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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예술

로버트 카파(Robert Capa), 위대한 종군사진작가, 1913.10.22. ~ 1954.05.25.

by 트렌디한 일반 상식 2023.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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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파(Robert Capa), 위대한 종군사진작가, 1913.10.22. ~ 1954.05.25.
로버트 카파(Robert Capa), 위대한 종군사진작가, 1913.10.22. ~ 1954.05.25.
로버트 카파(Robert Capa), 위대한 종군사진작가, 1913.10.22. ~ 1954.05.25.
로버트 카파(Robert Capa), 위대한 종군사진작가, 1913.10.22. ~ 1954.05.25.
로버트 카파(Robert Capa), 위대한 종군사진작가, 1913.10.22. ~ 1954.05.25.
로버트 카파(Robert Capa), 위대한 종군사진작가, 1913.10.22. ~ 1954.05.25.
로버트 카파(Robert Capa), 위대한 종군사진작가, 1913.10.22. ~ 1954.05.25.
로버트 카파(Robert Capa), 위대한 종군사진작가, 1913.10.22. ~ 1954.05.25.
로버트 카파(Robert Capa), 위대한 종군사진작가, 1913.10.22. ~ 1954.05.25.
로버트 카파(Robert Capa), 위대한 종군사진작가, 1913.10.22. ~ 1954.05.25.
로버트 카파(Robert Capa), 위대한 종군사진작가, 1913.10.22. ~ 1954.05.25.

 

로버트 카파(Robert Capa), 위대한 종군사진작가, 1913.10.22. ~ 195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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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트남에서 지뢰 밟고 사망하다.

1954년 5월 25일 카파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은 ‘군인들의 뒷모습’이었다. 베트남의 호찌민과 프랑스 군과의 전투였다. 베트남의 남딘 마을에서 타이빈을 향해 걸어가는 프랑스 군인들의 뒷모습이 카파의 사진기가 본 마지막 장면이다.

 

카파는 왼손에 카메라를 쥐고 지뢰를 밟은 채 폭발되어 버렸다. 순식간에 터지는 지뢰처럼, 카파의 인생은 끔찍한 전쟁과 고통의 순간을 찍어낸 찰나의 인생이었다. 뒤에서 지뢰가 터지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카파가 그 폭발 속에 있는 줄도 모르고 이런 말을 했다. “젠장, 저 장면이 카파가 원하는 사진인데.”

 

2. 그가 보았던 모든 것들을 단 한 장의 사진으로 기록한 인생

헬멧과 군복차림에 카메라를 둘러매고 장갑차에 기대어 있는 카파(1944)
카파는 자신이 원하는 사진의 한 장면처럼 세상을 떠났다. 라이카 카메라를 목에 걸고 그가 보았던 모든 것을 단 한 장의 사진으로 기록한 인생이었다.'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종군 사진작가'라는 평가가 그의 이니셜처럼 뇌리에 스친다.

 

제1회 <로버트 카파 상>을 수상한 하워드 소슈렉은 훗날 카파의 사망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무엇보다 카파가 매력적인 것은 전설, 그러니까 그가 자신을 재창조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카파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미국의 소설가 존 스타인백은 “카파의 영향은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은 평생 카파의 일부를 지닌 채 살아갈 것이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이다”라고 그를 추모하는 글을 썼다. 카파는 존 스타인백을 포함해서 20세기 전쟁의 시대를 같이 살았던 거장들, 스페인 내전시절에 만났던 헤밍웨이를 비롯해 피카소, 마티스와 같은 멋진 남자들과 우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잉그리드 버그만, 비비안 리와 같은 다수의 할리우드 스타들과의 사랑, 윈스턴 처질 수상의 며느리인 파멜라 처칠과의 뜨거운 연애, 그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원한 연인’ 게르다 타로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 편력은 잠시도 쉴 날이 없는 보헤미안의 삶이었다.

 

카파는 삶에도 여자에게도 심지어 자신에게도 정착하지 못했다. 라이카 카메라의 셔터를 한 손으로 누르면서 도박, 술, 여자, 담배를 항상 손에 쥐고 다녔다. 그의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손에는 죽음이 쥐어져 있었다.(그는 육손으로 태어났다.) 여성편력과 도박 중독, 방랑벽은 그가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았다”라고 말한 그 엄청난 충격에서 터져 나온 파편인지도 모른다.

 

3. "포탄이 터지며 지면이 흔들렸다. 사진에서 화약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로버트 카파(본명 앙드레 프리드먼)는 1913년 10월 22일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유대인 집안에서 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일 년 전에 이 세상에 나왔으니, 그와 전쟁은 연년생의 형제와 같았다.

 

1931년 정치적인 박해와 반유대주의를 피해 베를린으로 피신한 앙드레 프리드먼은 그곳에서 사진 에이전시 데포트의 암실 조수로 취직하면서 사진기자의 길로 접어든다. 가난한 유대인 젊은이에게 사진기자는 꽤 괜찮은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사진기사로서 앙드레 프리드먼은 로버트 카파라는 미국식 이름을 쓰기 시작한다.

