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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들라크루아 (feat. 낭만주의 미술의 대표자)

by MINGFORMATION 2024.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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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들라크루아 (feat. 낭만주의 미술의 대표자)
외젠 들라크루아 (feat. 낭만주의 미술의 대표자)

 

낭만주의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인 들라크루아의 작품 경향은 초기 고전주의에서부터 바로크적 특징과 낭만주의적 요소에 이르기까지 두루 포함하고 있다. 말년에 들라크루아는 역사화와 정부 건물에 그린 뛰어난 벽화로 인기를 얻었다.

 

외젠 들라크루아는 19세기 낭만주의 예술을 대표하는 최고 예술가로 손꼽히는 화가이다. 그는 작품의 영감을 주로 과거와 당대의 사건이나 문학에서 얻었다. 특히 1832년 프랑스 정부 사절단에 끼어 모로코를 방문했는데, 그 방문 후 그의 그림에서는 색채를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법과 붉은색과 녹색, 푸른색과 오렌지색을 적절히 배합하는 방법을 능숙하게 구사한다는 평가를 얻었다.

 

들라크루아는 1798년 4월 26일에 프랑스 샤랑통-생모리스에서 빅투아르 외벤과 샤를 들라크루아 사이에서 넷째로 태어났다. 어머니 외벤은 왕실과 궁정에서 사용하는 가구를 만들었던 외벤 리즈너 가문의 후손이었고, 아버지는 정부 관리로서 보르도 지사로 재직하다 1805년에 세상을 떠났다. 일설에 따르면 들라크루아의 진짜 아버지는 정치가인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페리고르라고도 한다. 들라크루아는 17세가 될 때까지 고전을 공부하였고, 예술을 사랑하는 집안에서 음악과 연극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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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그는 낭만주의 회화의 창시자라고 일컬어지는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 남작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제리코와 인연을 맺어 제리코의 작품 <메두사 호의 뗏목>의 모델이 되기도 하고, 제리코를 대신해 작품을 그리면서 제리코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1822년 들라크루아는 살롱전에 <단테의 배>를 출품했다. 이 작품은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그가 존경하는 옛 거장인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채색법, 그리고 고전주의적인 조각의 인물 표현법이 적절히 결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명망 있던 화가 프랑수아 제라르는 그에 대해 천재적인 자질이 있다고 평했다. 그리고 그는 정치가이자 역사가로 프랑스 내무장관이 되었던 루이 티에르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

 

들라크루아는 1824년 살롱전에 <키오스 섬의 학살>이라는 역사적 주제를 다룬 작품을 출품하면서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떠올랐다. 1820년에 발생한 그리스와 터키의 분쟁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당시 화단을 지배하던 고전주의 작품들, 그중에서도 앵그르의 작품과 비교되면서 혹평을 받기도 했다. 1825년 들라크루아는 빅토르 위고와 함께 영국 여행을 떠났다. 그는 런던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괴테의 <파우스트> 등의 연극을 보고 큰 인상을 받았다. 이 영향으로 들라크루아는 바이런의 희곡 <마리노 팔리에로>에서 영감을 받아 <마리노 팔리에로 총독의 처형>을, 월터 스콧의 소설에서 영향을 받아 <리에주 주교의 암살> 등의 작품을 그렸다. 그리고 『파우스트』의 프랑스어 번역판에 삽입될 석판화도 제작했다. 이 시기 그는 영국에서의 폭넓은 작업 경험과 함께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와 존 컨스터블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표현법에만 갇혀 있지 않는 객관적인 작품활동을 했다.

 

1827년 들라크루아는 낭만주의 화풍이 절정에 달한 작품인 <사루다나팔루스의 죽음>을 살롱전에 출품했다. 이 작품은 앗시리아 왕 사루다나팔루스의 몰락을 주제로 한 바이런의 희곡 <사루다나팔루스>에서 영감을 받아 그렸으며, 격렬한 움직임과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가 넘쳐난다.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낭만주의 화가들로부터는 극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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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라크루아는 1830년에 그의 대표작인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란 작품을 완성하였다. 1830년 7월, 혁명이 일어나 루이 필리프 왕정이 수립된 뒤 시민의 자유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열망이 고조되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전제적 법령포고에 반발해 파리 시민들이 항쟁을 일으킨다. 이 작품은 파리 시민들의 소요사태 중 가장 격렬했던 7월 28일의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프랑스혁명 정신의 상징으로 불렸으며, 1831년 살롱전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831년에 들라크루아는 그동안의 작품활동을 인정받아 프랑스의 최고훈장인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으며, 1832년 외교사절단의 일원으로 북아프리카의 모로코로 갔다. 그는 북아프리카에서 약 5개월을 지내면서 이국의 역사와 강렬하게 빛나는 투명한 아프리카의 태양에 크게 영감을 받았다. 귀국 후 그는 북아프리카를 주제로 수많은 크로키와 기록들을 남겼다. 들라크루아는 어린 시절부터 풍부한 인맥과 신사다운 품격, 냉철한 이성과 박식함을 지니고 있었다. 성장기의 훌륭한 인적 배경을 자산 삼아 그는 활발히 사교활동을 했다. 특히 여류소설가인 조르주 상드와 쇼팽과의 삼각관계는 좋은 우정과 애정으로 귀결되었다. 들라크루아는 1850년 이후부터 상로제에 있는 작업실이나 파리에 있는 자신의 집에 틀어박혀 지내다가, 1863년 8월 13일 파리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독신의 몸으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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