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말 한 글로벌 기업에서 CEO 채용 면접이 열렸습니다. 한 중년 남자가 총수 방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이 남자는 14년간 총수와 함께 첨단 하드웨어를 개발해 온 수석부사장 출신의 면접자였습니다. 그는 6개월 전 이미 은퇴 아닌 은퇴를 한 상태였습니다. 면접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총수가 질문을 하려던 찰나, 후보자가 먼저 돌 직구를 던졌습니다. “이 회사의 사업은 당신의 취미인가요? 아니면 진짜 사업인가요?” “저는 당신의 취미 생활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총수는 정신이 번뜩 들었습니다. 그리고 설명을 한 참 듣더니 그를 CEO로 발탁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민간 우주기업 블루오리진을 이끌고 있는 CEO인 데이브 림프 (Dave Limp) 스토리입니다. 블루오리진은 스페이스엑스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 했지만, 림프가 CEO를 맡으면서 다시 부활 날갯짓을 하고 있습니다. 한 CEO가 몰락할 뻔 한 기업을 어떻게 살리고 있는 것일까요. 정답은 고객 중심 사고로 회사를 재무장시킨 리더십에 있습니다.
1. 머스크 vs 베이조스, 뉴스페이스 대결
뉴스페이스 시대는 정부보다 민간 기업이 항공우주 산업을 주도하는 시대를 가리킵니다. 반면 정부가 주도하는 우주 산업 시기를 올드스페이스 시대라고 합니다. 이는 미국 정부 정책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1966년 냉전이 한창일 때, NASA에 편성된 예산은 미국 연방정부 예산의 무려 4.4%를 차지했습니다.
1) 냉전이 끝나자, 민간이 나섰다
미국 정부는 정부 주도의 비효율성을 깨닫고, 적은 비용으로 더 높은 효율을 추구하고자 했습니다. 민간 우주산업을 장려한 것인데요. 특히 2004년 ‘우주 탐사 비전’을 선포하고 NASA의 프로젝트를 민간으로 이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화물과 승무원을 운송하는 프로젝트를 민간으로 넘겼습니다.
이러한 뉴스페이스 흐름을 보고 기업을 세운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 (2000년 창업)과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 (2002년 창업)가 그 주인공입니다. 2015년까지 이 둘은 엇비슷했습니다. 2015년 블루오리진은 뉴 셰퍼드라는 로켓을 수직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고, 스페이스엑스는 팰컨 9의 1단 로켓을 재사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 달에서 미끄러지다
하지만 격차는 갈수록 벌어졌습니다. 특히 두 회사는 2021년 NASA의 아르테미스(Artemis) 프로그램에 경쟁적으로 도전합니다. NASA는 민간 기업들과 손잡고, 새로운 달 착륙 시스템을 개발하고자 했습니다. 유인 달 착륙 시스템 개발(Human Landing System, HLS) 사업이었는데요.
수많은 기업이 뛰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NASA는 머스크의 손을 들어줍니다. 스페이스엑스가 제시한 비용 효율적인 설계, 기술적 잠재력, 대형 로켓, 재사용 시스템을 높게 평가한 것입니다. 해당 계약으로 머스크는 29억 달러 (약 4조 원)를 따냅니다. 베이조스는 반발했습니다.
당시 베이조스는 블루오리진 뿐 아니라 보잉, 노스롭 그러먼, 드레이퍼와 함께 팀을 이뤄 입찰에 참여했는데요. NASA가 단일 기업을 선발한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리고선 연방 회계 감사원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감사원은 미국 의회 산하 기관으로, 연방 정부 예산 지출과 운영에 대한 감사를 담당하는 조직입니다. 그 결과는,
3) 갈수록 벌어진 격차
기각이었습니다. 회계 감사원은 NASA가 제한된 예산으로 한 개 업체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블루오리진은 아르테미스 패배 이후 달 탐사만 놓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론의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또 실적도 악화일로를 걸었습니다.
