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루브르 박물관 - 왕궁에서 미술관으로, 절대 왕정의 보물단지
루브르는 프랑수아 1세가 파리의 센 강변에 있었던 중세 군사 시설을 왕궁으로 개조하기로 한 1546년부터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 정착한 1682년까지 역대 프랑스 국왕 8인의 정궁이었다. 그들은 예술 애호가로 생전에 미술품 수집과 예술가 지원에 열성이었고, 그렇게 모은 예술 컬렉션은 오늘날까지도 루브르 소장품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프랑스혁명 이후 공공 미술관으로 변신한 루브르는 나폴레옹이 대권을 잡으면서 더욱 성장했다. 유럽은 물론 지중해, 중동에서까지 정복 전쟁을 벌인 나폴레옹 군대가 각지에서 거둬들인 예술품과 문화재들이 루브르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상당 수준의 인문 교양인이었던 나폴레옹은 뛰어난 예술품, 역사적 유물을 보존하고 전시하여, 프랑스 국위 선양에 기여할 시설로서 루브르의 역할에 주목했다. 당시 루브르의 공식 명칭이 다름 아닌 ‘나폴레옹 박물관’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루브르는 그야말로 프랑스 역대 지배자들이 남긴 보물단지다.
2. 때론 완전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 - <날개를 펼친 승리의 여신> <밀로의 비너스>
루브르 관람의 하이라이트라고 하면 두 조각상, <날개를 펼친 승리의 여신>과 <밀로의 비너스>를 만나는 경험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두 조각은 원래의 모습에서 일정 정도 훼손된 상태로 발굴되었다. 그럼에도 두 작품은 완벽함 혹은 완성됨을 영영 잃어버린 덕분에 전혀 새로운 차원의 미적 자산을 획득하는 역설, 반전을 이루어 냈다. 비록 온갖 상상력과 과학적 추정을 동원하더라도 결코 완성에는 다시 도달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그 조각들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1) 날개를 펼친 승리의 여신
<날개를 펼친 승리의 여신>은 <사모트라케의 니케>라고도 불린다. 영어로 ‘나이키’라고 발음하는 니케는 운동화 회사 이름이기 훨씬 전에 이미 그리스 신화 속 승리의 여신이었다. 신화에 따르면 니케는 원래 티탄족 출신 거인 팔라스와 물의 정령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데, 제우스의 총애를 얻어 승리의 메신저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문명 초기에 니케는 그저 전쟁의 신 아테나의 들러리 비슷한 역할로 별 존재감이 없었다. 하지만 후대로 갈수록 점점 각광받은 끝에, 드디어 폴리스마다 큰 전쟁이나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며 니케에게 감사의 제사를 올리는 풍습이 성행하게 되었다.
1863년, 프랑스 외교관이자 아마추어 고고학자였던 샤를 샹프와조가 니케상을 발견했을 당시 몸체와 날개, 옷자락 일부 등이 모두 따로따로 흩어져 있었지만, 파리에서 수년간의 복원 작업 끝에 오늘날의 모습을 회복하게 되었다. 니케상을 떠받치던 뱃머리 모양의 받침대 역시 1879년 조각난 상태로 발견되어 이후 복원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 전통과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여신상은 옷깃의 방향과 활짝 편 날개로 볼 때 강한 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막 지상에 내려앉은 순간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
물론 현재의 모습이 너무도 유명하고 우리에게 익숙하기는 하지만 애초에 머리도 팔도 없는 여신상을 만들었을 리가 없다. 실제로 1차 발굴 당시부터 샹프와조는 현장에서 사라진 머리를 찾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고, 2차 발굴에서는 오른손과 손가락 등을 수거하는 수확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여신상이 만들어질 당시 얼굴은 물론 정확히 어떤 포즈를 취하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파손된 지금의 형상으로도 니케상이 새로운 차원의 미학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날개’ 덕분이다. 그 활짝 펼친 날개의 존재감은 조각이 지닌 다른 모든 결함을 압도할 정도로 크고 강력하다. 여기서 날개는 여신에게 부속된 기관이기는커녕 오히려 여신의 몸체가 활짝 펼친 날개를 지탱하기 위한 받침대 역할을 하는 듯한 시각적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렬하고 찬란한 포스를 발산한다.
2) 밀로의 비너스
루브르의 또 다른 자랑인 <밀로의 비너스>는 니케상의 경우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비너스상은 1820년 에게해의 밀로스섬에서 현지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 뉴스는 마침 밀로스 현지에 주둔하고 있던 두 명의 프랑스 해군 장교들의 귀에 들어갔다. 조각의 가치를 눈치챈 이들이 상부에 보고했고, 오스만 제국에 파견되었던 프랑스 영사 리비에르 후작이 조각을 1,000프랑에 구입하여 루이 18세에게 바쳤다. 이를 다시 루이 18세가 루브르에 기증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니케와 마찬가지로 비너스상에서 사라진 두 팔(오른팔은 팔꿈치 바로 위에서, 왼팔은 아예 어깨 부분 옆에서부터 사라졌다)이 어떤 포즈를 취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도 여러 가설이 제시되어 왔다. 이는 아무래도 그 조각이 어느 여신을 묘사한 것인지와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가령 그 정체가 아르테미스라면 사라진 두 팔은 활을 들고 화살을 사냥감에 겨누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아프로디테라면 트로이 전설에서처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 앞에서 불화의 사과를 들고 유혹하는 포즈였을 수 있다. 혹은 연인인 전쟁의 신 아레스 (로마식 이름 ‘마르스’) 앞에서 한창 교태를 부리는 순간을 묘사했을 수도 있다. 특히 이 시나리오가 설득력 있는 이유는 골반 아래까지 내려온 튜닉 덕분이다. 완전히 벗은 것도, 완전히 입은 것도 아닌 그 모습은 성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2미터가 넘는 키의, 가볍게 몸을 뒤튼 여신의 자태는 감상자에게 다양한 각도에서 미적 흥취에 잠길 기회를 제공한다. 혹시 루브르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360도 돌면서 감상하는 기회를 누려 보기 바란다. 특히 ‘조각의 뒷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정말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뭐라고 딱 표현하기 힘들지만 하여간 정면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전문가들은 밀로의 비너스상이 감상자에게 강렬하게 어필하는 이유를 수학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가장 조화로운 비율인 ‘황금 비율’이 반영된 오브제는 감상자에게 최대치의 만족감을 선사하는데, <밀로의 비너스>가 바로 이 황금 비율이 예술품에 적용된 가장 유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팔이 사라진 자리가 가슴 부분과 절묘한 균형을 이룬 덕에 상반신만 보고 있으면 파손된 작품이 아니라 애초부터 흉상으로 제작된 작품을 보는 듯하다. 이렇게 니케상과 비너스상은 완성보다 훨씬 더 강렬한 미완성, 아니 파손의 독특한 미학을 뽐내며 오늘날까지 루브르를 찾는 관람객들을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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