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퇴, 워라밸… 이 단어들을 한 번도 못 들어봤다면 속된 말로 ‘간첩’이죠. ‘칼 같은 퇴근’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라고 설명해 주는 게 촌스러울 만큼 너무 널리 알려진 줄임말들입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야근 없이 칼퇴해 워라밸을 지킬 수 있는 직장, 이게 좋은 직장의 지표가 된 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야근 기피를 못마땅해하는 의견도 여전히 많습니다. 자기가 맡은 일 앞에서 지나치게 워라밸만 따지고 든다는 거죠. 야근을 기꺼이 할수록 일에 대한 책임감도 강할 거라는 시각도 깔려 있습니다.
최근 커뮤니티에서는 이 ‘야근’을 둘러싸고 회원님들 간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야근이란 무엇인가. 회원님들은 야근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리셨을까요.
1. 야근은 책임감의 지표가 아닙니다
오늘 안에 일을 끝내야만 회사의 중대한 이익 침해를 막을 수 있다면 야근을 해야만 할 겁니다. 더구나 이 야근으로써 나중에 충분한 보상과 편의가 제공되는데도 칼퇴를 해버린다면, 그래서 전체 조직에 피해를 끼친다면, 그 칼퇴는 무책임에 가깝고 적어도 다른 구성원들의 긍정과 지지는 받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커뮤니티 회원님들 상당수가 야근은 ‘일정에 따라 업무를 제대로 기획하지 않는 관성 때문인 경우가 많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일정을 조직할 때 마감 기한까지 어떤 일을 어떻게 처리해 나갈지에 대한 구체적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게 문제라는 거죠.
물론 일정을 짜는 것에 있어서 변수는 많고 다양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일정을 너무나 타이트하게 짜도록 독촉하는 회사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대한 디테일하게 업무 계획을 세우기보다 은연중에 ‘어떻게든 되겠지. 전날까지 야근해서 어떻게든 넘길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일을 닥치는 대로 쳐내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이 경우 야근은 책임감의 지표라기보단 계획을 놓아버린 무책임의 지표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만성화된 야근…일의 경중을 파악해야 합니다
당장 눈앞에 둔 일이 자신의 향후 연봉과 승진을 결정할 중요한 프로젝트라면 누구든 하루이틀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야근을 감수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야근이 너무 잦아 ‘만성화’된 지경이라면 그건 다른 문제입니다. (물론 조직 전체가 만성적 야근에 시달린다면 인력 투자에 소홀한 조직의 문제입니다.)
경중 파악 없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 보면 중요한 일은 뒤로 밀리기 마련입니다. 지친 심신에 텐션은 떨어졌는데 중요한 일을 대충 할 수는 없다 보니 투입되는 시간만 하염없이 길어지고 결국 야근으로 이어지는 거죠. 특히나 야근 수당으로 월 수익을 보전하는 급여 관행까지 맞물리니 각별한 노력이 없다면 야근은 구조적으로도 만성화되기 매우 쉽습니다.
이런 야근 역시 근절해야 하겠죠. 일의 경중을 따져 업무 순서나 처리 방식을 효과적으로 조절해야 합니다. 중대한 업무가 잡힌 날 하루이틀 뒤론 스케줄 조정이 가능한 일들은 최대한 그 앞이나 뒤로 빼기도 해야겠죠.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체력이 남아있을 때 최대한 중요한 일을 처리해 놓고 쉬운 일은 뒤로 미루는 등 융통성이 필요합니다. 경중에 대한 완급 조절이 돼야 다음 중요 업무를 위한 에너지도 충전하고 다음 스텝을 미리미리 생각해 일을 계획해 나갈 수 있습니다.
3. 엉덩이가 가벼워도 일잘러가 될 수 있습니다
야근을 둘러싼 문제를 MZ세대와 그 윗 세대의 시각 차이로 인한 문제로 보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야근을 기꺼이 감수했던 윗 세대와 달리 MZ세대는 더 이상 성장을 원하지 않고 라이프만 쫓다가 일을 내팽개친다는 거죠. 엉덩이가 무거워야 성공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어떤 세대든 직장에선 결국 성과로 평가받는다는 것입니다. 워라밸이 소중하다면 그만큼 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업무 간 경중을 따지고 촘촘히 계획적으로 일하는 습관을 기르겠죠. 그게 업무 숙련도와 효율로 이어지면 엉덩이가 가벼워도 일을 잘할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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