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엽(申大燁), 한국, 화가, 畵話 : 말하는 그림, 현재
연전에 친구들과 각자의 5년 뒤의 계획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고려불화 급의 작품을 그려 보겠다."라고 했었다. 그날 이후 고려불화에 대한 강박이 생겼다. 16세기 북유럽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브뤼겔의 작품들, 북송의 장택단이 그린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같은 그림도 그려보고 싶다. 사라지는 시장의 북적 거리는 모습, 하교하는 아이들이 모여있는 구멍가게, 골목에 뛰어나와 노는 아이들, 단원 김홍도가 그랬듯이 우리의 산하, 우리 이웃의 사는 모습들을 다정한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보고 싶다.
묘사의 정점을 향한 욕망, 신대엽의 인물화 ● 언어와 그림 - 실재하는 것을 묘사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두 묘사법은 아주 상반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령, 언어에 의한 묘사는 언어 자체가 가진 관념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지만 듣거나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해 똑같은 것을 듣거나 읽고도 저마다 서로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게 한다. 이 경우 작가는 묘사의 주체일 뿐 최종적으로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건 독자다. 반면, 그림을 통한 묘사는 언어가 가진 관념의 한계에 갇히지는 않지만 오직 화가가 만들어낸 '이미지' 하나만이 존재한다. 즉, 대상과 이미지가 1:1로 대응하는 것이다. 이 경우 화가는 묘사의 주체일 뿐 아니라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관객은 다만 화가가 구체화한 이미지를 받아들인 뒤 자신의 미적 기준에 의해 감상하고 평가할 뿐이다. 방법도 현저히 다르고 결과 또한 전혀 다른 이 둘을 '묘사'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얼핏 모순된 듯싶지만, 묘사의 내면과 외연이 그만큼 깊어지고 넓어진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다 한 학기를 남겨놓고 갑자기 학업을 중단한 뒤 거의 10여 년을 캔버스와 물감으로부터 떨어져 있다가 어느 날 동양화 붓과 먹으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독특한 이력의 화가 신대엽 - 첫 개인전부터 20여 년이 지나는 동안 그의 그림들을 유심히 지켜봐 온 내게 그의 작업은 "그림으로 가능한 묘사는 어디까지인가를 알기 위해 떠난 여정"으로 이해된다. 실제로 작가의 생각이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이 판단을 조금 더 심화하면, 화가 신대엽이 궁금해하는 것은 어쩌면 "묘사의 극한이 기예의 극한인지, 기예의 극한이라면 그 극한에 닿은 그림들은 감상자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가 아닐까 싶다. 그가 이따금 뱉어내는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라는 말이 단지 겸양의 언설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예'라는 말에는 정신보다 기술이 현저하거니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술'과 기술은 흔히 상충하기 때문이다.
화가 신대엽이 스스로 예술가임을 부인하는 언사를 서슴지 않는 데는 물론 '예술'이란 단어에 담긴 고매한 품격에 대해 그가 생래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만, 그의 길고 지독하고 끈끈한 묘사에의 여정을 보고 있으면 두 가지 사실이 또렷해진다. 하나는, 묘사의 여정에서 '기예' 하나를 붙드는 것조차 버거운 일임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은 그다음의 일이거나, 우연히 얻어걸리는 무엇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술가의 범주에서 자신을 이격 시키는 그의 태도에서 읽히는 또 다른 사실 하나는 보다 근원적인데, 예술의 개념과 본질, 예술에 대한 일반적 태도 자체를 의심하는 것이다. 그의 의심을 환원하면 결국 "무엇을 예술이라고 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된다. 그가 자조적으로 내뱉곤 하는 '화가놀이'나 '예술놀이'라는 말에는 이 근원적 물음이 섬뜩하게 담겨 있다. 이 물음은 물론 신대엽 자신에게 던지는 것이지만, 예술가로 자처하는 화가들에게도, 자신들이 하는 작업을 예술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화가들에게도 당연히 유효한 질문이다.
초기에서 10년쯤을 지나는 동안 신대엽이 선보인 것은 보통의 동양/한국화에서 볼 수 있는 자유로운 터치와 부드러운 색감을 가진 작품들이었다. 산수와 기물, 인물과 동물에서 당시 그만의 고유한 특징을 굳이 찾자면 대상들의 표정에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는 것, 정확한 데생에 의한 구도와 비례가 감상자를 편안하게 한다는 것, 화제의 글씨가 잘 정돈되어 있다는 것 정도일 텐데, 여기까지는 아직 묘사에 대한 신대엽의 '시꺼먼' 속내가 충분히 드러났다고 보기 힘들다. 그 속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나무와 꽃이 함께 있는 새들로 전시장을 가득 채운 세 번째 개인전이었다. 솔드아웃의 짜릿한 경험을 선사하기도 한 그 전시는 참새 100마리가 커다란 나무 한 그루에 저마다 다른 표정과 몸짓으로 깃든 「백작도(百雀圖)」로 진화하면서 묘사에 대한 그의 여정은 본격적으로 이어진다. 「백작도」 전후로 왕성하게 제작되기 시작한 축권(軸券scroll painting:세로보다 가로가 현저히 긴 두루마리 그림)은 그의 묘사에 대한 지향을 확연히 드러낸다.
