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평가는 성과 측정이 아니라 성장을 지원하는 소통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2013년 즈음, 미국 경영계를 중심으로 직원 간 순위를 매기는 상대평가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반성의 물결이 일었고, 마이크로소프트 등 발 빠른 곳들은 상대평가 폐지 대열에 합류했으며 2015년에는 상대평가의 원조 잭 웰치도 더 이상 상대평가 방식이 시대에 맞지 않음을 인정했습니다. 국내에서는 포스코가 가장 먼저 연말에 일괄적으로 진행하는 상대평가제도를 폐지하고 ‘상시 성과평가 제도’를 시행했다가 월 단위 평가에 대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원들의 민원에 따라 기존의 평가제도로 회귀한 이력이 있습니다.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리더의 일방적 평가에서 다면평가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동료평가’ 방식이 자연스럽게 대두됐습니다. 삼성전자는 2021년 말 ‘절대평가를 확대하고 동료평가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고, 포스코는 최근 ‘협업포인트’ 제도를 신설해 협업 활동을 인사평가에 반영하고 있으며 동료평가제도도 시행 중입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넷플릭스 같은 해외 유명 기업뿐 아니라 카카오, 네이버, CJ, 삼성전기,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등 국내 유명 기업 및 잘 알려지지 않은 많은 기업에서도 동료평가제도를 시행 중입니다.
1. 왜 동료평가를 하는가
직장인 C는 자신이 최근 경험한 동료평가에 대해, “이 평가는 최악이며 회사에 대한 정이 떨어진다”라고 소회 했습니다. C가 다니는 회사의 동료 평가제도를 요약해 보면 이렇습니다.
1) 업무 동료 중 평가자 최소 8명 선정 (내 업무를 잘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음)
2) 온라인에 익명으로 평가 대상자의 장점과 단점을 서술형으로 입력
3) 결과를 대상자에게 통보
익명성, 그것은 얼굴 보고 차마 못할 말을 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붙잡고 있는 이성의 끈을 놓고 못할 말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C는 매일 얼굴 보는 동료들이기에 ‘단점’을 최소한으로 살살 적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동료들도 그랬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를 받아 본 후 “나는 동료들에게 비수를 맞은 느낌이었고 내가 적은 동료의 단점도 그들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을 것이었다”며 충격에 빠졌습니다.
2. 동료평가, 무엇이 문제일까
최근 조직관리 동향에 비추어 살펴봅시다. 2019년, 네덜란드의 자유사상가이자 기업가인 위르헌 아폴로는 그의 책 《매니지먼트 3.0》에서 명령과 통제를 원리로 하는 과거의 관리 방식인 ‘매니지먼트 1.0’에서 시대 변화를 반영하여 BSC(Balanced Score Card), TQM(Total Quality Management) 등 몇 가지 패치를 붙인 한때의 유행이었던 ‘매니지먼트 2.0’을 지나, 현재는 복잡성 이론에 기반한 ‘매니지먼트 3.0’의 시대가 왔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기업들의 3.0 탈을 쓴 2.0, 심지어 1.0적 사고가 문제입니다. 즉 ‘관리와 통제’의 수단으로 ‘동료평가’를 이용하려고 합니다.
2009년, 리더십 전문가 닐스 플레깅은 저서 《언리더십》을 통해 통제에 의존하는 과거형 알파기업과 기존의 경영이론에서 벗어난 미래형 베타기업의 특징을 비교했는데, 가장 인상 깊은 점은 인사평가에 대한 관점입니다. 알파기업이 “개인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고 인사고과는 필요한 것”이라고 보는 반면 베타기업의 경우 “개인의 성과는 평가할 수 없고 인사고과는 가부장시대의 유산”이라고 봅니다. 시대는 변해 가는데 많은 기업들은 아직 ‘개인’의 성과를 ‘평가’하려고 합니다.
