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두에게 공정하기란 불가능하다
몇 해전 한 대기업의 임원들과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신임 임원 한 분이 “저는 공정한 리더가 되고자 합니다”라며 야심 찬 포부를 밝히셨습니다. 이어진 제 답변 때문에 그분께서 잠시 머쓱해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 답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공정하다고 느끼는 리더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공정성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죠. 대다수 사람들에게 공정한 리더가 되시고자 한다면, ‘공정성의 사각지대’에 계신 분들(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구성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리더가 되시는 게 어떨까요?”
그리고 공정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니 혹시 하버드 대학교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으셨는지 여쭈어 봤습니다. 예상대로 그 책을 읽으셨다기에, 그럼 정의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냐고 질문했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책에서는 정의가 무엇인지 답을 제시해주지 않던데요?”였습니다.
맞습니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수많은 예시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줄 뿐,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을 제시해 주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개인마다 정의롭다고 믿는 공정성 기준이 다양하기 때문이지요.
2. 공정의 4가지 기준
수많은 정의의 기준이 존재하지만 조직 자원 배분적 측면에서의 공정성은 주로 Equity, Equality, Need, 그리고 Seniority로 나뉩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각각 형평, 평등, 필요, 연공이 됩니다. Equity는 구성원 각자가 공헌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 Equality는 구성원 모두가 동일한 보상을 받는 것, Need는 구성원의 필요에 따라 보상을 받는 것, 마지막으로 Seniority는 구성원의 연공서열에 따라 보상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학생들에게 공정성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항상 물어보는 것이 있습니다. 만일 제가 학생들과의 토론에서 영감을 얻어 책을 집필했는데, 그 책이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어 10억을 벌게 되면 이 돈을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겠냐는 것입니다. 4가지 기준 중 어떤 것을 따르는 게 좋겠냐는 것이지요.
Equity의 기준을 따른다면 학생들이 수업의 토론에 공헌한 만큼의 지표인 ‘학점’을 기준으로 차등 배분하게 될 것입니다.
Equality는 10억을 모든 학생들에게 균등하게 배분합니다.
Need는 학생들의 재산상황에 따라 차이가 나게 배분합니다.
Seniority는 나이로 차등을 두어 배분하는 것입니다.
매 학기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Equity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고, 나머지 3가지 기준에 대한 선호도는 늘 다양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보편적인 가치는 아닙니다. 한 번은 중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며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에는 Equality의 답변이 대다수였습니다.
3. 완벽한 공정을 추구하기보다, 다양성을 존중하라
우리나라 학생들에게서 Equity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이유는 한국이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 학생들에게서 다른 결과가 나온 것도 다른 경제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죠. 뿐만 아니라 개인의 가치관, 경험, 교육 환경 등 많은 요소가 공정성 기준에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미성년자 자녀를 둔 엄마들은 Need 기준을 다른 그룹에 비해 선호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이처럼 개인의 공정성 지각과 기준은 천차만별입니다.
공정한 리더가 되고자 하는 큰 포부보다는, 스스로가 보편적으로 지지하는 공정성 기준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와는 다른 기준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포용을 실천하는 것이 보다 지혜로운 조직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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