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의 인기가 여전히 뜨겁습니다. 한국에서의 반응만 보면 오징어게임 이상으로 오래가고 있는데요. 오늘은 '경험경제'라는 주제로 '흑백요리사'를 다뤘지만, 저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와 자기 계발이라는 주제로 한번 흑백요리사를 다뤄보려고 합니다.
1. 흑백요리사가 여전히 화제인 이유
흑백요리사의 인기비결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화제성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 많은 분들이 저 같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흑백요리사는 요리보다는 요리사 개인과 그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에 주목하게 됩니다. 특히, 흑수저 요리사들의 경우 ‘이름’이 아니라 ‘별명’으로 불리는데요. 저에게는 ‘이름’을 가진 백수저 요리사들보다는 ‘별명’으로 불리는 흑수저 요리사들이 더 애정이 갔습니다. 별명에는 각 요리사들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와 개성이 담겨 있으니까요.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해 한 분 한 분 설명드려보면요.
① 나폴리맛피아 : 나폴리에서 이탈리안 요리를 배웠습니다. 두 팔에 문신을 했지만 요리밖에 모르는 남자입니다.
② 요리하는 돌아이 : 염색한 머리, 불량해보이는 태도, 하지만 알고 보면 순한 분입니다.
③ 트리플스타 : 안경이 어울리는 흰 얼굴, 차분한 말투, 바쁜 와중에도 주변을 청결하게 정리하는 깔끔한 남성입니다.
④ 이모카세 1호점 : 시장에서 요리주점을 합니다. 동네 이모님 같은 외모이지만 헤메코를 받고 나서는 배우로 변신하셨습니다.
⑤ 철가방 요리사 : 철가방부터 시작한 중식 요리사. 팀에서 한 명을 탈락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스스로가 손들고 나가는 착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⑥ 중식여신 : 여신 외모의 중식요리사입니다. 중식대가인 여경래 셰프와 부녀지간 같은 케미를 보입니다.
백수저 요리사들 중에서도 강력한 매력을 보였던 분들도 있습니다.
① 최현석 : 이미 방송활동으로 유명한 분이셨는데 엄청난 자신감과 리더십으로 존재감을 보입니다. 하지만 알리오올리오에 마늘을 빼먹으면서 인간적인 매력을 드러냅니다.
② 에드워드 리 : 이미 미국에서 유명한 재미교포 셰프입니다. 재미교포로 자신의 정체성을 한식에 대한 사랑으로 보여주기 위해 경연에 참여합니다.
③ 최강록 : 10년전 다른 요리경연 프로그램 우승자로 어눌한 말투와 이에 대비되는 뛰어난 요리실력이라는 강력한 ‘캐릭터’를 갖고 있습니다. ‘~을 곁들인’이라는 밈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흑백요리사는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각 요리사들의 개성과 스토리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화제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방송 중에는 유튜브에 편집본(클립)이 올라와 인기를 끌었고, 최종 우승자가 공개된 후에는 방송과 유명 유튜브 채널에 출연자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도 이런 분위기를 아는지 계속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흑백요리사에 등장한 분들이 나온 콘텐츠 들은 적게는 10만에서 많게는 10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흑백요리사는 요리에 대한 저의 생각도 바꿔 놓았는데요. 파인다이닝은 ‘있어빌리티’때문에 간다는 저의 편견이 깨지고, 파인 다이닝에는 '셰프와 그가 만든 요리에 담겨있는 스토리'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죠.
흑백요리사는 ‘인생요리’ ‘이름을 건 요리’라는 식으로 요리사들이 자신의 개인 스토리를 담은 요리를 하도록 했는데요. 하나하나 요리사들의 인생이 담긴 요리를 보면서 이것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료 하나하나와 세세한 요리방법에도 모두 요리사의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런 점에서 1인당 10만 원이 훌쩍 넘는 비싼 요리라도 기꺼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유튜브는 퍼스널리티의 전쟁터
제가 실리콘밸리 특파원을 온 이후 유튜브를 1년 이상 하고 있는 것 알고 계시죠? 유튜브는 채널의 성공을 위해서 인간적인 매력이 아주 중요한 플랫폼입니다. 방송국이나 엔터테인먼트 회사처럼 강력한 IP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채널이라면 개인의 스토리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인간적 매력을 어필을 해야 구독자도 늘어나고 조회수도 올라갑니다.
