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에 왔어요. 고추장으로 유명한 그곳이에요. 섬진강을 끼고 전라북도 내륙에 자리한 이곳은 여름 막바지에 메주를 빚어 말린 후 겨울에 고추장을 완성해요. 습지가 많은 분지라 고추장의 발효가 활발해져 여타 지방의 고추장보다 맛이 깊고 색이 곱다고 알려졌어요. 그런 이유로 마트의 고추장 코너에는 늘 브랜드명 앞에 순창이란 이름이 선명해요. 마치 브랜드명인 양 열에 아홉은 순창이란 명칭을 달고 있어요.
그런데 이 공식, 요즘엔 살짝 달라졌어요. MZ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SNS를 살펴보면 #순창 뒤에 #용궐산 #하늘길이 이어지고 있어요. 2020년에 첫 선을 보인 ‘용궐산 하늘길’ 얘기예요. 거대한 암벽 위에 놓인 약 1㎞(1096m)의 잔도(험한 벼랑에 선반처럼 달아서 낸 길)에서 바라본 풍경은 꽉 막힌 속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하고 탁 트였어요.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트레킹 코스’라고 소개한 누군가의 릴스, 괜한 호기가 아니었어요.
1. 섬진강 내려다보이는 아찔한 길
유명세를 탔으니 찾는 이가 많은 건 당연한 일. ‘용궐산 치유의 숲’에서 시작되는 트레킹 코스는 평일에도 찾는 이가 꽤 많아요. 넓게 펼쳐진 주차장이 있지만 주말엔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빽빽하다는 게 주변 상인의 전언이에요. 아예 일찍 서두르든지 늦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차를 대고 나설 수 있어요. 숲 앞으로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은 색이 푸르고 깊어요. 도심을 가로지르는 크고 넓은 강이 아니라 산골짜기를 타고 넘는 생기 넘치는 강이에요. 매표소에서 표(성인 4000원)를 끊고 입구로 들어서면 하늘길이 시작되는데요. 고개 들어 산을 올려다보면 거대한 암반에 나무데크로 낸 길이 지그재그로 선반처럼 걸쳐 있어요.
어떻게 저런 바위에 길을 냈는지 신기할 따름이에요. 하늘길 코스는 왕복 3.2㎞의 원점회귀코스예요. 매표소에서 하늘길이 시작되는 시점까지 600여 m의 돌계단을 오른 후 1㎞가량 나무데크를 오르면 하늘에 떠 있는 듯한 정자에 닿게 돼요. 비룡정이죠. 매표소 안내원에게 물으니 1시간 반이면 충분하다는데 결코 쉽게 봐선 안 돼요. 우선 하늘길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이어진 가파른 돌계단부터 버겁더군요. 작은 돌을 이어 붙인 게 아니라 커다란 바위를 퍼즐처럼 짜 맞춰 길을 냈는데, 오를 때나 내려올 때 모두 뛰는 건 금물이에요. 최대한 하나하나 심사숙고해서 발을 내디뎌야 무릎이나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아요. 곳곳의 나뭇가지에는 울긋불긋한 리본이 매달려 있어요. 전국 각지의 산악회 표식이죠. 그만큼 인기가 높다는 방증이에요.
2. 반질반질한 화강암 위로 오금 저린 잔도
나무데크 계단을 오르다 거대한 암반이 눈에 들어오면 그곳부터가 하늘길의 시작이에요. 언뜻 북한산 부럽지 않은 크기인데, 계단을 오르면 오를수록 시야도 넓어지더군요.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까지 시선을 멀리해도 섬진강의 끝은 보이지 않아요. 휴대전화 카메라의 파노라마 기능으로 이 모습을 담을 수 있을까 싶어 실행해 봤지만 눈에 담은 풍경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한 구도가 잡혔어요. 한참 오르막이던 계단이 평평하게 이어지는 지점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앞을 바라다보면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에 앉은 것처럼 하늘 위로 붕 뜬 것 같아요.
이 길, 혼자서도 좋지만 둘이 오르면 더 좋은 길이에요. 서로 손을 빌려가며 올라야 안전하기에 어쩌면 없던 정도 싹틀 수 있는 구간이죠. 비룡정에 올라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요. 오를 땐 두런두런, 도착지점에선 조용히 즐길 수 있는 이색적인 트레킹 코스예요. 아, 용궐산 치유의 숲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순창 5일장이 자리했어요. 개장한 지 100년이 넘은 이 시장은 순댓국이 유명하다네요. 특히 속이 꽉 찬 피순대가 일품이에요.
3. 용궐산 등산코스
1코스 하늘길 : 매표소→하늘길 시점→비룡정→하늘길 시점→매표소
2코스 용궐산 : 매표소→하늘길 시점→비룡정→된목→정상→삼형제바위→임도 삼거리→내룡마을→요강바위
3코스 용굴코스 : 매표소→하늘길 시점→비룡정→된목→정상→된목→용굴→용알바위→귀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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