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실한 무기징역수로 변모하는 대기업 직원
요즘 같은 취업난에 대기업 취직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인사 담당자로서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후보자들의 역량과 열정에 매번 감탄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렇게 당당하고 패기 넘치던 대기업 신입 사원이 소위 ‘성실한 무기징역수’로 변신하는 데는 수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대기업은 잘 짜인 체계에 따라 각 직원들의 역할 분담이 확실한 조직입니다. 직원들은 조직이 자신에게 부여한 세부 역할, 책임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죠. 그렇다 보니 다른 사람의 역할과 책임을 침범하는 건 다소 무례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상사가 시키는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데 몰두할 뿐 공연히 책임이 따르는 반대 의견이나 새로운 일은 제시하지 않으려 합니다.
연중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는 목표 수립과 평가입니다. 도전적인 목표나 불확실성이 많은 과제는 힘들게 일해도 좋은 평가나 보상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전문가로서의 평판에 금이 갈 수도 있고요. 그래서 대기업 직원들은 도전적인 과제는 지양하고 확실히 결과가 보장되는 일을 선호합니다. 좋은 평가를 받으면 그 영역의 전문가로 불릴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전문가가 됐을 때 그들의 모습은 어떨까요? 실상은 전문가를 가장한 ‘성실한 무기징역수’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2. 대기업 근무 방식도 진화 중
그러나, 최근 대기업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습니다. 인력 문제 때문이죠. 과거엔 대기업이 중소기업 출신 경력 직원을 영입하는 경우가 흔치 않았어요. 요즘엔 플랫폼 기업에서 성장한 유능한 인재를 모셔오기 위해 대기업들이 경쟁합니다. 영입한 인재들을 유지하고 그들이 성과를 내게 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방식도 함께 정착시켜야 하죠. 그럼 플랫폼 기업의 일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고객 중심으로 빠르게 혁신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1) 비전 제공하기
MZ 세대는 일이 본인의 성장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를 성장시켜 줄 수 있는 환경인지 꼼꼼히 살피고 입사를 결정합니다. 이들을 영입하기 위해선 분명한 비전을 반드시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사업을 위해 내부에서 직원을 영입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전과 목적에 공감하지 않는 직원을 발령하면 성과 창출에 한계가 있다는 걸 이제 대기업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해당 사업의 비전과 목적을 제시한 뒤 공감하는 사람만 버스에 태우는 게 훨씬 효과적이죠.
2) 목적 중심으로 일하기
KPI 자체가 목표가 되면 일의 의미와 목적, 주도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평가와 보상을 고려해 달성 가능한 목표만을 수립하기 때문에 의미 있는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먼저 일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달성을 위한 핵심 결과들을 고려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의사결정은 상사가 아닌 고객이 한다
대기업의 일하는 방식은 대개 상명하복입니다. 상사의 지시 사항을 구성원이 실행하고 업무 보고를 하면 다시 상사가 의사결정을 내리는 게 보편적이죠. 사실상 실무를 않는 상사가 정확한 의사 결정을 하려면, 구성원의 빈틈없는 보고서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죠.
반면 플랫폼 기업의 의사결정 주체는 상사가 아닌 고객입니다. 신규 서비스를 빠르게 시장에서 테스트해 댓글, 체류 시간, 재방문율 등 고객 반응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이를 근거로 다음 행동을 결정합니다. 처음 서비스를 기획하고 설계할 때부터 어떻게 고객 반응 데이터를 확보하고 의사결정에 반영할 것인지도 포함하고요.
또한 서비스 출시는 일의 끝이 아니라,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고객 반응을 살피고, 반복적으로 피보팅 함으로써 탁월한 고객 경험을 만들 때 혁신이 이뤄집니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요.
피보팅(pivoting)이란 기존 사업 아이템을 포기하거나 수정해 사업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
4) 수평적인 문화
개발자들이 최근 플랫폼 기업 면접에서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 중 하나는 수평 기업 문화가 잘 정착돼 있는지 여부입니다. 리더가 꼰대 같은 행동을 하지 않고, 직장 내 괴롭힘이 없고, 직급에 관계없이 서로를 존중하느냐는 건데요. 수평 문화는 의사결정이나 업무 수행에서 직급이 아닌 전문성을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 문화가 정착돼야 리더에서 고객 중심으로 의사결정 구조를 바꿀 수 있습니다.
5) 커뮤니케이션 최적화 전략 필요
다양한 협업⋅소통 도구를 이용해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세우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효과적인 업무를 위해 불필요한 업무 보고를 없애고 실시간 소통과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의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동시에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구성원 간 정보 격차를 최소화해야 협업이 원활해집니다.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피드백의 질을 높이기 위해 내부에서 규칙을 정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겠죠.
다행히 대기업에는 ‘성실한 무기징역수’로 보이지만 사실은 반짝 빛나는 다이아 원석 같은 구성원들이 많습니다. 플랫폼 기업의 일하는 방식을 도입한다면 조직의 성과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을 겁니다. 내외부 전문가들이 한 데 어우러져 서로의 성장 기회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낸다면 엄청난 산업 발전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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