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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2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프랑스, 화가, 1832-1883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프랑스, 화가, 1832-1883“풀밭 위의 점심”을 살롱전에 출품한 ‘마네’는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이 작품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올랭피아"로 또다시 물의를 일으키죠. '고야'에게서 영감을 얻어 '마네'가 그린 작품은, 한국전쟁 때 '피카소'에게까지 작품의 의미가 이어졌습니다. 몽마르트 근처의 “카페에서” 작품은, 그리다가 맘에 안 들었는지 멀쩡한 그림을 칼로 잘라 두 작품으로 나누어 그리기도 했답니다. 언젠가 ‘드가’가 마네 부부를 그려왔는데, 피아노 치는 아내 부분이 맘에 안든다고 그것도 일부분을 찢어버리기도 했죠. 마네의 마지막 작품,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은 1869년 개업하여 아직도 영업중인 극장식 주점입니다. 맨 왼쪽 .. 2025. 5. 14.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feat. 에두아르 마네와 빈센트 반 고흐) 1.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1863년, 미술계에는 두 가지의 큰 사건이 일어났다. 낭만주의 회화를 탄생시킨 들라크루아의 사망과 앵그르가 주도하는 살롱전 심사에서 벌어진 소동이 그것이다. 소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살롱전 심사는 너무나 편파적이었고 평가의 공정성이 떨어졌다. 자신의 제자에게 유리한 점수를 주는 심사위원에 의해 입선하는 화가가 많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아름다움을 표현한 아카데미풍의 작품이 아니면 입선도 어려웠다. 결국 이런 관행에 환멸을 느낀 심사위원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났고, 전보다 훨씬 더 엄격한 기준으로 출품작을 평가했는데, 살롱전에서 낙선한 4천여 점의 작품 중에는 마네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었다. 2. 에두아르 마네 살롱전의 결과는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 소식을 접한 나폴레옹 3세.. 2024.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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