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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예술

바티칸 미술관 (feat. 가장 작은 나라, 가장 큰 미술관)

by 트렌디한 일반 상식 2024.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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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미술관 (feat. 가장 작은 나라, 가장 큰 미술관)
바티칸 미술관 (feat. 가장 작은 나라, 가장 큰 미술관)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의 시내 가운데 위치한 도시 속의 도시 바티칸 시국은 면적이 0.44제곱킬로미터에다 인구는 1,000여 명인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지만, 한 국가가 면적당 보유한 미술품의 숫자로 보자면 바티칸은 세계 최강국 중 하나다. 바티칸은 주권 국가인 동시에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다. 다만 바티칸 박물관(미술관)이라는 공식적인 명칭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어로 ‘Vatican Museums’, 즉 복수로 표현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바티칸은 여러 미술관, 박물관이 모여 있는 예술 복합 단지에 가깝다. 오늘날 바티칸에는 50여 개의 크고 작은 미술관, 박물관들이 모여 있다. 그중 관람객들에게 유명하고 인기 있는 곳으로는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 키아라몬티 미술관, 바티칸 회화 갤러리, 보르자의 저택, 라파엘로의 방, 시스티나 예배당 등이 있다. 비단 미술관뿐 아니라 바티칸 경내는 방문자가 언제 어디로 발길을 옮기더라도 뛰어난 회화와 조각들과 마주치게 되어 있다.

 

바티칸 미술관 (feat. 가장 작은 나라, 가장 큰 미술관)
바티칸 미술관 (feat. 가장 작은 나라, 가장 큰 미술관)

 

1. ‘최고 존엄’의 경지 - <프리마 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상>

바티칸에는 로마 시대 조각들이 즐비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흔히 <프리마 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상>이라고 불리는 작품의 존재감은 단연 발군이다. 이 조각은 군복 차림의 로마 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형상화한 것이다. 조각을 보면, 군장 한 황제가 왼손에는 지휘봉(현재는 없다)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전방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는 십중팔구 군 장병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황제는 막 전투에 나서는(혹은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병들에게 일장 연설로 사기를 북돋아야 하는 엄숙한 상황임에도 긴장은커녕 가볍고 삐딱한 자세로 여유 있게 상황을 장악하고 있다. 여기서 만약 빈틈없이 꼿꼿한 차렷 자세로 연설을 하게 되면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독재자는 될지언정 ‘존엄한 자’의 경지는 아닐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다비드상에서 미켈란젤로가 사용한 콘트라포스토가 다소 정적인 자세라면, 아우구스투스상의 경우는 더 동적이다. 다비드가 골리앗과 필리스티아(블레셋)인들을 바라보며 전략을 짜는 가운데 삐딱한 자세를 취했다면,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경우는 연설하다 스스로 약간 흥에 겨워 몸을 앞으로 내미는 듯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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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을 보고도 별생각 없이 지나칠 수 있지만 일단 알아채면 의아스러운 부분은 아우구스투스가 ‘맨발’이라는 점이다. 늦잠을 자다가 서둘러 나오느라 미처 군화를 신지 못하고 맨발로 나온 걸까? 물론 아니다. 콘트라포스토가 최고 존엄의 여유를 상징한다면, 맨발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미 아우구스투스가 인간을 넘은 신적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신이라면 굳이 보호 장구인 군화가 필요 없다.

 

조각에서 아우구스투스의 신성을 암시하는 장치는 비단 맨발만이 아니다. 그의 오른쪽 장딴지에 밀착된 큐피드는 미의 여신 비너스의 자식인데, 아우구스투스 당대 로마에는 그의 양부 카이사르의 가문이 비너스의 후손이라는 전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 큐피드는 돌고래의 등에 올라타 있는데, 돌고래는 바다의 거품 속에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진 비너스(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상기하자)의 상징임과 동시에 아우구스투스의 대권이 바다에서 결정되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작품명에 흔히 붙는 ‘프리마 포르타’는 조각이 발굴된 로마시 북쪽 근교에 있는 실제 지명으로, 문제의 조각은 아우구스투스의 두 번째 부인인 리비아의 저택 유적지에서 발굴된 것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어 프리마 포르타가 ‘첫 번째 관문’이라는 의미임을 생각하면 아우구스투스의 조각이 그곳에서 발견된 것도 우연 아닌 우연의 일치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였을 뿐 아니라 그의 치세로부터 이른바 팍스 로마나(Pax Romana), 즉 로마의 평화, 그 태평성대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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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는 여러 의미에서 새로운 문(포르타)을 열어젖혀 로마라는 도시 국가를 세계 제국으로 변신시킨 장본인이었다. 이렇게 <프리마 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상>은 아우구스투스의 위대함, 신성함을 증명하는 여러 상징과 메시지를 집적시킨 정치 선전 도구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 결과물은 키치적 유치함이나 과장된 메시지의 전달과는 거리가 먼, 고대 조각 예술의 진수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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