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출근 방침에 반발해 애플을 떠난 스타 개발자 ‘이안 굿펠로우’ 소식 기억하시나요? 주 3일 사무실 근무 방침이 내려오자 애플을 떠나 구글 계열사인 딥마인드로 자리를 옮겼다는 내용이었는데요. 하이브리드 워크를 부정하면 핵심 인재를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사례였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사무실 출근을 옹호하며 하이브리드 워크를 반대하는 강경론자들도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라든지,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솔로몬이 대표적이죠. 기본적으로 반대론자들은 하이브리드 워크가 회사의 소통, 협력, 성과를 해칠 거라고 우려합니다. 이안 굿펠로우가 지적했듯 그들이 유연한 업무를 인정하지 않는 배경에는 회사의 통제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겁니다. 자율성이 지나치게 보장되면 직원들이 제도를 악용해 조직 전체의 성과에 악영향을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이제 하이브리드 워크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입니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 원격으로 업무를 볼 수 있었던 6,000만 명의 미국 근로자 중 8%만이 완전 재택근무를 했고 3분의 1은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일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39%가 완전 재택근무를 하고, 42%가 비대면과 대면 근무를 병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대부분의 기업은 하이브리드 워크가 미래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은 하이브리드 워크에 대해 찬반을 논할 때가 아니라 하이브리드 워크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킬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1. ‘로우’ 도입한 베스트바이의 시행착오
하이브리드 워크가 기업 조직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직원 개개인의 직무 몰입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는 리더십과 조직 전체의 성과를 지속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성과관리 체계가 필수적입니다. 그렇다면, 직원의 몰입과 성과는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좋을까요?
하이브리드 워크는 근무 장소나 근무 시간 등에 대한 직원의 자율권을 기본으로 하는데요. 유사한 운영 방식은 이미 예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바로 영업 중심 조직입니다. 지금도 자동차회사나 보험회사 같은 경우 판매 대리점이나 영업소에서 근무하는 영업직원의 사무실 출근 여부를 중시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성과를 내는 데 있어 사무실 출근 여부가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최대의 전자 제품 소매 판매회사인 ‘베스트바이’는 이러한 조직 관리 방식을 전사적으로 확대 적용시키기도 했습니다. ‘로우(ROWE : Results Only Work Environment)’라고 불리는 결과 중심적 관리 방식은, ‘언제 어디서 일하는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직원이 제때 업무를 만족스럽게 완료하는지’에만 관심을 둡니다. 약속된 성과를 달성하기만 한다면 직원들에게는 어떠한 승인 절차 없이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휴가를 쓸 수 있는 거죠. 처음 이 제도를 도입했을 당시 베스트바이 직원들의 생산성은 향상됐고 자발적 이직률이 급감하면서 우수인재의 이탈을 막는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국내에도 성공 사례로 종종 소개되곤 했죠.
그러나 이 제도는 채 10년도 안 되어 폐지됐습니다. 자율권만큼 커진 책임감은 직원들의 업무 스트레스를 함께 높였기 때문입니다. 되레 근무 시간이 과도하게 늘어나고 성과가 측정 가능성에 따라 나뉘었습니다. 그러자 확인이나 측정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팀은 사기를 잃었고 조직 시너지도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거죠.
2. 성공적인 하이브리드 워크를 위한 요소
베스트바이의 실패 사례는 오늘날 하이브리드 워크 시대의 관리 방식이 과거의 로우와는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해 줍니다. 하이브리드 워크가 성공리에 이뤄지려면 직원 개개인이 조직의 일원으로서 성과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 리더가 해야 할 일은 크게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1) 인간관(구성원에 대한 전적인 신뢰)
하이브리드 워크 리더는 인간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기업이 인간을 보는 방식은 크게 성악설과 성선설,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성악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이기적이고 이왕이면 적은 노력으로 많은 것을 얻기 바라는 존재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직원이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들려면 금전적인 보상이나 물리적인 처벌이 따라야 합니다. 반면 성선의 관점에서 인간은 이타적이고 더 큰 무언가를 위해 희생과 헌신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 경우 직원들은 의미와 보람만 있다면 얼마든지 더 열심히 일할 수 있게 되죠.
하이브리드 워크 리더가 가져야 할 인간관은 후자입니다. 직원들이 자율권을 가져도 최선의 판단으로 전체의 성과를 높일 거라고 믿어줘야 합니다. 리더에게 이런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라면 하이브리드 워크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을 겁니다.
하이브리드 워크를 하겠다는 기업에서 직원들에게 언제, 어디에서 일할 것인지를 사전 승인받도록 하고 이를 실제 근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는지 일일이 확인한다면 하이브리드 워크의 장점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직원이 스스로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자원이라는 믿음과는 상반된 결정이니까요. 겉면뿐인 하이브리드 워크는 자칫 반발심까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인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구성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구성원의 몰입과 성과를 높이는 첫 번째 요인입니다.
2) 지속적인 팀 빌딩과 팀워크
개인이 근무방식을 자율적으로 정하는 하이브리드 워크 상황에서는 팀 구성원이 개별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더 높아집니다. 넷플릭스의 헤이스팅스나 골드만삭스의 솔로몬이 가장 우려했던 부분도 이 ‘소통과 협력’ 부분입니다. 그렇기에 리더는 지속적으로 구성원이 함께 모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고민하고 실행에 옮겨야 하는데요. 마이크로소프트는 보이는 라디오를 비롯해 팀즈를 통해 생일 축하나 일상 공유를 함으로써 비대면 상황에서도 구성원 각자가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도모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관계 유지 외에도 리더는 팀십을 위해 각 직원들을 독려할 책임이 있습니다. 직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만 해서는 조직 전체의 성과를 올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성원들이 우리 팀이나 다른 동료의 성과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때그때 인정해줘야 합니다. 성과평가에 이를 반영하면 더 좋겠죠. 한국의 한 반도체기업에서는 감사 쿠폰 제도를 활용해 팀워크에 기여한 구성원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3) 정보 공유와 구성원과의 합의
하이브리드 워크 리더가 구성원의 몰입과 성과 관리를 위해 신경 써야 할 마지막 포인트는 ‘공유와 합의’입니다. 진정으로 유연한 하이브리드 워크가 되기 위해서는 정보의 투명성이 중요합니다. 토스의 이승건 대표는 “최고 수준의 자율성은 최고 수준의 정보 공유에서 비롯된다. 많은 회사에서 구성원들에게 자율적으로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라 해도, 실제 많은 구성원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고 움직이는 게 회사에 더 도움이 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하이브리드 워크 상황에 빗대어보면, 각자의 근무방식이나 현황 공유 외에도 결과물을 모두에게 공평하게 오픈하는 것이 전체 성과를 극대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여기에 더해 리더는 준칙 제정, 업무 방식 변경 등 세세한 요소들을 정할 때 모두에게 꺼내놓고 함께 합의하는 과정을 밟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애플이 직원들에게 일률적으로 통보하지 않고 결정 전 합의 과정을 거쳤다면 어땠을까요? 어쩌면 이안 굿펠로우 같은 훌륭한 인재를 떠나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결론적으로 하이브리드 워크의 요체는 ‘유연성’과 ‘자율권’입니다. 공정성을 앞세워 천편일률적인 규칙을 적용한다면 하이브리드 워크의 본질을 해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리더는 각 조직의 기능적 특성을 비롯해 구성원의 개인적 상황들도 충분히 고려해 하이브리드 워크를 운용해야 합니다. 하이브리드 워크가 ‘과학’이 아닌 ‘예술’로 분류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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