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영화 [수유천]을 봤다. 언제나 그렇지만 홍상수 영화는 언제나 홍상수 영화스럽다는 느낌을 주다가도 또 한 번 변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가령, 첫 장면에서 개천 가에서 그림을 그리는 김민희를 가운데 두고 잡은 카메라는 정지한 상태에서 천천히 클로즈업을 해가는데 김민희는 왼쪽 밑으로 화면을 빠져나가고 화면에는 잡초 우거진 천변풍경이 잡힌다. 보통의 경우라면 주인공이 빠져나간 화면을 '빈' 화면으로 느끼는데 카메라가 클로즈업 동작을 계속하기 때문에 묘한 느낌을 준다. 마치 거기에 인간이 아닌 어떤 사물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카메라 워킹이다.
마지막 장면도 그렇다. 주인공을 다급하게 불러대는 목소리 앞에 깔린 바위 계곡 풍경에서 갑자기 나타난 김민희가 뜬금없이 밝은 표정으로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를 외치고 영화는 끝난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있다. 그것이 풀이거나 바위이거나. 우리는 뭔가를 찾고 있지만 아무것도 없더라는 이야기다. 언젠가부터 홍상수는 종교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알 수 없는 건 알 수 없다고 말하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지 말기.
영화 속에서, 연극을 보고 야유를 퍼붓거나 분개하는 사람들을 두고 권해효가 "다들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라고 그러는데, 아무것도 없는데, 삶이 그런 건데,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복닥거린다. 그래서 술을 마신다? 안 마시면 뭐 할 건데, 그런 심정? 연극에 출연했던 학생들이 울먹거리면서 자기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이야기하는 장면이 홍상수 영화의 단팥앙꼬다.
홍상수는 여전히 높이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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