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섭, 한국, 화가. 1980-현재
작가 이상섭의 나뭇가지 작업은 ‘수행(修行)’의 흔적이다. 그는 나뭇가지를 한가득 작업실로 주워와 몇 달이고 끌로 나뭇가지의 껍질만 계속해 하나씩 벗겨내고 벗겨낸다. 목적 없이 반복하다 보면 무의식 중에 손이 움직이며 껍질을 벗기고 있다. 그 순간 복잡했던 생각이 비워지면서 마음이 맑게 치유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뭇가지의 껍질을 벗겨내는 무한 반복으로 자신의 존재를 잊게 될 즈음, 나무의 향기에 취하며 어떤 평온한 감정에 도달하게 된다.
나뭇가지로 하는 작업은 그에게 무위(無爲)를 향해 수도자처럼 마음을 수양하는 과정과 같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작품에 있어 시각적 조형물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며, 나뭇가지의 껍질을 반복적으로 벗기는 행위를 통해 도달하게 되는 감정의 치유가 자신의 예술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미술을 하고 싶어서 미술대학에 입학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무엇을 그려야 할지 막연해져 하루하루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그때 나뭇가지를 만났다. 우연히 땅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것을 주워서 작업대로 가져와 끌로 껍질을 아무 생각 없이 벗겨봤다.
그러다가 점차 그냥 껍질을 벗기고 벗기는 반복된 행위에 집중하게 되었다. 근심과 걱정이 점차 마음에서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 무엇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없이 나뭇가지를 마구 주워왔다. 그리고 몇 개월 동안 계속 껍질을 반복해서 깎고 벗기도 또 깎았다.”
그렇게 껍질을 벗긴 나뭇가지들이 수북이 쌓였고, 이것들을 모아 얼기설기 엮어 만든 첫 작품이 2009년에 제작한 ‘Love’다. 이 하트모양 조형물은 껍질이 벗겨진 나뭇가지의 더미를 엮어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로 드러내고 싶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의 수행의 시간과 흔적이 물질로 표상된 것이다.
무한 반복의 행위를 통해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갈 즈음엔 쭉 뻗고 있는 나뭇가지의 흐름에 감정을 맡길 수 있었다고 한다.
작가 자신과 나뭇가지가 하나가 된 것이다. 그에게 나뭇가지는 자신이 지배하고 조정하는 대상적 오브제가 아닌 수행(修行)의 안내자였으며, 쭉 뻗은 흐름은 바로 이상섭 자신의 감정의 흐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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