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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예술

이승조, 평안북도 용천, 한국, 기하추상 화가, 1941-1990

by 트렌디한 일반 상식 2023.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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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조, 평안북도 용천, 한국, 기하추상 화가, 1941-1990
이승조, 평안북도 용천, 한국, 기하추상 화가, 1941-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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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조, 평안북도 용천, 한국, 기하추상 화가, 1941-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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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조, 평안북도 용천, 한국, 기하추상 화가, 1941-1990

 

이승조, 평안북도 용천, 한국, 기하추상 화가, 1941-1990

전후 복구시기 새로운 미래에 대한 열망이 충만했던 1960년대에 아방가르드 세대로 등장하며 한국의 기하추상을 진취적으로 이끌었다. 기계적 미감이 충만하게 드리운 이승조의 기하추상은 1960년대 한국 미술계에선 마치 홀로 튀어나온 송곳만큼이나 낯선 것이었다. 당시엔 미술가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하는 앵포르멜 미학이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흔히 ‘뜨거운 추상’이라 불리는 앵포르멜의 대척점에 서서 이승조는 ‘차가운 추상’으로 대변되는 기하추상에 몰입했다. 그가 국내 미술계 기하추상의 선구자로 평가되는 이유일 것이다.

 

194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출생한 그는 1960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해 동급생이었던 최명영, 서승원 등과 함께 순수한 회화로의 환원을 지향한 그룹 오리진(Origin, 1962~)을 결성한다. 이후 그는 ‘파이프’를 연상시키는 원통 단위를 조형 언어로 제시하고 한국 추상회화에서 매우 보기 드문 기계미학적 회화를 일궈낸다. 1968~1971년까지 당시 추상회화의 입상이 드물었던 보수적인 국전에서 4년간 연이어 수상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현상학이론,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등 외부에서 유입된 현대미술의 흐름에 적극 호응했고, 1970년대 중반 이후 단색화와의 연계성을 가지면서도 스스로 개척한 ‘핵’의 고유성을 놓지 않았다.

 

1988년에는 미국 미술에 강한 인상을 받아 회화와 오브제의 접목을 시도하며 알루미늄과 황동, 나무 패널들이 캔버스를 대체하는 새로운 실험을 전개했지만 성과를 보지 못한 채 1990년 타계하였다. 생전에 ‘한국 화단에서 보기 드문 엄격한 기하학적 추상의 한 전형을 이룩한 화가’로 평가 받았던 그는 회화의 아방가르드(Avant-garde)를 위해 철저한 자기분석을 모색한 작가였다. 널리 '파이프 통의 화가'라고 불려지기도 하지만 평론가들은 단순하게 파이프로 보지 말고, 선과 색채의 앙상블로 봐야 작가의 의도와 작품을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차 여행중이었다. 눈을 감고 잠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는데 얼핏 무언가 망각 속을 스쳐가는 게 있었다. 나는 퍼뜩 눈을 떴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었다. 마치 첫인상이 강렬한 사람에 대한 못잊음과도 같은 그 미요한 감정에 휩싸여 집에 돌아온 즉시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마음에 남은 이미지를 조작한 결과 오늘의 파이프적인 그림을 완성했다."

 

1967년 그가 발표한 연작 <핵> 발표 당시 그의 말에서 작품을 대하는 몰입도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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