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이 책은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 후에 나왔다. 어떻게 트럼프같이 “반민주적인”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를 분석하고, 미국 사회의 변화를 촉구한 책이다. 물론 이후에 트럼프는 보란 듯이 78세의 나이로 47번째 대통령이 되었지만.
책에 따르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왜곡된 제도에 힘입어 정치가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의 대부분이 도시에 살게 되었는데도 도시민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더 이상 백인의 국가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다인종국가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공화당의 정체성은 그저 백인 정당일 뿐이다.
왜곡된 제도에는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 있다. 하나, 모든 주는 인구수랑 상관없이 상원에서 동등한 대표권을 갖는다. 즉 인구가 3천만이 넘는 캘리포니아랑 백만도 되지 않는 와이오밍은 적어도 상원에서는 같은 권한을 갖는다. 이론상으로는 전체 인구에서 20퍼센트 미만만 확보하더라도 상원에서 과반을 차지할 수 있다.
둘, 대통령을 직접선거가 아니라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로 뽑기 때문에 더 적은 표를 얻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실제로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약 6,300만 표를 받아서 힐러리보다 약 200만 표 정도 뒤처졌지만, 몇몇 경합주에서 승리함으로써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힐러리를 앞질렀다.
셋, 대법원 판사에게 종신 재직권을 허용함으로써 법체계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다. 처음에 대법원이 만들어질 때만 해도 인간은 지금처럼 오래 살지 못했으며, 세상이 변하는 속도도 이렇게 빠르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저자들은 꼭 필요한 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총기규제 강화, 최저임금 인상, 낙태 합법화 등은 대다수의, 적어도 과반수의 미국인이 찬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의 반대로 몇십 년째 번번이 상원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책은 미국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끝난다. 더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미국은 신분증도 자동발급이 안 되는 등 은근 투표하기 어려운 나라다) 다수의 뜻이 정치에 반영되도록 선거제도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다. 이대로는 극단적인 소수가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게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모두 동의가 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들도 많았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가?’ 같은 의문이 드는 지점들이 더러 있었다. 나는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반다수결주의가 주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다른 나라들의 민주주의에 비해 유독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른바 포퓰리스트로 불리는 대통령은 미국에서만 등장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저자들이 말하는 형태의 민주주의가 과연 최선의 정치 체제인지에 대해서도 숙의해야 할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따지면, 모든 사람의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이 근본적으로 정치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사람들은 몇몇 제한된 미디어의 필터를 통해 정제된 정보를 통해 세상을 보지 않는다. 자극적인 유튜버들의 편향된 가설이나 팩트 체크조차 되지 않은 채 인스타그램을 떠돌아다니는 파편화된 콘텐츠가 우리의 정치적 판단과 성향을 결정하고 있다. 즉, 현대 사회는 투표 결과의 질이 20세기에 비해 오히려 낮을 수 있다는 게 내 조심스러운 생각이다. (물론 의견을 바꿀 생각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들이 주장하는 다수결주의의 회복이 과연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줄 것인가? 나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잡도록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미국의 정치 제도와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여러 법적 요소, 그리고 그 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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