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수 박물관들이 탐내는 보물, 알비온 아트(Albion Art) 설립자 카즈미 아리카와가 40년에 걸쳐 수집한 주얼리 컬렉션이 한국을 찾았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세상이 몰랐던 가장 귀중한 문화유산’이라 극찬했고,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은 ‘인류 문명사의 숨겨진 보물’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롯데뮤지엄의 ‘The Art of Jewellery : 고혹의 보석, 매혹의 시간’展에서 이 전설적 컬렉션의 핵심 작품 208점이 공개된다. 20여 년간 주얼리 역사를 연구하며 이번 전시의 자문을 맡은 입장에서, 아리카와 컬렉션의 예술사적 가치는 압도적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개인 소장품이 한국에서 공개되는 것만으로도 이례적인데, 현대 미술관에서 이 정도의 규모로 선보이는 일은 처음이다. 기원전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인류 문명의 황금기를 수놓은 걸작들과의 만남, 그 자체로 역사적 순간이다.
아리카와 컬렉션은 예술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다. 고대 그리스 장인의 섬세한 금세공, 르네상스 예술가의 장인정신, 아르누보 디자이너들의 혁신이 주얼리에 응축됐다. 기하학적 대담성과 동서양 모티프의 창조적 융합으로 빛나는 아르데코 시대의 실험까지, 각 작품은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혼의 결정체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과 V&A가 앞다퉈 소장을 희망했던 이유를 자문 과정에서 실감했다. 이 컬렉션은 동서양 문화교류의 살아있는 기록이다. 실크로드와 대항해 시대를 거쳐 유럽에 전해진 동양의 보석들은 독창적 미학을 탄생시켰다. 중국의 비취, 인도의 다이아몬드, 콜롬비아의 에메랄드, 미얀마의 루비로 유럽의 주얼리 예술은 한층 풍성해졌다.
19세기말, 동아시아의 곡선미와 비대칭은 아르누보에 영감을 주어 자연 모티프가 더욱 장식적으로 승화했다. 이러한 문화적 융합은 19세기 ‘양식의 르네상스’로 절정에 이른다. 카스텔라니는 고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의 세공 기법을 부활시켰고, 르네 랄리크는 독창적인 에나멜로 아르누보를 완성했다. 조르주 푸케는 아르누보의 거장 알폰스 무하의 디자인 스케치를 바탕으로 환상적인 주얼리를 탄생시켰다. 파베르제는 현대에도 재현이 어려운 정교한 기법으로 러시아 황실 문화의 절정을 구현했다. 유럽 왕실 컬렉션은 권력과 예술의 집대성이다. 예카테리나 여제의 컬렉션은 러시아의 서구화 열망을, 나폴레옹의 초상을 담은 카메오는 프랑스 제국의 정통성을 표현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컬렉션은 대영제국의 세계 지배력을 상징한다. 그녀의 감성적 취향과 안목은 19세기 유럽 상류사회의 주얼리 문화를 선도했다.
뷔르템베르크 왕가의 파뤼르(세트 주얼리)는 19세기 왕실 문화의 정수를 담았다. 1807년 나폴레옹의 막내 동생 제롬 보나파르트와 뷔르템베르크의 캐서린 공주가 맺은 혼인의 선물로 제작된 이 세트는 유럽의 복잡한 정치 역학을 함축한다. 우랄 산맥에서 채굴된 100여 개의 진귀한 핑크 토파즈는 당시 유럽 최고의 보석 세공 기술을 입증한다. 르네상스의 대가 발레리오 벨리의 <CROSS>는 이번 행사의 백미로 꼽힌다. 현존하는 3점 중 하나인 이 십자가는 종교와 예술의 완벽한 조화를 담아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복음서 저자들을 새긴 섬세한 기술, 르네상스 회화의 영향을 받은 인물 표현, 파리의 명장 피에르 제르맹이 제작한 받침대의 투명창 안에 모신 ‘성십자가’까지 이 모든 요소가 당대 종교와 예술, 권력의 복합적 관계를 함축한다.
이번 전시는 회화와 조각 중심이던 국내 미술시장에 주얼리라는 예술 영역을 더한다. 세계적 걸작과의 만남은 한국 컬렉터들에게 예술 투자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미술품 시장의 다양성과 깊이를 한층 성숙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주얼리 산업에도 도약의 기회가 열린다. 시대정신과 문명의 결정체로서 주얼리의 가치가 재조명되는 가운데, 국내 디자이너들은 최고 수준의 작품들에서 전통과 혁신의 접점을 발견하며 독창적 작품 세계를 펼쳐나갈 것이다. 롯데타워 7층 전시장에서 관람객은 시대별 작품을 통해 제작 기술의 진화와 디자인의 변천을 마주한다.
건축가 쿠마 켄고의 공간은 보석의 내면적 빛을 극대화하며 각 시대의 맥락을 자연스럽게 읽어내도록 구성됐다. 작품마다 담긴 이야기는 인류의 기술적 진보와 예술적 표현의 발전 과정을 생생하게 전한다. 권력과 부의 상징에서 개인의 정체성 표현 수단으로 변모해 온 주얼리의 여정은 인간의 욕망과 열정, 아름다움을 향한 끝없는 탐구를 담아낸다. 인류 문명의 발자취를 품은 이 역사적인 순간은 우리 시대의 예술과 문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세계가 주목하는 이 컬렉션을 통해 동서양 주얼리 문화의 가교가 마련되고, 국내 주얼리 교육도 전환점을 맞이할 것으로 기대된다. ‘The Art of Jewellery: 고혹의 보석, 매혹의 시간’전은 12월 6일부터 2025년 3월 16일까지 롯데뮤지엄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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