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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New Art Gallery

오르세 미술관 - 철도역에서 미술관으로, 프랑스 근대 회화의 전당

by MINGFORMATION 2023.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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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 - 철도역에서 미술관으로, 프랑스 근대 회화의 전당
오르세 미술관 - 철도역에서 미술관으로, 프랑스 근대 회화의 전당

 

1. 오르세 미술관 - 철도역에서 미술관으로, 프랑스 근대 회화의 전당

오르세는 원래 19세기말까지 여러 관공서가 자리했다가 다시 1900년에는 철도 역사, 호텔, 쇼핑센터 등이 결합한 복합 기능 단지로 변신했다. 그리고 철도 산업의 부침과 함께 20세기 중반 폐쇄된 후 한동안 방치되었던 오르세 역사를 미술관으로 부활시키는 계획이 구체화한 것은 1977년 당시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의 역할이 컸다. 개조 작업이 마무리되어 1986년 문을 연 오르세는 오늘날 연간 방문객 300만 명을 헤아리는 파리의 명소가 되었다. 그리고 오르세 컬렉션의 대부분은, 프랑스 정부가 오르세를 19세기 중엽부터 1914년까지 프랑스 미술 작품들을 망라하는 허브 미술관으로 성격을 규정하면서, 퐁피두 센터, 죄드폼, 루브르 3곳의 미술관으로부터 관련 미술품들을 골라 옮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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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세 ‘소방관 미술’의 이상과 한계 - <뮤즈와 시인> <사하라에서의 저녁 기도>

근대 프랑스 미술이라고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인상주의를 떠올리기 쉽지만, 알고 보면 인상파는 오랫동안 아웃사이더(비주류 화풍)였다. 인상주의가 등장할 무렵까지도 프랑스 제도권과 강단 미술을 지배한 화풍은 여전히 신고전주의였다. 당시 미술 경향은 흔히 라 퐁피에, 즉 ‘소방관 미술’이라고도 반농담조로 불렸는데, 이는 파리의 소방관들이 쓰던 헬멧이 신고전주의에서 즐겨 소재로 삼는 그리스ㆍ로마 시대 전사들이 머리에 쓰던 투구를 연상케 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고전주의 화가들이 바로크 미술의 과도한 장식성과 경직성을 탈피하여 보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동시에 극적 묘사를 강조하는 혁신성을 보였다면, 신고전주의자들은 그리스ㆍ로마의 역사 및 신화 속 명장면을 화폭에 담는 것을 이상으로 여기며 점점 더 교조적 정형성으로 빠져들었다. 오르세 컬렉션에서도 신고전주의 회화 작품들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매우 아름답고 훌륭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창조력의 차원을 보여 주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 보수성을 띠기도 한다.

 

대세 ‘소방관 미술’의 이상과 한계 - &lt;뮤즈와 시인&gt; &lt;사하라에서의 저녁 기도&gt;
대세 ‘소방관 미술’의 이상과 한계 - <뮤즈와 시인>

 

1) 뮤즈와 시인

가령 루이 샤를 탱발(1821~1880)의 1866년경 살롱(주로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전람회) 출품작 <뮤즈와 시인>이 그 좋은 예다. 마치 당시 살롱 심사위원들의 입맛을 위해 맞춤형으로 제작한 듯한 이 그림은 신고전주의의 이상과 한계를 동시에 잘 보여 주고 있다. 깔끔하고 세련된 테크닉으로 그려진 그림은 매우 아름답지만, 등장인물들의 복장과 몸짓, 화면의 색조 등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말하자면 어떤 책에 들어가는 삽화 정도에 그칠 만한 소재를 불필요하게 확대했다는 인상을 준다.

 

신고전주의와 함께 19세기 프랑스 제도권 미술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경향이 오리엔탈리즘이다. 식민지와 시장의 확보를 위해 유럽 각 국가가 저마다 지중해 너머 동진을 시작하는 분위기 속에서 예술가들 역시 동방의 문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는 직접 이집트와 오스만 제국 등 현지를 방문하여 그 풍속과 풍경을 화폭에 담는 경우도 많았는데, 특히 프랑스 화가들이 이 방면에서 수준 높은 그림들을 많이 남겼다.

 

오르세는 뛰어난 오리엔탈리즘 화풍의 작품들 역시 대거 전시하고 있는데, 현지의 사정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저널리스트적인 시선보다는 먼 이국에 대해 유럽인들이 품은 동경과 판타지와 다소 타협한 듯한 낭만적 시선이 대세다. 동시에 오리엔탈리즘 미술은 신고전주의의 파생 상품이라고 볼 여지가 많다. 신고전주의 그림의 소재들이 시간적으로 동떨어진 고대, 중세였듯이 동양풍 회화들 또한 유럽인들이 이국의 신비를 물리적으로 한참 떨어진 현지까지 힘겹게 가서 경험할 필요 없이 안전하게 거실에서 즐길 수 있는 시각적 미디엄의 역할을 충실히 한 셈이다.

 

대세 ‘소방관 미술’의 이상과 한계 - &lt;사하라에서의 저녁 기도&gt;
대세 ‘소방관 미술’의 이상과 한계 - <뮤즈와 시인> <사하라에서의 저녁 기도>

 

2) 사하라에서의 저녁 기도

오르세에 전시된 오리엔탈리즘 작품 가운데 나름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귀스타브 아실 기요메(1840~1887)의 <사하라에서의 저녁 기도>다. 1863년경 살롱전에 출품되어 호평을 받았던 이 그림은 막 해가 진 사막과 하늘을 배경으로 기도를 올리는 유목민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편견과 왜곡이 들어간 흔적이 별로 없으며 그야말로 북아프리카의 이집트나 수단을 방문한 유럽 여행자가 먼발치에서, 약간은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을 현지인들의 삶 한 장면을 충실하게 화폭에 펼쳐 놓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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