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인간의 욕구 중 가장 참기 힘든 게 반박하고 싶은 욕구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란 걸 몸소 깨닫고 있다. 그 반박 대상은 사소한 사실 관계에서부터 자신을 향한 오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갖는 자아 이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을 향한 오해를 유달리 견디기 힘들어한다. 타인의 오해는 자신의 존재를 왜곡시키는 것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자신의 존재론적 이데아인 자아 이상과 현실에서 타인에 의해 왜곡된 자아 사이의 낙차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타인의 오해를 교정함으로써 자아를 자아 이상에 서둘러 병합시키려 든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반박을 참기 힘든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되어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자아는 자아 이상에 합치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니다. 오히려 남이 바라보는 나에 더욱 가깝다. 남의 시선과 판단과 평가가 항상 왜곡과 오해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 정확히는 스스로가 꾸며낸 자아 이상에 함몰된 병약한 자아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병약한 자아가 문제라 해도 세상에는 명백한 오해와 왜곡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반박욕 역시 다른 욕구와 그 메커니즘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이 좋다. 알다시피 모든 즉각적인 욕구는 가득 채울수록 스스로에 대한 경멸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식욕을 이기지 못해 야밤에 끓여 먹은 라면과 도파민 중독을 이기지 못해 누워서 허비한 서너 시간의 쇼츠 시청에서 뿌듯하고 즐거운 만족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반박욕 역시 마찬가지다. 남의 틀린 견해를 타당하게 반박했다 하더라도 만족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큰 허무함과 하찮음을 느낄 확률이 크다. 그렇게 해서 풀릴 오해라면 이미 지각있는 사람들은 당신을 오해하지 않았을 것이고 몰지각한 사람들이 당신을 오해하고 있다면 당신의 반박으로 생각이 바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도 생각이 바뀔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반박해야 하지 않냐고 물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렇게 생각이 바뀔 사람들의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앞으로 당신이 살아가는 데 있어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합하자면 투명한 반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아 이상의 기능적 강화로 귀결되거나 헛된 시간 낭비로 끝날 뿐이다.
그 위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 하나의 정련된 작업을 통해 그 정념과 욕구를 승화시키는 방법이다. 물론 요즘 세상은 그 시차를 기다려주지 않지만 즉각적인 반박욕에 못이겨 바닷물을 들이켜는 것에 비하면 이 고전적인 술책이 두말할 나위 없이 낫다.
'사업 > 자기개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을 막는 10가지 습관 (feat. 가까운 곳에 파랑새) (0) | 2024.07.13 |
---|---|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 (feat. 언어는 무의식의 가능조건) (0) | 2024.07.13 |
우울증에 대처하는 3가지 방법 (feat. 뇌의 건강을 위한 좋은 수면 방법) (0) | 2024.07.11 |
짜증을 통제하는 8가지 감정 관리법 (feat. 마음 관리) (0) | 2024.07.10 |
사랑을 위한 일곱가지 필수 비타민 (feat. A에서 F까지) (0) | 2024.07.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