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만 시간.’ 매년 상장 기업이 회의하느라 낭비하는 시간입니다. 2017년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해 봤더니, 회의에 무의미하게 소모하는 시간이 평균 44만 시간이라고 하네요. 사실 회의는 예전부터 조직의 골칫거리였습니다. 회의를 시간 낭비, 업무 저해 요소로 꼽는 직원들이 허다했죠. 그간 쓸모를 잃은 회의 문화를 개선하고자 수많은 기업이 노력해 왔습니다만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그래도 회의는 여전히 조직에 없어선 안 될 주요 커뮤니케이션 수단일 겁니다. 집단지성의 장으로서 면모를 되찾을 방법은 도저히 없는 걸까요? 과거의 시도가 있었다면 왜 실패했을까요? 요즘 직장에 최적화된 ‘회의다운 회의’ 만들기, 지금부터 알아봅시다.
1. 관성적인 ‘회의’에 회의감을 느끼자
회의 문화를 바꾸지 못하는 기업의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관습이 된 ‘회의’에 회의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데요. 이들은 회의가 ‘정보를 가장 효과적으로 공유하는 수단’이라고 무조건적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리더들이 그렇습니다. 아직까지 리더 편의를 위해 주간 회의 같은 정기 회의를 여는 조직들이 많아요. 리더의 궁금증을 관련 구성원을 모아 한번에 해결하는 거죠. 회의의 성격상 ‘논의’보단 돌아가며 발표하고 보고하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그리고 리더의 연설이 이어지죠. 이런 회의는 본래 회의의 기능을 상실한 ‘습관’, ‘관습’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공유형 회의는 잘 정리된 메모 이상의 가치를 갖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모여서 공유하는 것만이 공유가 아니다’는 새 인식이 필요합니다. 정기 회의 주기를 늘려버리거나 폐지하는 실험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정말 회의가 필요한 순간이라면 일대일 보고를 하거나 즉석 회의를 열어서라도 도움을 요청하게 돼 있습니다. (단, 정보의 투명성은 높여야 합니다. 투명한 정보 공유 시스템 구축 없이 회의만 바꾸는 건 조직 간, 구성원 간 정보 격차를 방치하는 셈입니다.)
사실 회의의 가장 큰 특징은 ‘발표’입니다. 전달할 내용을 글로 잘 표현하지 못할 때 유용하죠. 한데… 만약 글로 전하고자 하는 바를 잘 설명할 수 있어도 구두 회의가 필요할까요?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회의 혁신을 이뤄낸 기업이 바로 아마존입니다. 아마존은 PPT를 폐지하고 완전한 문장으로 구성된 텍스트 형식의 자료를 작성하게 합니다. 이런 회의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글쓰기 역량을 채용 단계에서 검증한답니다. 만약 정기 회의를 줄이거나 없애기 어렵다면 적어도 정보 공유 방식에 변화를 줘 회의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침묵의 정독으로 회의를 시작하는 거죠. 입보단 눈이 더 빠르니까요.
2. 회의를 ‘회의’라고 부르지 말자
많은 조직이 회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 회의 프로세스를 바꾸거나, 회의 원칙을 수립하고 전사적으로 배포합니다. 효과는 당연히 없죠. 회의가 ‘회의’로 불리는 한에서는요. ‘회의’는 이미 많은 직원들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단어입니다. 너무 많이 오염됐습니다. 오염이 심하면 재활용이 아니라 폐기해야 합니다. 회의 같지 않은 모든 것에 회의라는 이름을 부여하면 무엇이 진짜 회의인지 헷갈리게 됩니다.
회의의 순기능을 살릴 새로운 ‘브랜드’가 필요합니다. 구글의 ‘포스트모템’,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 혼다의 ‘와이가야’ 등 독특한 회의 이름이 존재하는 이유죠. 물론 이름만 바꾼다고 능사는 아니겠죠. 구글의 포스트모템은 잘된 것, 잘못한 것, 운이 좋았던 것, 다음에 무엇을 다르게 할 것인지 논의하는 시간입니다. 이 개념이 구글 직원들에게는 명확히 박혀 있습니다.
