는 기업의 혁신으로 이어집니다.
핀란드 기업들은 기업이 두려움 없이 새로운 시도를 실행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을 제공해야 구성원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업무에 몰입해 조직의 혁신과 성공에 기여한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제약은 줄이고 구성원의 권한은 늘리는 데 열심이고 진심입니다.
6. Why로 소통하는 질문 문화
‘모든 것의 시작에는 질문이 있고, 가장 현명한 대답도 현명한 질문 속에 있다’는 말처럼 질문은 창의성과 혁신의 시작입니다. 핀란드 기업은 ‘난센스도 없고 헛소리도 없다 ‘며 질문하는 문화를 장려한다. 질문은 주도적으로 문제를 발견하고 변화의 기회를 찾는 창의적·생산적 활동의 시작이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쇠입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앨리슨 브룩스 교수는 질문이 “조직 가치를 실현하는 독특하고 강력한 도구”라고 말합니다. 열린 질문은 상대방에게 생각을 표현할 기회를 제공하고 대답을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할 기회도 제공합니다. 브룩스 교수는 좋은 질문은 하면 할수록 지능과 탐구심을 향상해 우리를 더 나은 질문자가 되게 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어요.
핀란드 기업의 리더들은 구성원과 Why로 소통하며 각자의 역할과 가치를 조직의 목적과 방향에 맞춰 끊임없이 정렬하고 연계해 나갑니다. Why로 소통하는 조직 문화에서 구성원들은 ‘차별화된 결과(What)‘를 위한 ‘창조적 방법(How)‘을 추구하며 기업의 성장과 혁신 방안을 이끌어냅니다. 기업이 What과 How에 집중해 기능·기술 개선에만 치중하면 복제 가능한 범용화 제품과 서비스에 그칩니다.
하지만 복제 불가능한 각 기업의 존재 이유인 Why에 집중하는 구성원들은 고객을 감동시키는 제품과 서비스 개발을 통해 조직의 지속 성장에 기여합니다.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각자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의 한계를 극복하며 서로의 관점 차이를 좁히고, 정보와 지식을 교환하는 상호 학습을 통해 집단 지성 시너지를 발휘합니다.
이는 구성원들의 새로운 시도와 협업기회로 이어져 기업의 성과 향상과 혁신에 기여하며 예상치 못한 함정을 미리 발견해 리스크를 완화합니다.
7. 구성원 참여 기반 변화 관리 Change LabTM
대부분의 기업이 새로운 시도와 변화의 필요성을 공감하는데도 왜 여전히 많은 기업의 변화 관리 시도가 실패하는 걸까요? 맥킨지가 2008년 전 세계 3,000여 명의 임원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변화를 시도한 기업의 60~70%가 실패를 경험했고 대부분이 최고 경영층의 의지에서 시작된 경우라고 밝혔습니다. 이 결과는 변화를 강요하는 일방적 주입식 대신 구성원의 행동 변화에 초점을 맞춘 구성원 참여 기반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핀란드 헬싱키 대학교의 CRADLE 연구소에서 시작한 Change LabTM은 구성원이 변화의 객체가 아닌 ‘변화의 주체’가 되어 조직의 변화와 성장을 주도하는 ‘실무자 참여 중심의 프로젝트 방법론’입니다. Change LabTM은 유럽과 미국의 기업 현장에서 개인과 조직의 상호 활동체계를 이해·분석하고 문제의 근본 원인과 누적 요인을 파악해 조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Change LabTM은 각 기업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내부 전문가인 구성원 스스로 참여하고 공감하고 기여하면서, 집단 지성으로 구성원 행동 변화를 위한 최적의 설루션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구성원 스스로 ‘추상적 개념에서 구체적‘ 행동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 가능한 변화 시도와 실험을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배우며’ 변화를 내재화하게 됩니다. Change LabTM은 ‘구성원들을 위한’ 변화를, ‘구성원들의‘ 의견으로, ‘구성원들에 의해 ‘ 만들어 가는 과정이에요. 새로운 시도로 설루션을 찾고 변화를 주도하는 중심에 구성원이 있습니다.
찾아낸 솔루션을 일상업무에 적용해 새 루틴으로 정착시키는 역할 또한 구성원의 몫이고, 새로 정착된 변화·발전한 조직문화를 누리는 수혜자 역시 구성원입니다.
핀란드 기업들은 혁신과 지속성장의 토양인 ‘공정한 문화’와 창조적 발상과 집단지성 시너지의 플랫폼인 ‘다양성의 가치가 공존하는 문화’를 바탕으로 ‘시도하고 때론 실패해도 격려하며’ 지금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일할 맛 나는 조직문화를 위한 핀란드 기업들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은 ‘ 현재 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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