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헌법재판소가 47년 동안 적용되던 법 하나를 두고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단을 내렸어요. 우리나라의 모든 법은 최상위법인 헌법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에, 이 법은 조만간 국회가 뜯어고칠 것으로 보여요.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법은 ‘유류분 제도’ 예요. 유산 상속과 관련된 이 제도는 유가족의 혼란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최근 들어 점점 더 ‘불효자를 위한 제도’라는 비판을 많이 받아 왔어요. 그리고 결국 이번에 47년 역사를 마치게 됐어요.
1. 유류분 제도가 뭐야?
우리나라에선 고인이 별다른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면 ‘법정 상속 비율’에 따라 유산이 분배돼요. 고인의 자녀들은 균등하게 배분받고, 배우자는 자녀들이 각각 받는 몫보다 50%를 더 받는 게 원칙이죠. 배우자 1.5대 자녀 1인당 1의 비율로 분배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고인이 남긴 재산이 3억 5,000만 원이라면 배우자가 1억 5,000만 원, 두 자녀는 각각 1억 원씩을 법정 상속분으로 받게 되는 거죠.
그런데 만약 고인이 첫째한테 모든 유산을 물려주겠다고 유언을 남기면 어떻게 될까요? 고인이 한 푼도 주지 않겠다는 유언을 했다고 해도, 배우자와 둘째는 유류분 제도를 근거로 자신의 ‘유류분’을 달라고 주장할 수 있어요. 고인의 유언과 상관없이 상속인에게 돌아가는 최소한의 몫을 법으로 정해뒀기 때문이에요.
배우자나 자녀 등의 유가족은 앞서 설명한 법정 상속분의 절반만큼을 유류분으로 요구할 수 있어요. 3억 5,000만 원을 모두 첫째한테 주겠다는 유언이 있더라도 배우자는 7500만 원, 둘째에겐 5,000만 원의 유류분이 돌아가는 거예요. 첫째는 나머지 2억 2,500만 원을 가져가게 되고요. 이미 첫째가 ‘유언장 내용대로 하자’라며 유산을 모두 가져갔더라도, 나머지 유가족들은 소송을 통해 유류분을 받아낼 수 있어요.
2. 유류분 제도, 왜 만든 거야?
유류분 제도가 도입된 건 1977년이에요. 이전에는 고인의 유언대로 유산을 분배했어요. 첫째에게 재산을 몰아주든, 생판 남에게 재산을 남기든 고인의 자유였죠. 이 시대엔 남아선호사상이 워낙 강해서 재산 대부분을 첫째 아들에게 주는 경우가 많았고, 이 여파로 다른 가족이 생활고를 겪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고 해요.
유류분 제도는 1970년대까지 발생했던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도입됐어요. 도입 취지를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아요.
1) 너무 장남한테만 몰아줘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와 남아선호사상이 맞물려 장남에게만 재산을 몰아주는 일이 적지 않았어요. 성차별적이고 불합리한 유산 상속을 막을 법적 수단이 필요했죠.
2) 남겨진 가족들은 어떡해
당연히 재산 상속을 받지 못한 유가족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일도 많았어요. 어린 자녀가 유산을 한 푼도 받지 못한 경우엔 당장 생계를 위협받기도 했고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했어요.
3) 그 돈, 혼자 번 거 아니잖아
유류분 제도에는 고인의 재산이 혼자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라는 시각도 담겨있어요. 특히 과거엔 가족이 함께 농사를 짓는 일이 흔했고, 배우자뿐 아니라 자녀도 일꾼으로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함께 벌었으니, 유산도 나눠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거예요.
3. 근데 왜 위헌이라는 거야?
그동안 유류분 제도를 손보거나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예전엔 필요했을지 몰라도, 시대가 달라진 만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였어요. 지금 제도는 1977년에 만든 뒤에 한 번도 내용을 바꾸지 않았거든요. 유언대로 재산을 나눠주지 않는 게 고인의 재산 처분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왔어요.
헌법재판소는 꾸준히 제기됐던 다양한 지적을 고려해 유류분 제도 자체는 유지하되, 일부 내용은 폐기하고 일부는 보완하라고 판결했어요.
1) 패륜아는 유류분 상속 NO!
유류분 제도는 ‘상속받을 자격도 없는 이들에게 유산을 주게 만든다’는 비판을 많이 받아 왔어요. 부모와 연을 끊고 살던 자식이 갑자기 나타나 유산을 요구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에요. 기존의 유류분 제도는 정말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아니면 유류분을 요구할 수 있게 했거든요. 유류분 상속 대상에서 제외되는 건 고인을 살해하거나 살해하려고 시도한 경우, 고인을 협박해 유언을 바꾼 사실이 밝혀진 경우 정도에 불과했죠.
고인에게 배우자나 자녀가 없다면, 부모나 형제자매가 유류분을 받는 것도 가능한데요. 그래서 ‘나쁜 부모’가 유류분을 받아 가는 경우도 존재했어요. 실제로 몇 년 전 유명 연예인이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후, 20년 넘게 소식을 끊었던 친모가 고인의 유산을 받아 가 논란이 일기도 했죠.
헌법재판소는 고인을 생전에 장기간 유기하거나 정신적·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등 패륜적 행위를 일삼은 사람에 대해선 유류분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다만 이 조항은 2025년 12월 31일 안에 국회가 구체적 내용을 정해 법을 개정해야 적용돼요.
2) 형제자매 유류분은 폐지
헌법재판소는 고인 사망 후 배우자나 자녀가 없을 때, 부모와 함께 형제자매에게도 유류분을 주는 법 조항은 즉시 효력을 정지시켰어요. 앞서 언급했듯 유류분 제도는 가족이 상속재산 형성에 기여한 점을 고려해 만들어졌는데, 형제자매는 재산 형성에 기여한 부분이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유류분 제도가 있는 독일·오스트리아·일본 등 국가에서도 형제자매에겐 유류분에 대한 권리를 주지 않는다고 해요.
3) “더 기여한 사람이 더 받아야 해”
현재 유류분 제도는 고인을 오랜 기간 특별히 부양하거나, 상속 재산을 형성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어도 별다른 혜택을 인정하지 않아요. 노부모를 오랫동안 부양한 자식이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더라도, 형제자매들이 유류분을 달라고 법적으로 따지면 어쩔 수 없이 일부를 돌려줘야 하는 경우가 발생했죠.
헌법재판소는 앞으로 유류분을 산정할 때 기여도를 고려하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부모 부양이나 재산 형성에 더 기여한 자식이 더 많은 유류분에 대한 권리를 갖도록 하겠다는 취지예요.
4. 달라진 네 번째 판결
사실 헌법재판소는 세 차례나 ‘유류분 제도엔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적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이렇게 판결한 게 10년 전이었는데, 결국 네 번째 논의 만에 시대의 흐름에 따라 법을 뜯어고치게 됐어요. 헌법재판소는 “유류분의 헌법적 정당성은 계속 인정하면서도, 일부 조항의 입법 개선을 촉구했다는 의의가 있다”라고 설명했어요.
이번 판결을 앞두고 유류분 제도가 어떤 식으로든 시대에 따라 바뀔 거라는 전망이 우세했어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보니, 일단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던 점들은 개선이 된 것 같은데요. 우리 시대의 불합리한 제도들이 개선됐다는 소식, 앞으로도 많이 들려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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