스페이스엑스는 작년 매출이 87 달러 (12조 원)로 추정되는데 반해 블루오리진은 4.2억 달러 (5800억 원)로 추정돼 무려 20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기업가치 역시 2100억 달러(292조 원) 대 300~500억 달러 추정으로 격차가 큽니다.
2. “우리는 고객을 대신해 발명하는 사람일 뿐이다“
작년 말부터 블루 오리진 CEO를 맡은 데이브 림프는 아마존의 음성비서인 ‘알렉사’의 아버지라고 불릴법한 인물입니다. 아마존에서 그의 최종 직함은 디바이스&서비스 수석부사장이었습니다. 알렉사 개발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베이조스는 아이폰의 열풍을 목도하고, 2014년 야심작인 파이어폰을 출시했습니다. 직접 운영체제인 파이어OS도 개발했지만, 사용법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그 결과 1억 7000만 달러 손실을 회사에 끼치고 단종된 비운을 겪습니다.
1) 실패는 또 다른 자양분
희대의 실패작은 다른 개발의 자양분이 됩니다. 바로 알렉사인데요. 아마존의 하드웨어 연구소인 랩126은 시애틀이 아닌 실리콘밸리에 있는 산마테오 이스트팰로앨토에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이곳은 킨들을 개발한 하드웨어 전진기지인데요. 림프는 이곳에서 알렉사 프로젝트를 주도합니다.
그는 알렉사 에코를 앰비언트 컴퓨팅(Ambient Computing)이라고 명명합니다. 지금까지 컴퓨터는 눈에 확 보이는 존재인데, 미래의 컴퓨터는 사물에 녹아 스며드는 존재가 되리라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는 2022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음악을 재생하고 싶을 때 이어폰을 꽂는 대신, 음악 틀어라고 말할 수 있고, 스포츠를 보고 싶을 때 ESPN으로 맞춰라고 말하면 모두가 함께 스포츠 경기를 볼 수 있습니다.”
2) 고객의 반응을 중시하라
림프는 고객 피드백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세상에 없는 제품이 나왔으니, 제품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가 철저히 고객 손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음성 인식 정확도와 사용 편의성에 대한 사용자 피드백을 받아, 지속적으로 제품을 개선했습니다. 초기에는 알렉사가 특정 명령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오작동을 일으켰지만 지금은 월등히 개선된 상태입니다.
그는 고객 중심적 사고를 서비스로도 연결합니다. 림프의 설명입니다.
“AI가 발전해서 이제는 사람의 행동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30일 연속으로 같은 시간에 현관 불을 끄다, 31일째에 하지 않는다면 알렉사가 알아낼 겁니다. 우리는 이것을 '직감'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알렉사 투게더라는 프로그램을 론칭했습니다. 홀로 머무는 가족을 케어하는 서비스입니다.
3) 어떤 가치보다 중요한 연결
월 19.9달러를 내면 알렉사와 가족을 연동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알렉사가 가족의 이상 패턴을 감지해 이를 가족에게 알려줍니다. 또 만약 홀로 있는 가족이 넘어지면 ‘알렉사 도와줘’를 외치는 것만으로 SOS 신호가 가족에게 가고, 응급 요원을 자동호출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노력에 알렉사는 지금껏 무려 5억대 이상 판매 됐습니다.
림프는 이런 과정에서 그 어떤 가치보다 ‘연결’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림프의 설명입니다.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다시 정의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의미가 다르거든요. 아이들에게 묻는다면 로블록스나 마인크래프트를 꼽을 겁니다. 또 다른 성인에게 물어보면, VR헤드셋을 떠올릴 겁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메타버스는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사람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4) AI 로봇을 만든 이유
이런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고객을 대신해 발명하는 것뿐입니다.” 사람들은 집에 홀로 있는 반려견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마트 캠을 방마다 설치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림프의 팀이 개발한 것이 AI 로봇 아스트로 (Astro)입니다. 아스트로는 스마트폰 앱으로 조종할 수 있고,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집안 곳곳을 순찰합니다.
