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징주의와 야수파
‘상징(symbol)’이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심볼론(symbolon)’을 어원으로 한다. 심볼론은 하나의 나무를 반으로 잘라 각각 하나씩 나눠 가지는 징표와 같은 개념인데, 후에 이 말은 ‘어떤 개념을 대신하는 하나의 매개물’이라는 뜻이 되었다. 상징주의 작가의 사명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 어떤 사상에 내재된 관념을 객관적인 대조물로 바꾸는 일이며, 본질적으로는 작가의 주관적인 세계를 객관화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하나의 매개물, 즉 암호를 만들기 위해서는 복잡한 현실 세계를 단순화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2. 퓌비 드 샤반
샤반(Puvis de Chavannes, 1824-1898)은 중요한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것들을 대폭 단순화한 인물이다. 그가 남긴 대부분의 작품은 눈으로 본 사물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상과 정서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이것이 바로 상징주의 회화가 추구하는 것이었다. 상징주의 화가들은 주제와 선을 간결하게 하는 것 외에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는 함축적인 도구였던 색채 사용을 신중히 했다. 단, 지나치게 간결화된 구도는 그림에 대한 이해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사실성을 유지하는 규칙은 반드시 지켰다.
<희망>은 샤반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이자 상징주의 회화의 대표작으로 상징주의 회화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품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이 작품은 프로이센과 프랑스 간의 전쟁이 끝난 이듬해에 완성되었다. 당시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 정부는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고 국민들의 사기도 땅에 떨어져 있었다. 쓸쓸한 황무지에 앉아 있는 소녀는 전쟁 후의 프랑스 사회상을 암시하는 도구로 볼 수 있다. 흰 옷을 입은 소녀는 엄숙한 표정으로 올리브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데, 이 올리브 나뭇가지가 바로 희망을 상징한다. 메마른 땅 위에 피어난 몇 송이의 들꽃, 멀리 하늘에 깔린 아침노을 또한 마찬가지다.
3. 앙리 마티스
야수파는 1905년에 형성되었다. 초기 멤버는 마티스, 블라맹크, 드랭, 마르케 등이었고 후에는 뒤피까지 가세했다. 그러나 1년 후, 마티스가 여러 가지 화풍을 섭렵하게 되면서 멤버들은 야수파의 회화 이념을 점차 버리기 시작했고 끝까지 야수파로 남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1905년에서 1908년이라는 기간 동안 그려진 그림만이 진정한 야수파의 화풍에 따라 그려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05년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호사, 평온, 관능>, <창문>, <모자를 쓴 여인> 세 작품을 살롱 도톤(Salon d'Automne-매년 가을마다 열리는 프랑스 미술단체 전시회)에 출품했다. 그의 작품들은 드랭, 루오, 블라맹크의 작품과 같은 공간에 전시되었는데, 그 전시실의 중간에는 마르케의 청동 조각도 있었다. 이 조각은 르네상스 초기 도나텔로의 작풍과 매우 유사했는데, 평론가 루이 보셀은 이를 꼬집어 “돈텔로 가 야수에 완전히 포위되었다”라고 표현했다. 마티스, 드랭 등의 작품이 유난히 강렬한 원색으로 칠해진 데다 터치도 매우 거칠어 ‘야수’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이 말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마티스의 화풍을 따르는 이들은 모두 ‘야수’라고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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