또 다른 네덜란드의 사상가이자 기업가인 제라드 엔덴뷔르흐는 훨씬 전인 1970년대부터 사회학의 창시자 오귀스트 콩트의 ‘소시오크라시 Sociocracy‘ 사상적 기반에 ‘사이버네틱스’라는 시스템사고 이론으로 주춧돌을 놓아 현대적 ‘소시오크라시 자율경영 조직개발’ 이론을 집대성했습니다. 이를 통해 조직의 운영과 관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보여줬는데, 특히 업무 평가의 목적은 보상을 위한 등급 매기기가 아니라 오로지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발전적인 피드백’이 되어야 함을 주장하면서 그 수행 프로세스를 상세하게 정립했습니다. 소시오크라시 관점에서 현재 대부분 기업의 동료평가는 본질에 다가가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동료평가에 대한 더 좋은 접근방법
첫째는 평가의 목표를 바꾸는 것입니다. 동료평가의 목표는 기능개선을 위한 ‘피드백’이어야 합니다. 업무평가는 왜 할까요? 승진을 비롯한 보상을 하기 위해서인가요? 그러한 보상은 왜 할까요? 결국 조직의 ‘성과’를 올리기 위한 것이며, 이를 위해 지금까지 많은 기업들이 ‘개인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손쉬운 평가 방식을 채택해 온 것입니다. 본말이 전도된 목표 아래서 시행되는 동료평가는 평가주체만 ‘리더’에서 ‘동료’로 바꿈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닐까요.
동료평가의 목표는 숫자로 매겨지는 성과가 아니라 개인과 조직의 ‘성장’이어야 합니다. 개인과 조직의 성장과 개선을 목표로 하는 피드백 중심의 업무평가 제도가 되어야 하고, 이것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평가와 보상을 분리해야 합니다.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겠지만 발 빠른 기업들은 이미 시도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360도 평가는 보상으로 직접 연결되지 않습니다. 삼성전자는 ‘역량평가’와 ‘역량진단’을 구분하고 진단 결과는 보상에 활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작지만 의미 있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비상교육은 2019년 ‘성장위원회’라는 인사평가 방식을 도입하면서 앞으로 평가와 보상을 분리할 것임을 공식화했습니다.
둘째, 자기 조직화 Self-organizing에 기반해야 합니다. 즉 내 업무 수행 과정을 잘 아는 선후배 동료를 스스로 선택해 피드백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에게 유리한 평가를 할 수 있는 사람만 골라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할까 우려되나요? 그렇다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엉뚱한 평가를 하게 되는 것은 우려되지 않는가요? 알파기업의 시각을 버리길 바랍니다.
셋째, 올바른 피드백 방법을 훈련하고 대면 피드백을 도입해야 합니다. 나를 평가한 사람의 범위가 뻔한데, 비수 같은 한 마디가 과연 누구의 평가일지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지 맙시다. 구성원 간 신뢰를 단번에 깰 수 있는 것이 익명 비대면 평가입니다. 나에게 온 피드백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전달도 잘 안 됩니다. 기업들이 익명의 비대면 피드백 방법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피드백’하면, 공격적 혹은 비판적 평가 나아가 비난받는 모습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해야 한다고 하면 잘못한 점을 찾아 ‘지적’ 해야 할 것 같아 매우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즉 발전적인 피드백을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피드백을 주고받는 올바른 태도와 스킬에 대한 학습과 훈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이야기했을 때 내가 되려 비난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깔려있는데, 이는 조직에 심리적 안전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넷째는 심리적 안전감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상 넷째가 아니라 첫째로 중요합니다. 내 말이 부메랑이 되어서 내 등에 꽂힐 것을 아는 한 영물인 우리 인간들은 절대 솔직하게 입을 열지 않을 것입니다. 눈치를 보고 정치를 하며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꼼수를 쓰게 될 것이고 그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조직문화와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이런 상태로는 그 어떤 좋은 제도도 왜곡되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것입니다.
심리적 안전감은 “괜찮아요. 무엇이든 편하게 말씀하세요”라는 말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내 언행에 대한 리더의 반응, 조직의 조치를 경험함으로써 만들어집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건설적인 피드백이 편안한 조직인가요?
