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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법률

법령 파악 못해 생긴 업무의 실수 처벌 가능 여부 (feat. 모르고 그랬다.)

by 트렌디한 일반 상식 2024.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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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 파악 못해 생긴 업무의 실수 처벌 가능 여부 (feat. 모르고 그랬다.)
법령 파악 못해 생긴 업무의 실수 처벌 가능 여부 (feat. 모르고 그랬다.)

 

범죄 뉴스를 보다 보면 가해자가 흔히들 “모르고 그랬다”라고 주장하죠. 처벌에 있어 해당 행위가 ‘고의’인지 ‘과실’인지에 따라 책임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아끼는 물건을 고의로 손상시키면, 상대에게 금전적 배상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손괴죄가 인정돼 형사 처벌 대상이 되기도 하죠. 하지만 고의 없이 과실만 있었다면 손해 배상 책임만 부담하고 별도 처벌을 받진 않습니다.

 

하지만 ‘고의’와 ‘과실’의 구별이 언제나 명쾌하게 딱 떨어질까요? 그건 아닙니다. 이 둘의 이론적인 의미부터 살펴보면, ’고의‘란 자신의 특정 행위로 인해 일정한 결과가 발생하리란 것을 알면서 이를 행하는 심리 상태를 뜻합니다. 어떤 결과의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부주의로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심리 상태인 ‘과실’과 구별됩니다.

 

그런데 고의와 과실의 경계가 애매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어떤 결과를 확실히 발생시킬 계획적인 의도까진 없었지만, 결과의 발생 가능성이 불확실하더라도 이를 인식하며 어느 정도 용인하는 심리 상태 말입니다. 법원은 이러한 심리 상태를 ‘미필적 고의’라고 정의하며 엄연히 고의의 한 종류로 보고 있습니다.

 

대법원 1987. 2. 10. 선고 86도2338 판결 등

 

“미필적 고의라 함은 결과의 발생이 불확실한 경우, 즉 행위자에 있어서 그 결과발생에 대한 확실한 예견은 없으나 그 가능성은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하려면 결과발생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있음은 물론 나아가 결과발생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음을 요한다.”

 

미필적 고의는 회사일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최근 업무 관련 법령을 제대로 숙지 못한 것도 ‘(미필적) 고의’에 해당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됐거든요(대법원 2022. 8. 31. 선고 2018다304014 판결). 사안의 구체적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사실관계]

원고는 A자산운용사인데 피고인 B보험회사와 보험 계약을 체결하며 다음 사항을 명시했습니다.

 

 - 계약서를 원문(영문)과 번역본(국문)으로 각각 작성하되 원문이 번역본에 우선함

 

 - 피고는 원고의 자산 운용 중 발생한 손해 배상 의무를 대신 부담함

 

 - 단, 원고의 “any wilful violation or breach of any law(국문계약서에는 ‘법령의 계획적인 위반이나 불이행’으로 번역됨)”엔 피고가 배상 책임이 없음

 

A자산운용사는 ‘우즈베키스탄 부동산 개발 사업’ 투자 펀드를 설정한 후 투자금을 모집해 C시행사에 빌려줬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 관련 법(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에 따라 해당 부동산 담보권을 취득해야 합니다. A자산운용사는 C시행사가 우즈벡 내 사업 개발 부지에 갖고 있던 ‘영구사용권’의 담보를 얻었습니다. 헌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즈벡 토지법상 우즈벡 내 토지의 ‘영구사용권’에 담보를 설정하는 게 금지돼 있거든요.

 

이 사실이 드러나자 투자자들은 A자산운용사가 간접투자자산운용법상 담보 확보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A자산운용사를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판결은 이 투자자들의 승소로 확정됐습니다.

 

A자산운용사는 투자자 배상 손해 관련 B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B보험사는 A자산운용사가 “wilful violation or breach of any law”를 한 것이므로 배상 책임이 없다고 맞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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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어땠을까요? 먼저 1, 2심 판결은 ‘wilful’을 ‘계획적인’으로 해석하면서, A자산운용사(원고)의 법률 위반이 계획적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B보험사가 A자산운용사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보험계약서 원문에 기재된 ‘any wilful violation or breach’는 단순히 법령의 위반을 알았거나 법령 위반이라는 결과 발생을 소극적으로 용인하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계획적인 법령 위반으로 좁혀 해석해야 하는데, 원고의 위 담보확보의무위반이 계획적인 법령 위반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wilful’은 ‘계획적인 고의’로 한정되는 게 아니라 ‘미필적인 고의’도 포함된다는 점을 전제로, A자산운용사의 법률 위반에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구체적 판결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중략) ‘wilful’의 의미를 일반적인 고의가 아니라 번역본과 같이 계획적인 고의로 한정해야 할 합리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으므로 ‘any wilful violation or breach’은 일반적인 고의에 의한 법령 위반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wilful’의 의미를 일반적인 고의로 해석하는 이상 여기에서 자신의 행위에 따라 일정한 결과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알면서 이를 행하는 ‘미필적 고의’를 제외할 이유가 없다.

 

이 사건 면책사유에 있는 ‘wilful’의 의미를 위와 같이 본다면, 원고가 간접투자자산운용법이 정하는 적정하고 충분한 담보를 설정하지 않은 행위는 이 사건 담보가 설정된 구체적 경위, 투자자에 대한 설명노력의 정도, 영구사용권에 기초한 개발사업권의 담보로서의 실질적 가치, 이 사건 개발사업의 무산에 따른 담보가치의 변동과 그 예견가능성, 금융감독원에 대한 질의의 정확한 경위와 내용 등에 관한 심리 결과에 따라 적어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법령 위반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관하여 그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원심으로서는 위와 같은 사정을 모두 살펴, 원고가 간접투자자산운용법 등이 정하는 적정하고 충분한 담보를 설정하지 않은 행위가 적어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법령 위반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여부에 대해 더 심리·판단했어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업무와 관련된 법령을 충분히 숙지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법률을 위반하게 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해당 행위를 단순 과실이 아닌 고의(적어도 미필적 고의)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에 따라 회사 실무자분들께서는 업무 관련 법령을 더욱 신중히 숙지해야 할 것 같네요. 법령 위반의 경우 단순 과실이 아니라 고의가 인정돼 중한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실무를 하며 관련 법령까지 일일이 숙지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중요한 건은 법령을 꼼꼼히 검토할 뿐 아니라 법무팀이나 로펌과 사전에 긴밀히 상의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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