이마를 맞댄 채 옹기종기 붙어 있던 허름한 집들이 헐리기 전의 봉의산 주변 다양한 모습들이 담긴 「봉의산도」와 자리를 옮기기 전 재래시장의 모습을 담은 「풍물시장」, 조선 풍속화를 보는 듯한 「나물 캐기」와 「천렵」, 도시화의 그늘이 드리운 골목길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지금은 잊힌 놀이들을 하게 만든 「아이들 놀이」는 역사화(歷史畵historical painting)로도 기릴 만한 작품들이다. 이들이 현대화에 밀려나 사라지거나 옮겨간 모습들을 담고 있다면, 이후에 차례로 그려지는 세 개의 축구건 「그의 꿈속에 나오는」과 「아버지의 꿈」, 그리고 청(淸) 건륭연간에 예술혼을 살랐던 이른바 양주팔괴(揚州八怪)를 빗대어 춘천의 여덟 괴짜화가를 한 화폭에 담은 「춘주 8괴」는, 역사로서의 시간과 개인사로서의 시간이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에 대한 화가의 생각을 읽게 하거니와 화가는 시간이라는 관념을 어떻게 그림으로 형상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적 성격도 가지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다섯 번째인 『Who I Am』전은 그동안 축구선들을 비롯해 크고 작은 그림들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묘사에 대한 화가 신대엽의 여정이 어디쯤 다다랐는지를 보여주고, 앞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흥미로운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조선시대 초상화의 전형을 그대로 모사한 「김이안 초상」과 「윤급 초상」은 그가 묘사의 한 궁극으로 여기는 '고려불화'와 세계적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고개지(顧愷之)의 '여사잠도(女史箴圖)'류를 향한 일종의 습작 성격을 가진다. 제목에 '모사'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아마 그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즈음 한반도 평화의 열쇠를 쥔 세 인물(문재인, 김정은, 트럼프)의 초상화가 이번 전시에 등장한 것도 흥미로운데, 그들의 머리 위에 각기 다른 모자들을 씌워놓음으로써 그들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지우고 '사람 아무개'로 전환시킨 화가의 의도가 돋보인다. 또한 처음 그린 것으로 짐작되는 화가 본인과 아내, 「노인」이란 같은 제목을 가진 서로 다른 두 초상에서 주목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얼굴 표정과 그들이 입은 복장의 디테일이다. 얼굴의 표정과 복장의 디테일은 정밀한 묘사에 있어 서양화와 동양/한국화가 가지는 차이 내지 다름을 확인하게 해 주는데, 이건 아무래도 화가에게 직접 물어야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있을 듯싶다.
『Who I Am』전에서 나를 속절없이 끌어당긴 것은 맨발의 중년 남자가 의자에 앉아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그 사람의 의자」와 어지간히 취기가 오른 세 명의 여자가 바닥난 술을 아쉬워하는 「원 모어 비어」다. 사람보다는 의자라는 '물리적 형상'이 압도하는 「그 사람의 의자」는 정신이나 영혼 같은 비(非) 물리적 요소에 그다지 관대하지 않은, 진화과학자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신대엽의 냉혹한 세계관을 드러낸다. 하지만 남자가 입은 짙은 회색빛 점퍼와 의자 다리에 조그맣게 묻은, 남자가 화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파란색 물감 자국은 신대엽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냉혹함은 예민한 관찰과 핍진한 사유가 만들어낸 결과물일 뿐, 실은 그 안에 믿기지 않을 정도의 온기가 깃들어 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낭만'이란 단어로 바꾸어도 좋을 그 온기는 「원 모어 비어」에서 더 진하게 드러난다. 떠나기 전에 커피를 한 잔 더 마셔야겠다던 밥 딜런의 노래 '원 모어 컵 오브 커피'에서 커피를 맥주로 바꾸어놓은 이 그림은 정밀한 묘사 너머로 슬그머니 끌어당긴다. 가령, 술꾼들과 떨어진 채 탁자 한끝에 외로이 놓인 어느 소설가의 장편소설인 듯한 책 한 권이 주는 외로움 같은.
그림은 언어만큼이나 오래된, 어쩌면 언어보다 더 오래된 '묘사의 수단'일지 모른다. 그 증거들은 인류의 시원을 드러내는 숱한 동굴의 벽들에 아로새겨져 있다. 인류 최초의 화가들이 가졌던 그 견고한 '캔버스'에 묘사된 순록과 맹수, 물고기와 고래, 사냥하는 남자와 출산하는 여인은 실재하는 순록과 맹수, 물고기와 고래, 사냥하는 남자와 출산하는 여인만큼이나 '실제로' 현실의 공간에 존재한다. 그림은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실재적 존재를 눈으로 확인시키는 방식으로, 그렇게, 우리에게로 왔다.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재현(再現)'이나 '환영(幻影)'이란 단어를 사용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화가들에게 "왜 그림을 그리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서 들을 수 있는 수많은 답변들에서 이런저런 주관적 이유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실재하는 것을 화폭에 옮겨놓고 싶어서"라는 매우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일반적인 답변이지 않을까. 화가 신대엽 또한 다르지 않다.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는 더 깊이 묘사의 심연에 닿으려 하고, 더 높이 묘사의 정점에 다다르려 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Who am I)?"라고 묻지 않고 "나라는 존재(Who I am)"를 끌어안은 채 묵묵히 묘사의 여정을 가고 있는 신대엽의 다섯 번째 개인전 - 내가 발견한, 실은 새삼 확인한, 따뜻함과 외로움과 낭만이 앞으로의 그의 여정에 소중한 양식이 되어주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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