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파 화가인 피카소는 스페인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초기에 르누아르, 툴루즈, 뭉크, 고갱, 고흐 등 거장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미술 양식은 초기 청색 시대를 거쳐 입체주의 미술 양식을 창조하였고 20세기 최고의 거장이 되었다.
파블로 피카소는 입체주의의 창시자로 양식과 매체의 변경에도 기교, 독창성, 해학에 한계가 없이 다양한 작품을 제작했던 20세기 최고의 거장이다. 초기 청색 시대를 거쳐 종합적 입체주의까지 입체주의 미술 양식을 창조했다. 아방가르드 미술 모임에 핵심인물로, 많은 미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피카소는 1881년 스페인의 말라가에서 미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림을 그릴 정도로 그리기에 재능이 있었지만, 읽기와 쓰기는 더뎌서 졸업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아버지는 그런 그를 미술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엄격한 규율에 적응하지 못한 피카소는 여러 학교를 전전하다 결국 독학을 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그를 사로잡았던 선배 화가들은 로트렉과 뭉크였다. 그들의 화풍을 습득하려 노력하던 피카소는 1900년 19세 때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하였고, 다음 해 재차 방문하여 몽마르트르를 중심으로 자유로운 제작활동을 하고 있던 젊은 보헤미안의 무리에 합류하였다. 피카소는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등 인상파들의 작품을 접했으며 고갱의 원시주의, 고흐의 열정적 표현주의 등의 영향도 받았다.
당시 피카소는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몰랐고 세계적인 도시 파리의 모습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화려함의 이면에 가려진 빈곤과 비참함을 목격하였으며 질병과 성병이 가득한 소돔의 도시를 두려워하였다. 그는 당시의 혼란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살을 결심하기도 하였으며, 파리의 구석진 다락방에서 추위와 가난을 인내하며 지냈다. 이 시기가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청색 시대’이다. 피카소의 청색 시대는 1901년부터 1904년에 해당하는 시기로, 가난했던 그는 물감조차도 제대로 구입할 수 없어 대부분의 작품들이 청회색으로 메꾸어져 있다.
절망의 색으로 사회 소외계층을 주로 그리며 보내던 그의 삶 속으로 어느 날 환한 빛의 아름다운 연인 페르낭드가 찾아온다. 그녀와 사랑에 빠지며 그의 작품들은 화사한 장밋빛으로 색들을 되찾게 된다. 그 후 1907년, 파리 트로카데로에 있는 인류사 박물관에서 아프리카인들의 조각품과 가면들을 본 피카소는 그 마술적인 분위기, 강력한 상징성, 원시적인 감각에 깊은 감명을 받고 드디어 큐비즘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리게 된다. 이 작품은 최초의 진정한 20세기 미술작품으로 거의 500여 년을 내려오는 서구 미술의 르네상스적 전통을 마감한 문제작이다. 해부학적으로도 엉망이고 원근법도 파괴되어 뒤로 후퇴하는 대신 공간을 들쑥날쑥한 면들로 분할했다.
조르주 브라크와 알게 된 것은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리게 된 무렵으로, 그와 함께 공동 작업으로 입체주의 미술 양식을 창안하였다. 1909년에는 분석적 입체파, 1912년부터는 종합적 입체파 시대에 들어갔다. 이 무렵 그는 이미 20세기 회화의 최대 거장이 되었고, 종합적 입체파 수법을 1923년경까지 밀고 나가면서 여러 가지 수법을 차례대로 전개하였다.
1936년의 스페인내란 때는 인민전선을 지지했다. 이때 파시스트 독재자인 프랑코 총통이 나치의 폭격기를 동원해 바스크 지방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를 폭격했다. 이들은 3시간 동안이나 폭탄을 퍼부어 2천 명이 넘는 시민을 학살하고 수천 명의 부상자를 만들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피카소는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해 전쟁의 비극과 잔학상을 초인적인 예리한 시각과 독자적 스타일로 폭 약 7.8미터, 높이 3.5미터의 <게르니카> 벽화를 한 달 만에 완성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해에 그는 스페인에서 지냈으나 다음 해 독일 군의 파리 침입 직후 파리로 돌아와 레지스탕스 지하운동 투사들과 교유하고, 1944년 종전 후에는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주로 남프랑스의 바닷가에서 생활하면서 그리스 신화 등에서 모티프를 취하여 밝고 목가적 분위기마저 자아내는 독특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피카소는 자신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남겨둔 채 92세의 나이로 세상에서의 긴 여정을 끝냈다. 그는 후대 화가들에게 ‘자연의 모방’이라는 화가의 제한적 역할에서 ‘독자적 시각’이란 자유를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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