4. 피드백 중심의 대면평가하기
A사 상품기획팀 K는 입사 7년 차다. 최근, 6개월이 소요된 중요한 프로젝트 하나를 막 마쳤다. 회사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마친 시점 혹은 개인 판단 하에 동료 피드백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1년에 1~3회 평가회의를 개최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K는 자신이 한 업무과정을 잘 알고 있는 팀 동료, 선후배와 협업팀의 동료, 선후배 중 5명에게 평가회의에 평가위원으로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이 회의를 노련하게 진행해 줄 동료에게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을 요청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보통 30~40분 정도 소요되는 이 회의를 위해, K는 지난 6개월간 자신의 주요 업무 내용을 평가위원들이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업무평가서를 작성해 두었다. 업무 평가서는 K가 어떤 점에 무게를 두고 프로젝트에 임했으며 성취 목표는 무엇이었는지와 함께 잘된 점과 그렇지 않은 점,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떻게 개선하고 싶고 동료들의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등의 내용을 담아 총 A4 두 쪽 분량이 되었다.
평가회의는 아늑한 회의실에서 진행됐고, 위원들은 K의 자기 평가 내용을 듣고 자신들의 의견도 피드백해 주었다. K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점을 찾아 칭찬해 주거나 개선사항을 제시해 주었다. 동료들은 K가 자료를 수집해서 동료들과 잘 공유해 주는 점이 따뜻하고 세심하게 느껴졌다는 피드백을 주었다. K는 동료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질문 횟수를 줄이고 나름의 방법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편이었는데, 그 점이 오히려 업무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으니 앞으로는 업무가 너무 많이 진척되기 전에 조금만 미리 질문해 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받은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K는 자신의 질문에 선후배 동료들이 바로 답하지 못하거나 무뚝뚝하게 반응하는 것이 단지 바쁘기 때문이거나 서로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 다른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알게 됐다. K는 앞으로 동료들을 더 믿고 더 많이 상의하면서 일을 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 사례를 읽고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이것은 제라드 엔덴뷔르흐가 정립한 동료피드백 프로세스의 일부를 적용하여 필자가 재구성한 것입니다. 실제로 비상교육의 새로운 인사평가제도 ‘밸류 UP’은 이 프로세스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강남언니’로 알려진 힐링페이퍼는 CSS라는 동료피드백 제도를 갖고 있는데, 사내 모더레이터의 진행으로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토스도 구설에 올랐던 ‘삼진아웃제’를 폐지하고 ‘성과’가 아닌 ‘역량’ 관리를 목표로 하는 피드백 제도로 전환했습니다. 여전히 너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민주주의도 처음에는 이상적이었고 현재의 기업문화도 과거에는 이상적이라고 평가되었다는 점을 환기합시다.
5. 전사적인 인사평가제도를 바꾸기 어려운 경우
우리 팀만이라도 해 볼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SK네트웍스 구매팀은 SK그룹 차원에서 추진 중인 ‘일하는 방식 혁신’의 일환으로 진행했던 ‘팀 단위’ 지원 프로그램 덕분에 팀 조직문화에 극적인 전환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전문가의 코칭과 컨설팅에 잘 따라준 결과 구매팀은 매우 높은 심리적 안전감을 갖춘 학습조직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그 끝에는 드디어 ‘동료피드백’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걱정했던 구성원들도 방법과 프로세스를 배우자 스스로 ‘성장통通‘이라는 팀만의 동료피드백 제도를 만들고, 전사적인 인사평가와 상관없이 서로의 발전을 위한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이 팀의 성장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조직 상황에 맞는 업무평가제도를 천천히 만들어 가기 바랍니다. 힐링페이퍼는 ‘극도의 솔직함’을 권장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심리적 안전감이 없는 조직에서 힐링페이퍼를 따라 구성원들에게 ‘솔직하게 피드백하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먼저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조직문화부터 구축합시다.
여러분의 조직에 동료평가를 도입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동료평가 도입을 고려 중이거나 도입 중인 조직에 전하는 조언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이 동료평가를 도입하려 하나요? 그렇다면 그것으로 얻으려는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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