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동료와의 수다는 일상의 활력소입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은 소소한 것까지도 얘깃거리가 되는데요. 특히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 관련 사건·사고는 구설에 오르기 좋은 소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다를 떨다 보면 직장 내 괴롭힘 같은 내밀한 일을 제3자에게 얘기하는 게 ‘혹시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는 건 아닐까’ 궁금할 때가 생깁니다.
1. 어떤 명예훼손이 죄가 될까?
먼저 명예훼손죄란 1) 공공연하게 2)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판을 저하시킬 수 있는 3) 구체적 사실을 적시할 때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이 요건들을 모두 갖췄더라도, 소위 ‘공공의 이익’이 인정될 경우에는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실무적으로는 ‘공공의 이익’이 있었는지 여부가 명예훼손죄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더 명확한 이해를 위해 양쪽 사례를 들어드리겠습니다. 법원이 ‘공공의 이익’을 인정해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본 사례, 이를 부정하고 처벌한 사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2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본 사례
A는 한 스타트업에서 2개월 근무하다가 퇴사한 직원입니다. A는 재직 당시 회사 대표 B가 직원들에게 술을 강권하거나 룸살롱에 데리고 가는 행동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A는 퇴사 약 11개월이 되던 어느 날, 인터넷 기사에 B가 디지털 시대를 선도하는 인재로 소개된 것을 보고 B의 실상을 폭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A는 자기 페이스북에 B를 지칭하며 “직원들이 지병이 있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모두 소주 3병은 기본으로 마시고 돌아가도록 했다”, “어떤 날은 단체로 룸살롱에 몰려가 여직원도 여자를 초이스해 옆에 앉도록 했다”는 글을 게시했습니다.
→ 법원은 A의 행동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공공의 이익’이 인정되기에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대법원 2020도15738판결)
1) 해당 회사가 소규모 스타트업일지라도, 디지털 시대를 선도하는 인재로 선정되어 인터넷에 소개되기까지 한 회사 대표가 고압적인 사풍을 조성했다는 점은 사회적 관심에서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2) A가 글을 게시한 주요한 동기가 당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던 ‘직장 내 갑질’이 소규모 스타트업에도 존재하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3. 명예훼손이라고 본 사례
A는 병원의 총무팀 인사 담당자입니다. 어느 날 같은 병원 원무팀 B로부터 “누구라고 말할 수 없으나 신체 접촉을 하는 남자 직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남자 직원이 누구인지 물어봤습니다. 그러나 B는 그 직원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고 “병원의 고충 처리 절차가 어떻게 되느냐, 그 절차를 믿을 수 있으면 이야기를 하겠다”라고 했고, A는 “팀장에게 보고를 하고 원장을 통해 인사위원회가 열리며 그 과정에서 물적 증거가 없으면 역공격을 당할 수 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B는 “외부 절차를 진행하려고 한다 “며 ”고소를 하려고 하니 지금까지 한 말을 비밀로 해 달라”라고 답했습니다.
그럼에도 A는 B가 소속된 원무팀 팀장에게 “B가 찾아와서 본인이 원무팀 직원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해서 외부 기관에 고발하려고 한다. 그러니 원무팀 남자 직원들을 조심시켜야겠다”라고 말했고, 위 사실로 B에 대한 명예훼손죄로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 법원은 A가 B 소속 팀장에게 B에 대한 성희롱 사실을 발설한 건 다음과 같은 이유로 B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보고 벌금형 4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춘천지방법원 2019노532판결).
1) 우리 사회에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여러 편견이 팽배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피해자가 회사 내에서 성폭력 피해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로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를 침해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A가 B에 대한 성추행 사실을 발설한 것은 B의 사회적 평판을 저하시키는 행동이다.
2) 설령 A가 인사업무담당자였다 하더라도, B의 의사에 반해 B가 당한 성희롱 사실을 발설하는 행위는 정당한 업무수행이라거나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없다.
4. 결론
‘공공의 이익’은 명예훼손죄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이에 대한 판단은 다소 자의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 기관에서는 ‘공공의 이익’의 범위를 좁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명예훼손을 당한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할 때 법원의 최종적인 판단 없이 함부로 ‘공공의 이익’ 유무를 판단해서 섣불리 무혐의 판단을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위 1번 사례도 검찰과 1, 2심 법원은 모두 유죄라고 봤지만, 대법원에서 비로소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러한 실무상의 이슈를 생각하면, 원칙적으로는 직장 내 괴롭힘과 같은 사건을 발설하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다만 공익을 위해 해당 이슈를 폭로하였음에도 수사 기관의 조사를 받거나 소송을 당하는 등 법적 책임을 추궁당하고 있다면, 최대한 이를 다퉈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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