머리에서 나오는 잠망경 카메라가 집안 곳곳을 비춰가며 고객이 궁금한 내용을 실시간 전달해 줍니다. 또 특정 구역 탐지를 막는 진입금지 기능을 집어넣었습니다. 림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들이 일주일에 수십억 번씩 알렉사와 상호 작용하는데요. 고객은 정말 다양한 용도로 알렉사를 활용합니다. 우리가 고객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요구 사항을 이해하고 기술을 조합해 제공하는 것입니다.”
5) 프로젝트 카이퍼를 맡다
아마존은 2019년부터 위성 인터넷 서비스 사업인 프로젝트 카이퍼(Project Kuiper)를 추진했습니다. 스페이스엑스가 스타링크 서비스를 시작한 지 4년 만이었는데요. 베이조스는 고객을 위한 프로젝트를 철저히 수행한, 림프에게 카이퍼 프로젝트까지 맡겼습니다. 이후 그는 블루오리진 CEO가 되기 위한 인터뷰를 합니다.
3. 작은 가능성이 있다면, 선택과 집중을 하세요!
림프는 블루오리진 면접에서부터 베이조스를 흔들어댔습니다. “블루오리진은 취미인가요. 사업인가요.”“당신의 취미를 어떻게 운영할지는 저도 몰라요.” 베이조스는 림프의 말을 듣고, 블루오리진이 완벽한 사업체가 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실 림프는 우주 산업에서 신입사원이나 다름없습니다. 위성을 빼고는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배운 바를 블루오리진에 이식하기 시작했습니다.
1) NASA에게 외면받은 우주기업
블루오리진은 약 1만 명에 달하는 직원을 보유한 매우 큰 민간 우주기업인데, 유일한 고객이나 다름없는 NASA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었습니다. 또 베이조스는 매년 수십억 달러를 써가며 우주 관광 사업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벌려 놓은 프로젝트만 로켓 발사, 우주정거장 운송 사업, 달 착륙선, 우주 관광 등 다양했습니다. 림프는 직원들을 한 명씩 만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사 전체가 R&D에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반짝이는 공장을 만드는데 능숙했고, 멋진 프로토타입을 만드는데도 탁월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프로토타입 만들기 위해 사업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림프는 아마존에서 배운 ‘고객 중심의 원칙’을 블루오리진에 심고 싶었습니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설명입니다.
2) 눈빛만 반짝이던 직원들
“블루오리진의 사명은 아마존과는 달랐습니다. 블루오리진 직원들은 그야말로 우주 매니아기 때문에, 우주 이야기를 할 때면 눈이 반짝이고 우주 선교사처럼 말했습니다.” 그래서 림프는 특단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리더십을 모두 교체한 것입니다. 그가 새로 뽑은 인물은,
① 앨런 파커 CFO: 아마존과 부동산 플랫폼 질로우 출신 CFO. 블루오리진 재정 관리와 비용 절감을 위해 투입
② 제니퍼 페냐-레아노스 CPO: 아마존 디바이스 팀에서 인사 부서를 담당한 경력자. 새로운 인사전략을 설계
③ 이안 리처드슨 제조운영부문 수석부사장(SVP). 스페이스엑스에서 오랜 기간 생산 책임자로 활동한 베테랑. 대규모 생산 관리에 탁월
④ 팀 콜린스 글로벌공급망 부사장: 물류 기업플렉스포트와 아마존에서 글로벌 물류 운영을 담당. 공급망 문제없는 안정적 운영 역할
3) 너무 많은 프로젝트들
이후 더 많은 직원들을 공장에 전진 배치합니다. “아무리 많은 자본을 투자하고, 기계를 사더라도, 갖고만 있으면 쓸모가 없습니다.” 림프는 수많은 프로젝트 가운데서 무엇보다 2개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새 로켓인 뉴 글렌(New Glenn)을 서둘러 출시하고, 로켓 엔진인 BE-4 생산량을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고객인 NASA와 위성 사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청사진도 그렸습니다. 올해 말까지 엔진을 10일마다 1개는 생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고, 내년에는 새 로켓인 뉴 글렌을 최소 10회 발사한다! 하지만 경쟁 상대는 스페이스엑스입니다. 잠시 로켓인 뉴 글렌과 엔진인 BE-4를 살펴보겠습니다.