‘아이디어 도출’, ‘갈등 조율’, ‘의사 결정’ 등 회의 목적에 따라 명칭을 달리 해보는 건 어떨까요? 혹은 평상시와는 다른 방법으로 진행되는 회의, 다른 태도로 참여하는 회의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 회사만의 회의 브랜드가 독특한 명칭으로 자리 잡으면 그만큼 영향력이 큰 건 없습니다. 구글의 포스트모템이 되지 못 하리란 법은 없죠.
3. 소수가 아닌 다수가 만들어야 한다
회의 문화를 개선해 보려는 시도는 어떻게 시작될까요? 패턴은 흔히 다음과 같습니다.
1) 최상위 리더가 회의에 불만을 느낀다.
2) 그가 개선과 변화를 지시한다.
3) 중간 리더나 회의 진행자를 대상으로 회의 퍼실리테이션을 교육한다.
조직에서 가장 크게 착각하는 건 회의 진행자 혹은 특정 소수가 회의를 잘 이끌면 회의 문화가 개선될 수 있다고 믿는 겁니다. 그러나 회의 문화는 결단코 소수가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회의다운 회의를 위해 확실한 건 한 가지입니다. “모두가 책임을 지고 회의를 이끌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려면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전사적 교육 활동이 선행돼야 합니다. 혹여 구성원 일부를 대상으로 회의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면 기대를 버리세요. 모두가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데 혼자 흰색 옷을 입자고 하면 다들 그 옷을 입으려 할까요? 그보단 모두가 흰색 옷을 입는 날을 정하고 흰색 옷이 왜 좋은지 같이 경험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회의 문화는 조직 문화의 축소판입니다. 모두의 노력 없이는 바뀔 수 없습니다. 진행자에게는 회의를 이끄는 퍼실리테이션 교육이, 참여자에게는 회의 진행자를 돕거나 회의 자체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숨은 퍼실리테이터 교육이 필요합니다. 직급이나 직책에 상관없이 돌아가면서 진행을 맡아보는 것도 각자의 역할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4. 시간 대신 ‘20% 룰’ 도입하자
회의 종료 시점에 알람이 울리도록 타이머를 가져다 두면 회의 문화를 개선할 수 있을까요? 이미 해보신 경험이 있나요? 그러나 효과를 본 경우는 거의 없을 겁니다. 회의의 핵심은 빠른 시간에 끝내는 게 아니니까요. 진짜 목표는 성과를 달성하는 거죠. 사람들이 회의를 답답해하는 이유는 너무 많은 시간을 쓸데없이 사용해서지, 시간 자체를 많이 쓰기 때문이 아닙니다.
알람 시계가 울리는 시점을 바꿔야 합니다. 종료 시점에 뒤늦게 울리는 대신 어느 정도 대화를 마무리할 즈음이 적당합니다. 즉, 20% 정도 논의 사항이 남았을 때 알람을 설정하는 겁니다. 대화를 마무리하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실행에 옮길지 계획을 구체화해야 할 시점을 상기하는 거죠. 사실 5분의 1이라는 비율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회의 시간의 일부는 결론을 내리고 실행 계획을 명확히 하는 데 할애한다’는 개념이 중요한 겁니다. 20% 룰은 회의의 핵심이 시간이 아니라 결론과 실행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켜 주는 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 직장인은 예전과 다릅니다. 수평적 문화를 지향하는 시대에 집단지성을 발현하는 회의의 모습이 과거대로 머물러 있어선 안 됩니다. 좀 더 회의의 본모습에 가까워지기 위한 새로운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새 노력이란 관성과 거리를 둔 관점으로 회의 자체를 다시 바라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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