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제1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가장 광범위한 전쟁이었고, 이 전쟁에서 유럽인들의 아름다움과 이성은 철저히 무너졌다. 1916년의 어느 날, 무명의 예술가들은 한 술집에 모여 자신들과 단체 이름을 짓고 있었다. 이때 독일의 작가이자 다다이즘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었던 휠젠베크가 마침 사전을 뒤적이다가 ‘다다(Dada)’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한하자 모든 사람이 찬성했고, 이것은 후일 서양을 휩쓴 다다이즘(Dadaism)의 기원이 되었다. 광범위한 다다이즘의 내용 중 ‘반 예술’은 다다이즘의 예술관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주는 말이다.
2. 마르셀 뒤샹
1919년 4월, 다다이즘의 구성원들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최후의 파티를 개최했다. 관중들을 마음껏 조롱하고 모욕하면서 그들은 ‘반 예술’이라는 자신들의 관점을 확실히 드러냈다. 화를 참지 못한 관중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고, 다다이즘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다다이즘의 구성원 중 몇몇은 파리로, 또 다른 사람들은 뉴욕으로 떠났다. 이때 뉴욕에 간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더 극단적인 '반 예술적 예술가'를 발견했는데 그가 바로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이었다.
1917년 뉴욕의 독립예술가협회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때 뒤샹은 소변기를 작품으로 출품했다. 소변기에 쓰인 ‘R. MUTT’라는 글자는 이 소변기를 만든 화장실용품 제조업자 ‘리처드 머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소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이것은 전통 아카데미파인 앵그르를 풍자하기 위함이었다. 뒤샹의 <샘>은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이 예술품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보통 사물이 예술품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사물 자체에 어떤 의미도 담겨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샹은 이런 인식을 완전히 뒤엎고 예술품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뒤샹을 통해 예술품의 범위가 비물질적인 것에까지 확대됐다는 데 있다. 예술품의 예술적인 가치는 결코 그 본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뒤샹의 <샘>은 오늘날 행위예술의 시조라고도 볼 수 있다.
3. 살바도르 달리
달리(Salvador Dali, 1904-1989)는 초현실주의 화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초현실주의 작품은 단순히 기이한 형상과 다양한 색채를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계산을 통해 그려졌다. 달리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을 기묘하게 조합해서 몽환적인 세계를 표현했는데, 회화의 소재를 조합할 때는 반드시 프로이트의 학설을 따랐다.
<기억의 지속>은 달리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늘어진 시계’라고 불리기도 한다.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것 같은 세 개의 시계가 나뭇가지와 상자, 죽은 말인지 변형된 인간의 머리인지 모를 곳에 각각 늘어져 있다. 이것은 달리의 성에 대한 불안감과 콤플렉스를 암시한다.
달리는 각기 다른 사물을 기묘하게 조합하고 변형시켜서 몽환적인 이미지를 연출해 내는 데 일인자였지만 점차 세속에 물들어갔다. 초현실주의의 주창자인 브르통은 달리가 초현실주의의 질을 떨어뜨렸다며 1934년 달리를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추방했다. 그 후 1940년, 부인 갈라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달리는 특유의 기이함과 과장으로 미국에서 대성공을 거둔다. 특히 할리우드 스타인 메이 웨스트의 입술을 본떠 만든 소파는 미국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상상력에 있어서나 자신을 포장하는 데 있어 그는 단연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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