① 뉴글렌: 약 98미터 (320피트) 짜리 2단 로켓, 7개의 BE-4 엔진을 장착. 172만 Kgf (1 kgf는 지구에서 1kg의 질량을 가속시키는 데 필요한 힘) 추력 가능. 저궤도까지는 45톤 화물, 정지 전이 궤도까지는 13톤을 운반 가능. 부스터 재사용에 도전 중.
② BE-4 엔진: 액화 천연가스와 액체 산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폐쇄 사이클형 메타엔진. 엔진 하나당 24만 9000 kgf에 달하는 추력.
4) 변화와 혁신의 속도가 전부다
엄청나 보이지만 아직 스페이스엑스의 스타십보다는 여러 모로 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스타십은 높이가 120미터고 저궤도에 무려 2배 이상인 100톤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와 혁신의 속도입니다. 블루오리진에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달 23일 블루오리진은 관광 목적으로 하위궤도까지 올리는 뉴 셰퍼드(New Shepard)라는 로켓을 발사했습니다. 해당 로켓에는 조종사가 없었습니다.
무인으로 발사해 최대 101km 고도에 도달 한 뒤, 7분 20초 만에 안전하게 지상에 착륙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블루오리진은 지금껏 조종사와 함께 6명 (1인당 20~30만 달러 추정)을 우주 관광 보냈는데요. 앞으로는 승객들이 2일간 기본 훈련만 받고 우주 관광을 갈 수 있는 시대를 열겠다는 메시지입니다. 조종사 인건비를 아낄 수 있고, 조종사 좌석까지 여섯 명을 모두 탑승시킬 수 있으니 가격 경쟁력은 더 높아질 전망입니다.
5)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는 거지?
이런 선택과 집중은 프로젝트 수주로도 이어집니다. 림프는 올 들어 56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국방부의 국가안보 우주 발사 프로그램과 1억 달러 규모의 미국 우주군의 우주 통신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를 잇달아 따냈습니다. 그리고 올해 말까지 뉴 글렌을 발사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매년 150회씩 발사하는 스페이스엑스에 비해 아직 경쟁은 안 되지만, 한 발씩 전진하는 모습입니다.
특히 뉴 글렌의 부스터를 재활용 회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데요. 조만간 대서양에 있는 재킬린이라는 선박, 60미터 원안에 착지하는 모습을 볼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림프는 뉴 글렌의 1단계 부스터 이름을 이렇게 지었습니다.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는 거지?(So You’re Telling Me There’s a Chance?)”
아직 데이브 림프가 블루 오리진 CEO로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회사가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맞이할지는 속단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간 고객을 최우선으로 삼고 중요한 선택과 집중을 이끌어 온 그의 노하우를 볼 때, 블루 오리진의 미래는 밝아 보입니다. 림프는 말했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고 흥미롭더라도, 고객이 가장 우선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고객 중심 가치를 모토로 삼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아마존은 ‘고객 집착’을, 스타벅스는 ‘따뜻한 환영의 문화’를, LG전자는 ‘고객을 위한 가치 창출’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기업의 진정한 성공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넘어, 그 기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제공할 때 찾아옵니다,
영국의 고급 백화점 체인 셀프리지스를 창업한 해리 고든 셀프리지는 “고객은 늘 옳다(The customer is always right)”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고객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고객을 우선으로 삼는 기업이야말로 미래를 진정 창조할 수 있는 주인공이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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