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내 리더들은 갈수록 젊어지고 있으며 구성원들은 점차 나이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경력이 쌓인 이들은 조직에서 특별한 직책을 맡지 않은 채 때로는 묵묵히, 때로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자신의 업무를 수행합니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과 다양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1. 고경력 비보직자에 대한 부정적 시선
‘숙성된 고급술’ ‘큰 나무’ ‘나이테’ ‘큰 돌’ ‘바람 빠진 타이어’ ‘투명인간’ ‘고인물’ 등은 조직에서 이른바 고경력자이면서 현재 특별한 보직을 맡고 있지 않은 이들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이미지입니다. 긍정적인 이미지와 부정적인 이미지를 모두 지니고 있지만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의 빈도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조직에서 업무적으로나 관계적으로 크고 작은 성공의 경험이 있으며 조직의 역사와 함께 축적된 남다른 지식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대내외적으로는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 등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들은 한마디로 조직 내 인적자원 Human resource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바라보는 다른 구성원들의 시선과 견해는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젊은 구성원들의 경우,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하고 상대적인 박탈감도 큽니다.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고경력의 비보직자 역시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거나 위축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개인별로 차이는 있으나 조직 내에서 이들의 기대 역할이 모호한 경우도 있고 내적인 동기부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소극적인 태도와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보이는 이들의 모습은 이내 부정적인 이미지로 점철되는 악순환의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만약 이러한 상황을 외면하거나 방치하게 된다면 개인이나 조직 모두에게 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2. 조직 개편으로 증가하는 고경력 비보직자
조직 내에서 고경력의 비보직자가 증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조직구조 측면에서 조직 개편 또는 조직 슬림화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평적인 조직문화 조성의 일환으로 시행된 직급체계의 단순화나 호칭의 일원화 등도 이들의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는 비즈니스의 변화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상황이지만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고경력의 비보직자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한편 개인적인 측면에 있어 창업이나 이직 등의 변화보다 고용안정과 정년퇴직 등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와는 달리, 후배가 승진했다고 해서 선배들이 조직을 떠나거나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거 연공서열이나 수직적인 상하 관계에 익숙한 구성원들 중 일부는 자신보다 젊은 리더와 함께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내비치기도 합니다. 또한 이와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간혹 조직구성원으로서 건강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젊은 리더의 말을 무시한다거나 자신의 경험을 앞세워 고집을 굽히지 않는 것 등입니다. 조직에서 이들을 방관하거나 방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극단적인 예는 아닐지라도 젊은 리더를 건성으로 대하거나, 할 수 있는 한 최소한의 역할만 하려는 모습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직에서 이러한 징조가 보이기 시작하면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당사자들 뿐 아니라 그들의 틈 사이에 낀 구성원들 또한 불편해질 것이고, 이렇게 되면 조직은 그야말로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이와 같은 현상들과 문제점들이 나타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지금까지 사회와 조직에서 암묵적으로 가지고 있는 등정주의登頂主義적 인식, 즉 모두가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보면서 누가 더 빨리 목표에 다다르는가로 성공과 성과를 인식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식 속에 갇혀 있는 고경력의 비보직자들은 연공서열에 따른 직급과 직책이 뒤바뀌는 상황을 마주하게 될 때 상실감과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3. 고경력 비보직자를 몰입시키는 방법
그렇다면 어떻게 접근해야 이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조직에서의 몰입을 도모할 수 있을까요?
1) 경력성공에 대한 관점 바꾸기
경력성공에 대한 관점부터 변화를 가져올 필요가 있습니다. 경력성공은 크게 객관적 성공과 주관적 성공으로 구분됩니다. 객관적 경력성공은 타인으로부터 확실하게 판단되고 식별되는 업적으로 일반적으로는 승진이나 보상 등과 같은 외적 보상을 수반합니다. 반면 주관적 경력성공은 자신의 경력에 대해 스스로가 평가하는 것으로 성취감이나 책임감 혹은 인정 등과 같은 내적 보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객관적 경력성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앞으로는 주관적 경력성공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주관적 경력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활동 수행, 외부 관계의 확대 및 유지 그리고 내부로부터의 인정 등이 있습니다. 이와 함께 성공이나 성과의 지표도 달리 접근해 봐야 합니다. 고경력의 비보직자로서 리더와 구성원들을 얼마나 많이 성장시켰느냐 등을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와 같은 주관적 경력성공을 위해서는 고경력의 비보직자들 스스로가 경력개발에 대한 책임을 갖고 현재와 미래의 경력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학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일컬어 경력연계학습 Career related continuous learning이라고도 합니다.
