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아웃스탠딩 기사 <퍼블리의 10년 여정이 막을 내렸습니다>에는 잡플래닛 기업 리뷰가 언급됩니다. '잡플래닛에 안 좋은 이야기가 많다. 누가 북한 같다고 썼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근무했던 2년간 비상식적인 상황은 없었다'라고 전 재직자 한 분이 인터뷰를 했더군요.
저는 비교적 초기에 (2016년 말) 퍼블리에 합류했고, 마지막 1년(2019년 가을~2020년 가을) 동안은 리더 역할을 맡았습니다. 회사가 일하는 방식을 좋게 만들어보겠다고 여러 가지를 제안하고 또 주장했습니다.
팀 얼라인먼트가 중요하다, 1대1 미팅을 해야 한다, 제품 조직이건 컨텐츠 조직이건 고객 파악을 위한 리서치를 꾸준히 해야 한다, 아무 목적 없이 기획하는 게 아니라 가설을 세우고 검증해야 한다 등등... 다른 리더들이나 구성원들이 생소해하는 얘기들을 3년 넘게 지겹도록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다른 리더들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고, 구성원들을 강제하기도 했습니다.
퇴사 후 2년쯤 지난 어느 날엔 HR을 담당하는 재직자 분이 '민우님이 제안하거나 강화했던 HR 관련 가이드나 정책이 지금도 회사에서 잘 작동하고 있다'라며 고맙다는 메일을 보내기도 했으니, 그 영향이 적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잡플래닛이나 블라인드에 올라온 회사에 대한 비난을 보면 (이미 퇴사한 지 한참 지났음에도) 여러 가지 감정이 듭니다.
하나하나가 저에 대한 비난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쓰라리기도 하고, 리더들이 악의를 갖고 행동한다는 것을 전제로 쓰인 리뷰에 대해서는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결국 제가 했던 결정과 행동들이 구성원들의 불신을 초래하는 데 일조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왜 회사를 강하게 불신하는 구성원들이 많아졌을까. 제가 재직한 기간(3년 9개월) 보다 퇴사 후 흐른 시간(4년)이 더 길기 때문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제일 큰 이유는 '구성원을 내보내는 방식'인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창업자와 경영자들이 입을 모아서 이야기하는 게 있습니다. '적합하지 않은 사람은 빨리 내보내는 게 좋다'라든지 '퍼포먼스가 낮은 직원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은 매니저와 팀 전체의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다'라든지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제가 퇴사하던 무렵의 퍼블리는 이런 기조의 끝단에 있는 회사였습니다. 아마 그 후에도 이런 기조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잘 맞지 않는 구성원들과의 갈등으로 리더들이 속을 끓더라도, 어떻게든 함께 가려고 애쓰는 회사였습니다. 제 눈에는 답답해 보일 정도로요.
특히 기존 경력직들이 일을 진행하는 방식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하는 스타트업으로서 퍼블리의 방향과 맞지 않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기존에 일하던 방식을 언러닝(unlearning)하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데 반감을 가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답답함을 많이 느낀 시기였습니다. 제가 잘 되는 회사에서 스톡옵션도 다 포기하고 초기 스타트업으로 온 것은 빠르게 실행하고 성장하는 환경을 원해서였는데, 조직은 전체적으로 느리고 사업 성과에도 별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대표에게 가서 '이 회사는 너무 얼라인먼트가 안 되어 있다. 팀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일하고 있지 않고, 각자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있다'라고 대놓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초기 구성원 중 상당수가 이탈하면서 이 상황은 정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회사의 채용 및 조직관리 기조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경력직들이 들어와서 언러닝을 하길 기대하기보다는 기존 업계 관행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을 채용해서 잘 교육하고 온보딩시키자,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을 내보내는 걸 주저하지 말자, 성장 속도를 높이려면 컨텐츠 생산량이 많아져야 하니 많이 채용하자, 그 과정에서 채용과 퇴사가 많아지며 혼란은 생길 수 있지만 그건 감내를 하자 등등...
이런 기조는 초반의 경험에서도 영향을 받았고, 앤디 그로브의 <하이 아웃풋 매니지먼트>, 레이 달리오의 <원칙> 같은 책의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과 2019년에 500 스타트업의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인 Series A Program(SAP)을 통해 만난 해외 멘토들, 다른 창업자들의 영향 역시 크게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구성원들의 심리가 중요하다는 것, 구성원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고서 이런 기조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탐색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게 맞아'라는 당위에만 사로잡혔던 것 같습니다.
구성원들은 옆에 일하던 동료들이 예상치 못하게 갑작스럽게 퇴사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수습 중에 통보와 함께 즉시 계약을 종료하는 식으로 이뤄졌는데, 이 방식이 불안감을 키웠을 것입니다.
퇴사 사유를 다른 구성원들에게 설명하지 않은 것 역시 불신을 키웠을 것입니다.
사유를 설명하지 않은 이유는, 개인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다른 구성원들에게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회사에서 내보내지는 것만으로도 해당 개인은 큰 타격을 입는 것인데, 거기에다가 평가 내용까지 공개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니까요.
퇴사 사유를 설명하면 구성원들을 납득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구성원들은 이걸 '명확한 평가 기준 없이 쉽게 사람을 내보낸다' 내지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쉽게 내보낸다'로 해석했습니다. 사유를 밝힐 수 없는 건 나쁜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구성원 한 명을 내보내기 전에 담당 리더들은 여러 차례 피드백을 주고, 개선을 시도해 보고, 어떻게든 정상궤도로 올려 보려고 고심하며 마음고생을 합니다. 구성원을 퇴사시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에 커다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의사결정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피하고 싶어 합니다. 단지 마음고생하는 티를 팀원들 앞에서 내지 않을 뿐입니다.
하지만 의도가 어찌 됐건, 리더들이 구성원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저 역시 재직 시절에 팀원들로부터 불신 어린 시선을 받았다는 것을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듣기도 했고요.
이유를 명확히 모르는 채로 동료들이 내보내지는 것을 보는 불안감, 제대로 된 평가 기준이 없다는 의심, 여기서 오는 불신이 커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대처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적어도 저는 그런 대처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습니다. 심리적 동요의 여파를 과소평가했고, 어느 정도 불신이 있더라도 그냥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직의 리더 역할을 하면서 크고 작은 판단착오를 했지만, 이때의 판단착오가 저한테는 가장 뼈아픈 기억입니다.
어떤 기조를 강하고 빠르게 밀어붙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는데. 조직은 결국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기 때문에, 잠깐은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느껴지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살피면서 하는 게 결과적으로는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었을 텐데.
빠르게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혀서 시야가 편협해졌다는 아쉬움도 크고, 그 과정에서 조직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미안함도 큽니다.
제가 퇴사한 후 4년 동안은 조직 내부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거의 모릅니다. 어렴풋이 듣기로는, 딱 제가 없는 만큼의 변화가 있었다고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올리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변명과 반성, 자기 방어와 자기비판이 뒤섞인 글이라 저 스스로도 거북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퍼블리의 10년이 마무리되면서 관심이 모인 이때, 뭐라도 기록을 남기는 게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올립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분들이 비슷한 실수를 조금이라도 덜 할 수 있으면 다행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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