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르 세갈(Lasar Segall), 브라질, 1891-1957
리투아니아 태생의 브라질 화가. 베를린과 드레스덴에서 미술 공부를 하였으며 표현주의 경향을 보여주는 유럽의 초기 모더니스트 중 한 사람이다. 1923년 브라질로 와서 브라질 모더니즘 운동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차세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1891년 리투아니아(당시 제정러시아의 지배를 받음)의 수도 빌뉴스(Vilnius)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태어났다. 1906년 베를린에 있는 왕립 프러시안 미술대학(The Royal Prussian College of Fine Arts)에 다녔지만 학교 교육에 실망한 그는 1910년 드레스덴에서 정통 유대주의와 큐비즘적 시각을 결합시킨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1912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큰 인상을 받고 1913년 그곳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그해 말 독일로 돌아온 그는 러시아 시민권자라는 이유로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독일에 강제 억류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게오르게 그로스(George Grosz), 오토 딕스(Otto Dix), 쿠르트 슈비터스(Kurt Schwitters) 등을 만났고 1919년 콘라드 펠릭스뮬러(Conrad Felixmuller)와 함께 급진적인 예술가 그룹인 드레스덴 분리파를 창립하였다. 이 그룹은 표현주의적 아방가르드 미학을 추구하였다.
1923년에 다시 브라질로 와서 1927년 브라질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브라질에는 이미 그의 형제들 중 몇 명이 살고 있었으며 독일의 숨 막힐 듯한 환경에서 벗어나 그의 예술은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였다. 그는 전시회뿐만 아니라 여러 조직을 이끌면서 당시 진행 중이던 브라질 모더니즘 운동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차세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강렬한 원시의 미를 간직한 그의 작품은 주로 자신의 경험에 비춘 전쟁에 대한 기억과 유대인의 이산(離散), 노동자와 매춘부, 이민자들의 생활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1928년부터 1932년까지 파리에 있으면서 조각에 관심을 가지고 청동 작업을 하였으며 정물과 풍경, 모성, 유대교를 주제로 한 따스한 정감의 작품을 선보였다. 1932년 상파울루로 돌아와서는 1957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현재 대부분의 작품들은 그가 사망한 지 10주기가 되는 1967년에 가족들에 의해 세워진 상파울루의 ‘라사르 세갈 미술관(Museu Lasar Segall)’에 소장되어 있다. 이곳은 1932년부터 그가 살았던 집이자 스튜디오로 상파울루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건축물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주요 작품에는 《만남 Encounter》(1924), 《바나나 농장 Bananal》(1927), 《자화상 Auto-Retrato》(1935), 《이민자의 배 Navio de Imigrantes》(1941), 《전쟁 Guerra》(194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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