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일회’라고 들어보셨나요? 자칫 사자성어처럼 보이지만, 일본 다도 문화에서 파생된 표현입니다.
‘一期一会(いちごいちえ)’ 이치고 이치에. 직역하자면 ‘한 사람의 일생에서 단 한 번뿐인 인연’이라는 뜻입니다. 다도의 마음가짐에서 시작해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관계에 대한 의미까지 확장된 표현입니다. 이 표현을 처음 만든 사람은 일본 역사의 전환점을 만든 사람이자 우리에겐 미묘한 감정을 일으키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미일수호통상조약 체결로 일본 문호 개방의 물꼬를 튼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입니다.
1. 14째 아들의 마음가짐, 이이 나오스케
‘차탕일회집’이라는 다서에서 처음 등장한 ‘일기일회’는 에도시대 막부의 다이로(大老)였던 ‘이이 나오스케’가 정립한 표현입니다. 나오스케는 히코네번의 13대 영주, 이이 나오나카의 14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오늘날 재계에서는 3형제, 4형제가 경영권을 두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데 그 당시 14째라면 가문 승계는 꿈도 꾸지 못했겠죠. 본인의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떠돌던 나오스케는 마음을 정리하고 히코네로 돌아와 다도로 심신 수련에 매진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던가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고 꾸준히 심신을 수련하고 있던 나오스케가 기적적으로 히코네번의 15대 영주가 됩니다. 그의 나이 35세였습니다. 1858년 도쿠가와 막부에서는 ‘다이로’라는 중책을 맡기며 국사에 깊이 관여하기에 이릅니다.
에도시대 다도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교양 요건이자 사교의 매개가 되어 하나의 문화를 형성했는데요. 다도는, 쇼도우, 카도우와 함께 일본의 전통 3도로 불립니다. 어미의 도(道)자는 검도, 유도의 도와 같은 한자로 유희가 아닌 정성을 다해 수련해야 하는 덕목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시 부유한 상인 계급을 중심을 조성된 ‘조닌 사회’에서 다도는 수련정신보다는 오락성이 강조되면서 가벼운 문화로 변질되기도 했는데요. 나오스케는 이에 반대하며 다도 정신의 진지성 회복을 강조하면 많은 저서와 다회를 열어 본인의 다도관을 전파했습니다.
나오스케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양극단적 평을 듣는 인물입니다. 다이로 취임 직후 조정의 허가 없이 미일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합니다. 이를 계기로 한 문호 개방은 일본의 급속 성장 계기가 되었으니, 개국 공로자로 칭송받는 한편, 질서를 어지럽히고 무단히 조약을 체결한 인물이라고 평하기도 합니다.
2. 일기일회: 생에 한 번 뿐인 만남
‘일기일회’가 처음 등장한 것은 나오스케가 집필한 다도 총서 ‘차탕일회집‘의 서론 내용입니다. 이상적인 다회의 진행 순서를 제시하는 책인 동시에 다인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다도정신을 서론과 결론에서 새로운 용어와 개념으로 정리한 책인데요. 본문도 아닌 서론에 이 새로운 표현을 등장시킨 이유는, 본문에서 나오는 모든 다도의 절차를 ‘일기일회’의 마음으로 실천하라는 의미입니다.
‘일기(一期)’란 불교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뜻합니다. 직역하자면 한 사람의 인생에 한 번밖에 없는 만남일 텐데요. 나오스케는 일생에 있어서 한 번의 순간이기에, 매 만남을 소중히 여겨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음은 ‘차탕일회집’ 서론입니다.
‘이 글은 다회 한 차례의 시작부터 끝까지, 주인과 손님의 마음가짐을 자세히 쓴 것이기 때문에 제호를 일회집이라 한다. 또한 일회에는 깊은 주의가 필요하다. 무릇 다도로 만나는 자리는 일기일회라고 한다. 가령 여러 차례 같은 주객이 자리를 함께 한다고 해도, 오늘 모인 자리와 같을 수 없음을 생각하면 실로 내 일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모임이 된다. 그러하니 주인은 만사에 마음을 다하여 조금도 소홀함이 없이 깊이 있고 절실하게 진실한 마음을 다하고, 손님도 이후로 두 번 다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며, 주인의 취향이 어느 것 하나도 소홀함이 없음을 깊이 느끼며 진심을 나누어야 한다. 이를 일기일회라 한다. 반드시 주인과 손님이 진지하지 않고 건성으로 하는 차라면 단 한 잔도 마시지 않는다. 여기에 일기집의 깊은 뜻이 있다.’
당시로서도 파격적이었던 미일수호통상조약 체결은 반대파를 자극하는 계기가 되어, 나오스케는 얼마 가지 못해 정파 간 대립으로 출근길에 살해당합니다. 전문가들은 반대파의 거센 반발에도 본인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관철시킨 동력은 다도를 통한 오랜 수련 과정에 기인한다고 말하는데요. 모든 예법 과정 그리고 마주하는 사람들과의 자리를 늘 마지막인 것처럼 성심성의껏 대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겠다고 생각합니다.
3.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일기일회’를 직역하자면 생에 한 번뿐인 인연입니다만, 나오스케는 다시 만날 사람이라도 이 자리에서의 만남은 다시 오지 않음으로 성심성의껏 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족, 연인, 친구, 동료… 가까운 사람들과 보내는 매 순간도 마찬가지겠죠? 또 인생은 한 번밖에 없는 반면 살아있는 이상 언젠가는 이별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자면 어제는 ‘다음 생엔 마주치지도 말자…’는 사람도 왠지 다르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에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늘 인연에 정성을 다하는 일기일회의 마음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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