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그렇게 일할 거면 사표 써!” 뭇 직장인들이 직장 상사한테 혼나며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말이죠. 그런데 이 “사표 쓰라”는 말이 해석에 따라 생각보다 큰 파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아시나요? 만약 이게 해고, 즉 ‘회사가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하고자 하는 의사 표시’로 받아들여지면 많은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해고하려면 말이 아니라 서면으로 해야 하고, 해고 사유와 시기도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합니다. 때문에 “사표 쓰라”는 말만으로 해고가 된다고 보면, 이는 요건을 갖추지 못한 부당 해고가 돼버려 회사가 각종 법적 책임을 부담하게 됩니다.
과거에는 이런 말을 바로 해고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다. 상사가 부하 직원을 실제로 회사에서 내쫓기보단 과오를 반성하고 앞으로 더 잘할 걸 기대하며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죠. 설령 진심으로 한 말이라 해도 사직서 제출을 종용하는 것일 뿐 근로 계약을 바로 종료하겠단 의사로 보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1. “사표 쓰라”는 말도 해고가 맞다!?
그러나 최근 이 말도 해고가 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됐습니다(대법원 2023. 2. 2. 선고 2022두57695판결). 사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A는 버스 회사인 B회사의 운행 기사로 근무하면서 이틀에 걸쳐 무단 결근했습니다. 이에 B회사 팀장은 화가 나 A에게 무단결근을 지적하며 말다툼하는 과정에서 “사표를 쓰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A는 “해고하는 것이냐”라고 물었고 B는 “응”이라고 답했습니다(이하 “이 사건 발언”). 그리고 A는 다음날부터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B회사는 A가 출근하지 않는 것을 문제 삼지 않다가, 3개월가량이 지난 후 A에게 “해고한 적 없으니 원하면 언제든지 출근해 근무할 수 있으므로 속히 나와 근무하기 바란다”라고 통지했습니다. 그러나 A는 이 사건 발언이 부당 해고라고 주장하면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과 2심은 모두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해고가 아니라고 봤습니다.
1) 이 사건 발언은 B회사 팀장이 A가 무단 결행 후 자신에게 무례한 언행을 한 것에 화를 내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한 표현임
2) 이 사건 발언은 사직서의 제출을 종용하는 것일 뿐 근로 계약 관계를 종료시키겠다는 게 아니고, A도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분명한 사직의 의사 표시를 한 적도 없으므로, A와 B회사의 근로 계약 관계가 종료됐다고 보기 어려움
3) 이 사건 발언을 한 B회사 팀장에게 해고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없고, B회사의 대표이사가 A 해고를 승인한 적도 없음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 발언이 B회사의 A에 대한 ‘묵시적’ 해고라고 봤습니다.
4) B회사 팀장은 이 사건 발언 직전 A에게 버스 키를 반납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는데 A가 버스 키를 반납하지 않자 B회사의 상무를 대동해 A를 찾아가 버스 키를 직접 회수했고, 그 과정에서 이 사건 발언을 함
5) 팀장이 상무를 대동한 상태에서 직원에게 버스 키 반납을 요구하고 동시에 사표를 쓰고 나가라는 말을 반복한 건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키고자 하는 의사 표시를 한 것으로 단순히 우발적 표현에 불과한 게 아님
6) B회사 팀장에게 A를 해고할 권한이 없었더라도, 해당 팀장은 상무를 대동한 상태에서 이 사건 발언을 했는데, 상무의 일반적 지위·권한에 해고 조치를 취할 권한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많음
7) B회사는 A가 이 사건 발언 이후 3개월이 넘도록 출근하지 않는 동안 아무런 출근 독려도 하지 않다가 A가 노동청에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을 한 직후에 이르러서야 갑자기 정상 근무 독촉 통보를 한 점을 고려하면, B회사 대표이사가 이 사건 발언을 묵시적으로나마 승인했거나 적어도 사후에 추인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임
결국 위 판결 취지에 따르면 부하 직원에게 “사표 쓰라”는 말을 가볍게 하면 안 될 겁니다. 사실 위 판결 이외에도 상사가 하급자에게 업무상 질책 과정에서 “이럴 거면 그만두라” “나가라” 등의 발언을 한 게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최근 다수 선고됐습니다. 법원 실무는 위와 같이 근로관계를 끝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에 엄하게 판단하는 듯합니다.
단, 위 대법원 판결이 문제 된 사안은 회사의 근무자가 7명에 불과했고, “사표 쓰라”는 말을 한 팀장뿐 아니라 대표이사, 상무도 A의 퇴사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큰 점을 고려했음에는 유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따라서 규모가 큰 대기업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사표 쓰라”는 말을 했다고 언제나 해고로 단정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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