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스를 보면 전세 기간이 끝났는데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세입자들은 전세 계약을 체결하기 전 부동산 등기부를 꼼꼼하게 확인하는 등 전세금을 온전히 돌려받기 위해 어느 때보다 더 신중을 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전세 계약 체결 당시에는 부동산 등기부가 깨끗했는데, 계약을 체결한 이후 부동산에 가압류가 설정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당황스러운 경우에 전세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지 궁금한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우선 결론에 앞서 가압류 설정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부동산에 가압류가 걸려있다는 것은 집주인의 채권자(은행, 금융회사 등)가 집주인 마음대로 집을 처분하지 못하도록 법원에 가압류를 신청하여 등기까지 마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어떤 집에 가압류가 설정되어 있다면 해당 집주인의 신용이 위험 수준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세입자가 이미 전입신고를 마치고 확정일자까지 받은 상황에서 집에 가압류가 설정된 경우, 이론상으로는 세입자가 가압류채권자보다 전세금을 우선적으로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집주인의 신용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어 불안한 마음에 전세 계약을 바로 해지하려는 세입자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부동산에 대해 가압류가 되었다는 점만으로는 임차인이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임대인은 원칙적으로 임차인에게 부동산을 사용하게 할 의무가 있을 뿐이며, 부동산에 가압류가 설정됐다고 해서 그 사용 자체가 제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도 임대인이 임대차계약상의 의무를 위반했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서울북부지방법원 2020나37353 판결
…(중략) 부동산에 대한 가압류의 집행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채무자가 여전히 목적물의 이용 및 관리의 권한을 보유하므로(민사집행법 제83조 제2항),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가압류로 인하여 원고가 이 사건 제1, 2 부동산을 새로 임대할 수 없다거나 기존의 임대차에 따른 임대인의 사용·수익하게 할 의무가 이행불능의 상태에 빠진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세입자가 집주인과 전세 계약을 체결하면서 집에 대한 가압류를 계약 해지 사유로 규정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렇게 하면 세입자는 추후 집에 가압류가 되어 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전세 계약을 바로 해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계약서에 ‘임대인의 재산에 대한 가압류’를 계약 해지 사유로 명시적으로 규정하여 쟁점이 된 사건이 있었는데요. 이때 임차인이 위 사유를 들어 임대차계약 해지를 주장하자, 임대인은 가압류로 인해 임차인이 임대차 목적물을 사용하는 것이 곤란하게 된 것은 아니므로 임대차 계약 위반이 아니라고 항변하였으나, 법원은 임대인의 항변을 배척하고 임차인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5가합527064, 2015가합577649 판결
…(중략) 이 사건 각 임대차계약 제14조 제1항 (b)호가 임대인 또는 임차인의 재산에 대한 가압류를 계약해지의 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취지는, 임대인 또는 임차인의 재정적 상태가 현저히 악화되어 임차인이 차임을 지급할 능력이 없게 되거나, 임대차목적물이 경매될 위험이 발생할 경우 앞으로 임대차계약이 정상적으로 이행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바, 임대인이나 임차인의 재산에 대한 압류·가압류·가처분이나 경매신청 같이 임대인 또는 임차인의 재정상태가 악화되었다고 볼 만한 사정이 발생하면 차임 미지급이나 임대차목적물에 대한 소유권 상실 등 임대차계약의 불이행 사유가 현실적으로 발생하기 전에 미리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함이 타당하고, 위 조항의 적용 대상을 일반 재산이 아닌 임대차목적물에 대한 가압류 등으로 한정하거나 임대차목적물을 계속하여 사용·수익하게 하는 것이 실제로 곤란한 정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위 조항이 적용된다는 취지의 피고의 주장은 위 조항의 문언상 의미, 다른 계약해지 사유와의 관계 등에 비추어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참고로, 부동산에 가압류등기뿐 아니라 경매개시 결정등기까지 이루어진 사건에서는 계약서에 위 사유를 계약 해지 사유로 명시하지 않았더라도 법원이 임차인의 계약 해지 요구를 인정한 사례가 있습니다. 단, 해당 사례는 부동산에 대해 가압류뿐 아니라 경매개시 결정까지 이루어져 임대인이 부동산 소유권을 잃게 될 위험이 구체화된 사례라는 점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제주지방법원 2019나12 판결
가. 관련 법리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할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하여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정이란 당사자들에게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을 가리키고,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지 않은 사정이나 어느 일방당사자가 변경에 따른 불이익이나 위험을 떠안기로 한 사정은 포함되지 않는다(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 등 참조).
나. 판단
위 법리에 비추어 살피건대, 앞서 든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의 사정들, 즉 ①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특약사항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건물에 이 사건 각 근저당권설정등기 외에는 다른 제한물권이나 가압류, 가처분 등기, 경매개시결정 등기가 설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이 사건 임대차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에 해당한다고 보이는 점, ② 이 사건 임대차계약 체결 직후 이 사건 가압류등기와 이 사건 강제경매개시결정등기가 마쳐진 것은 위와 같은 사정에 현저한 변경을 초래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갑 3호증의 기재에 의하면, 피고도 강제경매개시결정 사실을 계약 후 알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③ 위와 같은 사정변경이 있는 상황에서 원고에게 이 사건 임대차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라고 하는 것은 원고의 이해에 중대한 불이익을 초래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원고는 위와 같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하여 이 사건 임대차계약을 적법하게 해지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요컨대 세입자분들은 전세 계약을 체결할 때 집주인의 신용이 불안하다면 집에 대한 가압류를 계약 해지 사유로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방안을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집에 가압류가 되었다거나 집주인의 신용이 불안하다는 정황 사실만으로는 전세 계약을 바로 해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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