과거에 우리가 이런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는 대상은 대개 연예인이었습니다. 가수, 배우, 코미디언 같이 TV와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대상이었죠. 하지만 일반인이 주인공인 리얼리티쇼가 쏟아지고, 평범한 사람들이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서 성공을 거두면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들도 인간적인 매력으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마치 흑백요리사의 셰프님들처럼요. 요리하는 돌아이 셰프는 요즘 지하철을 타면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들 정도라고 합니다. 식당에 찾아가면 언제든 만날 수 있었던 요리사님이, 어느 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셀럽'이 되어버린 거죠. 기술과 플랫폼의 발달로 한 사람이 가진 매력이 사회적인 대면을 통해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볼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달될 수 있는 플랫폼을 통해 퍼져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변화를 보고 우리는 ‘퍼스널리티’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퍼스널리티란 우리말로 ‘성격’으로 번역이 되는데요, 16가지 MBTI도 이런 ‘퍼스널리티’의 일종이라고 해요. 하지만 저는 퍼스널리티를 어떤 사람의 외모, 목소리, 말하는 방법, 생각의 구조, 성격, 버릇, 개인사, 평판을 모두 아우르는 것으로 정의해보려고 하는데요. 우리는 이 퍼스널리티를 통해 이 사람에게 ‘호감’을 갖기도 하고 ‘혐오’의 감정을 갖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이 사람과 물질적 세계에서 직접 만나야 이 사람의 퍼스널리티를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은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들의 퍼스널리티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흑백요리사의 셰프님들처럼요.
그리고 평범한 직장인, 혹은 스타트업 창업자들도 플랫폼에서 ‘퍼스널리티’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어떤 컨퍼런스에서 공개적으로 발표했던 내용, 사람들 앞에서 대중강연을 했던 것들이 유튜브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마치 저의 유튜브 출연 영상이 쌓이고 있는 것처럼요.
3. 스타트업의 퍼스널리티, UKF NYC 스타트업 서밋
지난 18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UKF의 ‘NYC 스타트업 서밋’을 취재하러 다녀왔는데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커뮤니티인 82스타트업을 이끄는 이기하 프라이머사제 공동대표님과 동부의 한인 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는 정새주 눔 회장님이 의기투합해 ‘한인창업자연합(United Korean Founders)’라는 단체를 만들고 첫 행사를 뉴욕에서 연 것입니다. 내년 1월 10일 실리콘밸리 레드우드시티에서 열리는 82스타트업 서밋까지, 매년 동부와 서부에서 한차례 씩 행사를 연다고 합니다. 매일경제도 무려 UKF의 미디어파트너로 참여했습니다.
여기서 저는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님들의 ‘퍼스널리티’를 경험할 수 있었는데요.
유니콘 기업 한국신용데이터의 김동호 대표님의 발표를 들었습니다. 한국신용데이터는 소상공인을 위한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 그런데 2017년 설립 후 약 2년간은 앱도 없이 카카오톡만으로 서비스를 했다고 해요. 그리고 이후에도 여러 서비스를 동시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딱 한 서비스만 만드는 등 매우 신중하게 움직였다고 합니다. 속도가 중요한 스타트업들과는 반대로 움직인 거죠. 그런데 2021년 미국 연준이 금리를 높이고, 스타트업들의 자금조달이 얼어붙기 시작하자 한국신용데이터는 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경쟁사들이 몸을 움츠릴 때 오히려 공격적으로 마케팅과 영업에 나선 거죠.
김동호 대표님은 한국신용데이터가 갑자기 공격적으로 나선 것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셨어요. "레이싱에서 2등이 1등을 추월하는 것은 항상 ‘커브’에서다" "스타트업이 사업을 할 때 베팅을 하는 것은 좋지 않은 판단이지만, 적어도 1번은 베팅을 해야 한다"
덕분에 한국신용데이터의 매출은 2021년 68억에서 2022년 646억 2023년 1380억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신용데이터의 이런 전략이 김동호 대표님 본인의 성격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아주 중요한 순간이 되면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소위 '힘을 숨긴' 캐릭터를 아시나요.
1) K푸드에 담긴 스토리
NYC 스타트업 서밋에는 스타트업이 아니라 뉴욕의 유명한 식당 대표님들도 오셨는데요. 그중 ‘기사식당’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윤준우 기사식당 대표님의 얘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사식당은 한국의 1980년대 기사식당을 그대로 뉴욕 한복판에 옮겨 놓은 것으로 큰 화제를 모은 곳이죠.
윤 대표님은 10살 때 가족들과 애틀란타로 이민을 와서 남부음식과 한국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자랐다고 해요. 그래서 뉴욕에 올라와서 친구들과 함께 처음으로 만든 식당이 한식과 남부식이 섞인 ‘씨애즈인찰리(C as in Charlie). 그다음으로 낸 식당이 기사식당인데요. 윤 대표님은 이민을 오기 전 아버지와 한국 기사식당에서 밥을 먹었던 것이 지금도 추억으로 남아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한국에 갈 때마다 기사식당을 운영하던 사장님들이 은퇴하시고, 젊은 사람들은 이런 기사식당이 아니라 이탈리아 음식이나 파인다이닝 매장만 열려고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해요. 그래서 기사식당을 세계 요식업의 중심인 뉴욕에서 성공시킨다면 다음 세대도 '기사식당'을 멋있다고 생각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기사식당을 열게 되셨다고 합니다.