2) 동기부여의 원천 살피기
스스로를 움직이는 힘 Motivation의 원천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기이론에서는 외적인 동기보다는 내적인 동기가 훨씬 더 강력하고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허즈버그 Herzberg가 말하는 동기요인과 매슬로우 Maslow가 말하는 관계욕구, 존중욕구, 자아실현 욕구가 해당됩니다. 따라서 고경력의 비보직자들은 저차원적인 욕구나 동기보다는 고차원적인 욕구나 동기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한 방법 중 하나는 고경력 비보직자들이 지니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공유할 수 있는 지식에는 형식지와 암묵지가 있습니다.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을 자료나 글 등을 통해 공유하는 것이 형식지의 공유이고 코칭이나 멘토링 등으로 공유하는 것이 암묵지의 공유입니다.
이와 같은 지식과 경험의 공유는 개인의 직무 자율성과 함께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혁신행동을 촉진시켜 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구성원들 간에 지식이 상호 교환되어 다른 구성원들이 사용 가능한 형태로 변환되는 지식 기여 Knowledge contribution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에 더해 조직 내 고경력 비보직자에 대한 새로운 역할모델을 만들어 볼 수도 있습니다. 고경력의 비보직자들이 일종의 지식과 경험의 연결자 Linker가 되는 것입니다. 조직 내에서 연결자란 리더에게는 모범형 팔로워 Effective follower이며 후배들에게는 서번트 리더 Servant leader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모범형 팔로워로서 리더와의 관계와 자신의 업무에 있어 소신 있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서번트 리더로서는 구성원을 위해 헌신하고 만족을 주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업무적인 측면과 관계적인 측면에서 보다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업무적인 측면에서는 도전적인 프로젝트나 경험을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이끌어 볼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상급자로부터의 지시를 넘어 업무와 관련된 후배들의 요청에 부응하고 조력하는 역협조 Backward cooperation를 해 볼 수도 있습니다.
관계적인 측면에서는 자신의 전문성과 경력에 기반한 강의나 컨설팅 등을 통한 구성원 육성은 물론, 대내외적으로 구축된 인적 네트워크를 활성화해 구성원들의 관점과 시야를 넓혀줄 수도 있습니다. 아울러 스스로가 책이 되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른바 ‘휴먼 북 Human book‘이 되는 것입니다. 책에 보면 목차가 나와 있는데 자신의 경험과 지식 등이 일종의 휴먼 북 목차가 될 수 있습니다. 조직 내에서 이와 같은 내용이 필요한 구성원들이 있다면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보는 것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접근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이 보다 활성화된다면 ‘휴먼 라이브러리 Human library‘를 구축해 볼 수도 있습니다.
4. 진짜 어른과의 대화를 통한 시너지 창출
“진짜 어른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요.”
영화 ‘인턴’에서 성공한 30대 CEO인 줄스가 70세 인턴인 벤에게 했던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직급은 낮지만 업무적인 측면은 물론, 개인적인 측면에서 경험도 많고 나이도 많은 시니어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리더와 구성원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과 아낌없는 지원을 하는 장면들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아름답게 마무리됩니다. 이 이야기를 단지 ‘영화니까 가능하지’라는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조직 내 고경력 비보직자들은 영화 속 벤과 같이 자신의 연륜과 함께 그동안 쌓아왔던 경험과 지식을 충분히 공유하고 활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많은 조직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 중 하나는 조직 내 고경력 비보직자들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조직 내에서 모든 구성원들이 리더로서의 직책을 수행하는 것이 제한적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추세와 배경에 비추어보면 이들에 대한 관심과 함께 이들의 가치를 재창출하고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습니다. 그래야만 조직의 인적자원으로서 이들이 지니고 있는 개별적인 고유의 경험과 지식이 사장되지 않고 개인과 조직 모두에게 유용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어른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요.”
이제 이 말은 조직 내 고경력 비보직자들이 젊은 리더들과 구성원들로부터 들어야 할 말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조직 내 구성원 간 업무적으로나 관계적으로 내재된 갈등 해소는 물론,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시너지 창출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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