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 짓는 가게와 오래된 성당, 옛 병원 건물에 들어선 카페, 낡은 집을 고쳐 개성 넘치는 상점으로 바꾼 젊은 상인들.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진 동인천은 시간을 거스르는 동네예요. 향수를 자극하는 개항로 일대의 색다른 장소를 소개합니다.
1. 인천맥주
한여름에 인천행을 택했다면 맥주부터 시작해야 한다. 개항장이 있던 신포동의 낡은 창고에 들어선 ‘인천맥주’는 첫 행선지로 손색없는 곳.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박지훈 대표가 2018년에 문 연 양조장 겸 펍이다. 지역 이름을 내건 맥주답게 ‘인천’이라는 도시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바다와 가깝고 동네의 역사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한 양조장 안으로 들어서면 항구 도시 특유의 거친 이미지를 표현한 서체와 보틀 디자인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압권은 포스터다. 동인천에서 극장 간판을 그렸던 최명선 어른을 모델로 내세워 ‘인천다움’을 한껏 담았다. 1층에서 생으로 내는 맥주 중 지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건 ‘개항로 라거’다. 첨가물을 넣지 않고 효모를 여과하지 않으며 긴 시간 숙성시켜 부드럽고 깔끔한 뒷맛을 낸다. 그 밖에 ‘사브작 IPA’ ‘몽유병’ ‘파도’ ‘턱시도’ 등 흥미로운 이름을 가진 갓 빚은 수제 맥주들이 개성 있는 맛을 뽐낸다.
매장에서 배를 제대로 채우고 싶다면 인근 신포시장에서 닭강정이나 만두, 혹은 매일 긴 줄을 세우는 오징어 튀김 등을 사갈 것. 외부 음식 반입을 가능하게 한 건 지역 상인과의 상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박지훈 대표의 뜻이다. 동인천 곳곳 펍이나 치킨 가게, 노포 등에서도 인천맥주를 맛볼 수 있다.
주소|인천 중구 신포로 15번길 41 1층
2. 개항로통닭
통닭은 기름에 튀긴 ‘치킨’과 엄연히 다르다. 식용유가 귀해 튀기는 대신 구워서 ‘치킨’의 맛을 흉내 냈다는 나름의 역사를 가진 음식. ‘개항로통닭’은 전쟁 이후 이어진 가난 속에서 툭 튀어나온 그 시절의 특별식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곳이다. 쇠퇴하는 동인천에 르네상스를 가져온 지역 기획자 이창길 대표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193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낡은 창고를 개조한 이곳엔 흔히 말하는 ‘뉴트로’ 바이브가 가득하다.
동인천에서 나고 자란 이라면 추억에 잠길 만한 장면, 장소를 고스란히 담은 사진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옛날 식당에서 썼을 법한 의자와 테이블도 향수 어린 분위기를 더한다. 신선한 육계 닭에 비법이 가해진 연육, 염지 과정을 거쳐 바싹 구워내는 통닭은 담백하고 고소한 풍미가 일품. 특제 소스로 버무린 찹쌀밥과 한 봉지 사 가고 싶을 만큼 감칠맛이 좋은 파김치를 곁들이면 맥주 생각이 절로 인다.
개항로통닭에선 여러 맥주를 팔고 있지만 인천에서만 먹을 수 있는 ‘개항로 라거’를 시켜 함께 즐기자. 배와 감성을 든든히 채우고 나오는 길에 밤을 밝히는 개항로통닭 간판 아래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놓치지 말 것. 극장 간판 화가였던 동네 어르신의 작품이다.
주소|인천 중구 참외전로 164
3. 개항면
인천이 ‘면’의 고장으로 여겨지는 까닭은 ‘광신제면’에 있다. 한국 최초로 ‘쫄면’을 만든 곳이다. 개항면은 광신제면의 상징, 중화생면으로 면 요리를 만들어 선보인다. 배다리사거리 건너편, 개항로 초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곳의 대표 메뉴는 온수면과 비빔면이다. 소뼈를 12시간 이상 고아 만든 깊은 육수와 씹는 맛이 좋은 쫄깃한 중면이라는 새로운 조합으로 식객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
한여름에 뜨끈한 온수면이 부담스럽다면 비빔면을 시도해 볼 것. 된장과 고추장의 조합이 일품인 양념장을 고기, 쪽파, 양파 등과 함께 얹어 낸다. 양념이 묵직한 두꺼운 면발과 채소, 고기의 식감이 잘 어우러지는 맛이다. 닭 육수에 식감 좋은 옥수수면, 고소한 참나물, 불향 입혀 구운 버섯 등을 얹어 내는 초계 냉수면은 여름에만 선보이는 특식이다.
주소|인천 중구 개항로 108-1
4. 파랑새방앗간
‘파랑새방앗간’은 참기름 짜는 집이자 식당이다. 인천에서 40년 이상 방앗간을 운영하며 참기름을 짠 어머니의 역사를 딸이 잇고 있다. ‘파랑새’라는 상호는 손자가 그려준 그림에서 따온 이름이다. 1층 문을 열고 들어서면 참깨 볶는 냄새가 후각과 식욕을 자극한다.
참깨 표면의 유해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깨를 볶아낸 후 껍질을 갈아서 기름을 뽑는 제조 과정은 특허 출원번호를 갖고 있는 이 집 기름 맛의 비법이다. 1층에서 참기름만 사 가도 좋지만 2층 식당으로 올라가 보길 권한다. 참기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 ‘비빔밥’이 기다리고 있다. 놋그릇에 정갈하게 내는 한상 차림으로 ‘파랑새 비빔밥’ ‘파랑새 비빔면’ ‘매운 바지락강된장 비빔밥’ 등이 주 메뉴. 특제 양념장, 신선한 채소, 고기를 얹은 따뜻한 밥이 갓 뽑은 참기름 맛을 한껏 돋워준다.
주소|인천 중구 개항로 105
5. 브라운핸즈 개항로
낡은 건축물의 변화를 관찰하는 일은 개항로의 향수를 직관적으로 즐기는 방법이다. 특히 1960년대까지 싸리재로 불렸던, 신포국제시장 앞 경동사거리와 동인천역 근처 배다리사거리를 잇는 길에 지금은 ‘개항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제는 터줏대감이 된 카페 ‘브라운핸즈 개항로’는 1960~1970년대 산업 시대에 누린 호황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건물 중 하나다.
무려 4층짜리 이비인후과 건물이었던 이곳은 옛 병원의 기자재와 인테리어, 의료기구 등을 재활용한 인테리어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공간이 넓어 개항로가 붐비는 주말에도 호젓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브라운핸즈의 공간을 실컷 즐긴 후엔 지척에 자리한 애관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는 즐거움도 누려볼 것. 무려 ‘조선’ 최초의 극장으로 100년 넘는 역사를 간직한 진짜 레트로다.
주소|인천 중구 개항로 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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