뉴욕 기사식당의 사진과 메뉴를 보고 저는 ‘기발하다’ 정도만 생각했었는데, 앞으로 저는 기사식당을 보면서 1.5세대 이민자의 모국에 대한 애정을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흑백요리사에서 에드워드 리 셰프의 스토리가 우리에게 가장 감동을 줬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에드워드 리 셰프님의 한식에 대한 짝사랑 때문이죠. 그는 비록 미국인이지만 한식을 누구보다 사랑하죠. 그 절절한 짝사랑이 한국인인 저의 심금을 울립니다. 그의 어눌한 한국말, 교포스러운 외모마저도 ‘에드워드 리’리는 ‘퍼스널리티’가 가진 매력을 구성하고 있어요. 결국 시청자는 ‘이균’이라는 그의 한국적 정체성마저 사랑하게 되어버립니다.
퍼스널리티가 가진 매력은 상대에 더해서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을 거쳐(검색), 그와 함께 하고 싶다는 참여(engagement)의 욕구를 자극하죠. 당장 저만해도 에드워드 리 셰프님의 식당을 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있는데요. 많은 유튜버나 스트리머가 퍼스널리티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을 하고 있어요. 퍼스널리티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힘입니다.
4. 매력적인 퍼스널리티: 캐릭터, 스토리, 그리고
매력적인, 사랑받는 퍼스널리티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흑백요리사에서, 스타트업 창업자님들을 보면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첫째, 캐릭터가 있어야 합니다. 무미건조하고 남들과 똑같아서는 안되죠. 흑수저 요리사들의 ‘별명’이 대표적인 캐릭터. 요리하는 돌아이처럼 꼭 캐릭터가 긍정적이고 멋진 것일 필요는 없어요. 어수룩하고 말을 잘 못해도 그것이 캐릭터가 될 수 있으니까요. 호감이 가는 외모가 아니어도 되고, 심지어 꼭 실제 외모가 공개되지 않아도 됩니다(버추얼 아이돌!). 나를 다른 사람과 구분시켜 줄 수 있는 한 줄의 설명. 그것이 캐릭터일 것 같습니다.
캐릭터만으로는 퍼스널리티의 매력을 느끼기에 한계가 있겠죠. 캐릭터는 베낄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받는 퍼스널리티에는 꼭 스토리가 있습니다. 요리하는 돌아이 셰프는 염색한 머리와 불량한 태도를 갖고 있지만 막상 직접 대화를 나눠보면 여린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해를 많이 사기도 하죠. 경연에 나온 이유도 '방송에 나오는 것을 엄마가 좋아해서'라고 합니다.
엄청난 비극이나 좌절이 아니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스토리지만 요리하는 돌아이' 셰프님의 캐릭터와 결합해 그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줍니다.
유니콘 기업 한국신용데이터의 스토리. 다른 스타트업들과 반대로 했다는 것. 기회가 왔을 때 베팅을 걸고 올인했다는 것. 대단한 얘기는 아니지만 이 기업이 어떤 곳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지금까지 왔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한국신용데이터는 소상공인들에게 익숙함과 안정감을 주기 위해 이름도 ‘촌스럽게’ 지었다고 합니다.
1) 진실성의 중요성
하지만 마지막으로 퍼스널리티에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진실성(Integrity).
흉내 낸 캐릭터, 꾸며낸 스토리가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이는 기본 중의 기본이고요. 여기에 대해서 윤리성이 중요해집니다. 악인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받는 퍼스널리티가 되기 위해서는 착해빠진 인간이 될 필요는 없지만 빌런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플랫폼을 통해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대중에게 노출될 경우, 대중은 퍼스널리티의 도덕성을 매우 까다롭게 따집니다. 모든 대중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중에는 반드시 까다로운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퍼스널리티에 대한 평가는 까다로운 사람의 기준으로 맞춰집니다.
인터넷상의 모든 정보를 검색을 통해 샅샅이 찾아낼 수 있는 시대에, 내가 언젠가 적어놨던 부끄러운 기록은 ‘무조건’ 발견됩니다. 네티즌 수사대의 능력은 정말 뛰어나거든요. 그리고 내가 유명한 사람이 되면 될수록 나의 잘못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이 내 앞에 등장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결국 이상한 기록을 인터넷에 남기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퍼스널리티가 매력적이라고 성공하거나,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창업자의 퍼스널리티와 스타트업의 성공은 무관해요. 매력적인 퍼스널리티의 사람은 유튜버가 되는 것이 사실 맞습니다.
하지만 퍼스널리티가 지금의 사람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죠. 사람들이 유튜버나 스트리머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퍼스널리티로 사랑받고 싶어 하는 이유도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동기를 부여하고, 이들을 조직에 녹아들게 할 것인지가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개인차원에서도 퍼스널리티가 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창업자 혹은 CEO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퍼스널리티'로 사람들의 이목과 평가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피할 수 없다면 나 자신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드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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