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미술8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 피카소가 사라진 이유 (feat. 단순한 아트페어 이상의 의미) 1. 피카소가 사라지고 대신 들어온 건프리즈 서울이 한국에 진출할 때 큰 화제를 모았던 이유 중 하나는,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2022년 첫 프리즈 서울에서는 무려 600억 원에 달하는 피카소의 ‘술이 달린 붉은 모자를 쓴 여자’가 전시되었고, 지난해에도 피카소의 종이 드로잉 작품과 샤갈의 '신랑신부'가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는 피카소를 비롯한 이른바 거장들의 작품이 사라졌습니다. 미술 시장의 전반적인 침체가 그 이유일 수 있고요. 고가 작품보다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작품에 더 관심이 쏠린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일각에선 미술 축제도 경제 불황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기도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 2024. 9. 11.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feat. 마르셀 뒤샹과 살바도르 달리) 1.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제1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가장 광범위한 전쟁이었고, 이 전쟁에서 유럽인들의 아름다움과 이성은 철저히 무너졌다. 1916년의 어느 날, 무명의 예술가들은 한 술집에 모여 자신들과 단체 이름을 짓고 있었다. 이때 독일의 작가이자 다다이즘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었던 휠젠베크가 마침 사전을 뒤적이다가 ‘다다(Dada)’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한하자 모든 사람이 찬성했고, 이것은 후일 서양을 휩쓴 다다이즘(Dadaism)의 기원이 되었다. 광범위한 다다이즘의 내용 중 ‘반 예술’은 다다이즘의 예술관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주는 말이다. 2. 마르셀 뒤샹 1919년 4월, 다다이즘의 구성원들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최후의 파티를 개최했다. 관중들을 마음껏 조롱하고 모.. 2024. 2. 17.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feat. 에두아르 마네와 빈센트 반 고흐) 1.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1863년, 미술계에는 두 가지의 큰 사건이 일어났다. 낭만주의 회화를 탄생시킨 들라크루아의 사망과 앵그르가 주도하는 살롱전 심사에서 벌어진 소동이 그것이다. 소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살롱전 심사는 너무나 편파적이었고 평가의 공정성이 떨어졌다. 자신의 제자에게 유리한 점수를 주는 심사위원에 의해 입선하는 화가가 많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아름다움을 표현한 아카데미풍의 작품이 아니면 입선도 어려웠다. 결국 이런 관행에 환멸을 느낀 심사위원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났고, 전보다 훨씬 더 엄격한 기준으로 출품작을 평가했는데, 살롱전에서 낙선한 4천여 점의 작품 중에는 마네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었다. 2. 에두아르 마네 살롱전의 결과는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 소식을 접한 나폴레옹 3세.. 2024. 2. 11. 로코코 미술과 신고전주의 (feat. 프랑수아 부셰) 1. 로코코 미술과 신고전주의 바로크 양식은 이탈리아, 스페인, 플랑드르와 같은 가톨릭 국가로 퍼져 나갔지만 프랑스는 달랐다. 왕권을 강력하게 쥐고 있던 루이 14세가 푸생의 고전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17세기의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루이 14세의 사망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루이 14세의 뒤를 이어 5세의 나이에 왕위를 계승한 루이 15세는 당시 나이가 어려 섭정에 의지하게 되었는데, 그는 친정 후에도 정치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국사를 스승인 플뢰리에게 맡기고는 주색에 빠져 지냈다. 향락에 물든 국왕 때문에 정치 활동의 중심도 궁에서 살롱으로 옮겨졌고, 프랑스의 정치와 예술 등은 전반적으로 궁에서 살롱으로 옮겨졌다. 때문에 프랑스의 정치와 예술 등은 전반적으.. 2024. 2. 9. 북유럽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 (feat. 얀 반 에이크와 디에고 벨라스케스) 1. 북유럽 르네상스 알프스 이북 지역인 북유럽은 예로부터 문화가 낙후된 지역이어서 그리스 로마 문화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았다. 북유럽 사람들은 좋지 못한 기후나 자연환경 때문에 이탈리아나 스페인, 프랑스인들처럼 여유롭고 낙관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했으며, 장장 천여 년 동안 계속된 중세시기에도 이들의 가톨릭교는 오래되고 신비한 고딕 문화의 흔적을 지우지 못했다. 고딕양식의 신비로움과 현실에 대한 높은 관심은 북유럽 르네상스의 특징으로, 회화 작품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2. 얀 반 에이크 유화 작품은 9세기말에 처음 나왔지만 유화 기법을 발전시킨 것은 플랑드르의 에이크(Jan Van Eyck, 1395?-1441)이다. 그는 피마자유, 수지(樹脂) 등을 사용해서 색을 배합했고, 이 새로운 기법으.. 2024. 2. 9. 이탈리아 르네상스 (feat. 레오나르도 다 빈치) 1. 이탈리아 르네상스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콘스탄티노플을 로마제국의 수도로 정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죽은 후 로마는 동로마와 서로마로 양분되었고, 그 후 476년 서로마제국이 야만스러운 게르만족의 손에 멸망당함으로써 유럽에는 암흑기라 불리는 중세시대가 도래한다. 장장 천 년에 달하는 중세에는 문화와 예술이 크게 퇴보했다. 이에 비해 강력한 왕권으로 제국의 통일을 유지하고 있던 동부의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은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내며 천여 년 가까이 제국을 유지해 냈다. 그들은 서유럽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러나 1453년, 오스만제국의 군주인 모하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함에 따라 비잔틴제국의 영화도 막을 내렸다. 비잔틴제국의 몰.. 2024. 2. 8. 외젠 들라크루아 (feat. 낭만주의 미술의 대표자) 낭만주의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인 들라크루아의 작품 경향은 초기 고전주의에서부터 바로크적 특징과 낭만주의적 요소에 이르기까지 두루 포함하고 있다. 말년에 들라크루아는 역사화와 정부 건물에 그린 뛰어난 벽화로 인기를 얻었다. 외젠 들라크루아는 19세기 낭만주의 예술을 대표하는 최고 예술가로 손꼽히는 화가이다. 그는 작품의 영감을 주로 과거와 당대의 사건이나 문학에서 얻었다. 특히 1832년 프랑스 정부 사절단에 끼어 모로코를 방문했는데, 그 방문 후 그의 그림에서는 색채를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법과 붉은색과 녹색, 푸른색과 오렌지색을 적절히 배합하는 방법을 능숙하게 구사한다는 평가를 얻었다. 들라크루아는 1798년 4월 26일에 프랑스 샤랑통-생모리스에서 빅투아르 외벤과 샤를 들라크루아 사이에서 넷째로 태어났.. 2024. 2. 2. 파블로 피카소 (feat. 현대 미술의 제왕) 입체파 화가인 피카소는 스페인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초기에 르누아르, 툴루즈, 뭉크, 고갱, 고흐 등 거장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미술 양식은 초기 청색 시대를 거쳐 입체주의 미술 양식을 창조하였고 20세기 최고의 거장이 되었다. 파블로 피카소는 입체주의의 창시자로 양식과 매체의 변경에도 기교, 독창성, 해학에 한계가 없이 다양한 작품을 제작했던 20세기 최고의 거장이다. 초기 청색 시대를 거쳐 종합적 입체주의까지 입체주의 미술 양식을 창조했다. 아방가르드 미술 모임에 핵심인물로, 많은 미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피카소는 1881년 스페인의 말라가에서 미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림을 그릴 정도로 그리기에 재능이 있었지만, 읽기와 쓰기는 더뎌서 졸업하기가.. 2024. 2. 1.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