 

사진가 카파는 트로츠키의 마지막 대중연설, 스페인 내전에서 총을 맞고 쓰러지는 공화군 병사의 모습,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사진, 프랑스가 나치의 지배에서 벗어나자 머리를 박박 밀어버린 프랑스 여인이 동네 사람들에게 조리돌림 당하는 사진 등 이른바 포토저널리즘의 신화를 만들어 냈다.

 

자기희생과 위험을 무릅쓴 취재 정신을 뜻하는 ‘카파이즘’도 그의 사진 속에서 태어났다. 동시에 카파는 프리랜서 사진작가들의 권익과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역시 위대한 사진작가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데이비드 침 시모어 등과 보도사진 통신사인 <매그넘>을 설립했고, 잠시 경영을 맡기도 했다. (경영자 카파는 재능도 실력도 형편없었다. 심지어 브레송에게 갈 돈마저도 슬쩍하곤 했다.)

 

전쟁은 공포였고 그 중심에 있던 카파는 운이 좋았다. 카파가 종군기자로서 활동한 이력을 보면, 그는 분명 어떤 절대자의 보호를 받았음이 틀림없다. 적의 총알이나 폭탄은 종군기자를 피해 가지 않는다. 저격병의 방아쇠는 카파가 사진 찍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는 바로 자신의 옆에서 쓰러진 병사들의 사진을 찍었다. 즉, 자신이 그 사진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다. 카파는 그런 순간을 묘하게 피하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의 초점과 노출은 정확했다. 우리의 사진 기자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20미터 떨어진 곳에서 포탄이 터지며 폭발로 지면이 흔들렸다. (……) 사진에서 화약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막바지에 이른 스페인 내전 중, 스페인 병사가 폭격을 받아 비틀거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에 붙은 기사의 한 부분이다. 말 그대로 그의 사진에는 화약 냄새가 배어 있었다.

 

카파는 뼛속까지 그 냄새가 배어있는 기자였다. 헤밍웨이와 세계대전 취재를 나가던 중 둘의 사이가 나빠지는 일이 있었다. 헤밍웨이가 지프에서 튕겨져 나갔고, 독일군의 총알이 쏟아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카파는 물끄러미 카메라를 손에 쥐고 “어서 꺼져버리라”라고 소리치는 위대한 작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헤밍웨이는 연하의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 종군기자가 자신이 독일군의 총알에 벌집이 되는 순간을 찍으려고 서있는 카파라고 생각한 것이다. 카파는 그런 오해를 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4. 시체가 파도를 따라 넘실거렸고 그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은 사진 찍는 것뿐

그는 스페인 내전을 비롯해, 2차 세계대전, 중일전쟁, 이스라엘의 독립전쟁, 베트남 전쟁 등에서 전 생애를 보냈다. 한국전쟁 때에는 잠시 카메라를 놓고 쉬고 있었다. 특히 노르망디 상륙작전, 오마하 해변에서의 치열한 전투 장면은 카파가 아니라면 찍을 수 없는 사진이었다. 그 상황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초반부에 나오는 전투장면을 생각하면 된다.

 

당시 최대의 잡지였던 <라이프> 지는 카파의 사진만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평전에 나오는 표현대로 해안선을 따라 죽은 자들만이 파도를 따라 넘실거렸고, 그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바로 옆에서 병사들의 살덩어리가 조각나며 그의 카메라에 들러붙었다.

 

1945년 4월 18일 라이프치히에서 전쟁(2차 세계대전)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한 한 미국 병사가 갑자기 날아온 저격병의 총알을 맞고 쓰러진 사진이 있다. 카파는 이 사진이 자신의 사진 중에서 가장 비통한 사진이라고 했다. 하지만 카파의 거의 모든 사진이 비통하고 고통스러운 사진들이다.

 

그것은 멈추어 있지만, 소리가 들리고, 냄새가 나며, 눈물이 흐른다. 카파 평전을 저술한 알렉스 커쇼는 카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카파의 가장 위대한 진실은 기관도 메달도 매그넘도 아니다. 모든 사진가에게 그러하듯, 그의 사진이다.”

 

5. 필자가 추천하는 덧붙여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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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파의 2차 세계대전 종군기를 담은 책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는 카파가 쓴 귀한 정신이다. 전쟁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카파는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다.'라는 보도 사진의 잠언을 남긴다. 사진으로 찍어낼 수 없는 세상도 카파는 역시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 그의 호흡소리와 땀 냄새가 푹푹 나는 책이다.

 

<로버트 카파-그는 너무 많은 걸 보았다>는 카파의 평전으로 그의 일대기를 드라마틱하게 다루고 있다. 전쟁과 인간, 사랑과 방황. 20세기를 가장 열심히 살았던 카파와 그의 주위에 있는 열정적인 사람, 사람들이 있다. 이 두 책에는 카파의 전설적인 사진들이 잘 수록되어 있다. 책을 읽고 나서 그 사진들을 다시 한번 보고 있노라면, 서쪽 하늘의 놀을 보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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