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8주년 기념 강연을 듣다가 약간 충격받았던 게 단순히 로봇 개발의 속도가 빠르다, 이런 게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이 참 쓸모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원래부터 쓸모없었다고 하면 할 말이 없는데, 그러니까 이런 거다. 내가 이해하는 한 독일철학이 바라보는 인간이라는 게 뭐냐? 자기반성이 되는 존재이다. 칸트부터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의 독일철학은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말하면 인간이라는 건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존재라고 본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른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아무튼 설명을 시도하는 게 헤겔의 <논리학>과 마르크스의 '노동' 개념이다.
인간이라는 건 부분의 합이 아니라, 부분의 합보다도 더 큰 '전체'로서 존재한다는 건데 나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과정도 딱 이 독일철학이 설명하는 메커니즘을 알고리즘화해야 가능하다고 봤다. 그래서 막연하게, 우리도 인간 정신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제대로 설명을 못하는데 그걸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게 가능하겠나? 정말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갖고 나중에 헤겔의 <대논리학>을 좀 잘 설명해서 인공지능이나 이런 거 개발하는 데 사용하면 재밌겠다.
뇌과학이나 인공지능 연구하는 지인들한테 물어보면 부분 알고리즘은 계속 발전하는데 이게 이 전체를 아우르는 보편 알고리즘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건 아직 잘 모르겠다. 막 그런 얘기를 해서 역시 어렵군 하고 막연하게 그냥 역시 인간은 아무리 기계문명이 발전해도 최후의 정신적 존재로서의 기능은 계속 수행하지 않을까, 하고 있었다.
2016년인가 2015년인가 그때 이런 얘기하면서 야, 왜 독일철학이 감각에서부터 시작하는지를 잘 이해해야 된다. 로봇이나 인공지능 개발 과정에서도 이 감각적 정보의 습득과 처리 메커니즘에서부터 시작해야 뭐가 될 거다. 마르크스나 헤겔이 '노동' 얘기를 하는 게 인간 정신의 발전과 연결돼 있는 거다. 아마 로봇도 고통, 말 그대로 고통 느끼는 게 아니라 그런 방식으로 감각정보를 습득하고 처리하는 그런 과정에서부터 출발해야 될 거다.
우리가 대부분이 감각정보를 무의식적으로 처리하듯이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이걸 재료 삼아 반성하며 발전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할 거다. 그런 얘기를 했는데 ESC 강연에서 이미 2014년 이럴 때 그런 메커니즘을 갖고 로봇의 기능을 막 발전시켰다는 걸 보고 경악했다. 아니, 헤겔 대논리학.. 이미 한참 전에, 아득히 넘어서 존재하고 있는 거다.
나 살아 있을 때 진짜 인간적인 지능을 갖춘, 자기 대상화가 가능한 존재로서의 인공지능이 만들어지겠는데? 인간 정신의 신비성 뭐 이런 거 없다. 그냥 그런 자기반성 메커니즘이 한번 정착되면 끝나는 거다. 학습이나 이런 게 아니라 전체로서 자기 자신을 대상화해서 재배치하고 뭐 하고 이러기 시작하면.. 근데 이미 한참 넘어선 것 같아서 와, 이거 진짜 끝났나 보다. 공포스러운 강연이었다. 자연의 '정신'으로서의 인간 존재도 이제는 무의미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재밌는 강연이었고 공포스러운 강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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