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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예술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by 트렌디한 일반 상식 2023.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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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베르메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요하네스 베르메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가장 유명한 그림인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종종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로 불린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와 함께 두 그림 모두 모델의 수수께끼 같은 시선에서 그림 속 여성의 정체성을 둘러싼 추측에 이르기까지 신비한 분위기를 공유한다. 그림 속 모델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베르메르의 장녀라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할 유력한 증거는 없다.

 

Q: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작품은 누가 그렸나요?

A: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입니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죠.

 

Q: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어떤 작품인가요?

A:  베르메르가 33세 되던 해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작품인데요. 크기는 가로, 세로 약 40cm로 비교적 작은 작품이에요. 현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데요. ‘북구의 모나리자’로 불릴 정도로 유명해 매년 40만 명 이상이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몰려든다네요.

 

Q: 「모나리자」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가면 꼭 보아야 하는 3대 작품일 만큼 유명한 작품 아닌가요? 어떤 이유로 이 작품이 ‘북구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나요?

A:  이 작품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와 비교된다는 것은 그만큼 미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거예요. 실제로 이 작품은 네덜란드당국이 해외 전시를 불허할 만큼 소중히 여기는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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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작품의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A:  작품 속 소녀는 옷깃이 높은 노란 옷차림에 머리에는 이슬람풍의 푸른 터번을 쓰고 있는데요. 왼쪽 어깨 쪽으로 얼굴을 살짝 돌려 관람객과 시선을 마주치고 있죠. 소녀의 왼쪽 귀에는 제법 커다란 진주 귀고리를 하고 있는데요. 하얀 얼굴에 예쁜 코와 입술, 커다란 눈망울이 무척 매력적이죠. 그런데 특이한 것은 여느 초상화와 달리 눈썹과 속눈썹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마도 이 점이 「모나리자」라는 별명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해요.

 

또한 이 작품이 ‘북구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것은 단순히 눈썹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겠죠.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얼굴에 담고 있는 신비스러운 미소는 이 작품이 지닌 가장 큰 백미라고 할 수 있는데요. 까만 배경을 뒤로하고 있는 소녀의 얼굴을 비추며 타고 흐르는 듯한 미묘한 빛의 처리가 신비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죠. 당시 제작한 작품 중에 이만큼 아름다운 초상화는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이 작품이 ‘북구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을 얻을 수 있었을 거예요.

 

Q: 이 그림을 보니 전에 보았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라는 영화가 생각나는데요. 영화 속에서는 하녀를 모델로 해 그림을 그리다가 화가와 복잡 미묘한 연애 감정이 싹트는 것으로 나타나는데요. 실제로 베르메르와 모델 간에 그런 스캔들이 있었나요?

A:  그 영화는 1999년 미국 여류 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쓴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라는 소설을 근거로 2003년 제작되었는데요. 그리트라는 소녀가 화가 베르메르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되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 소녀를 베르메르 집의 하녀로 아시는데요.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상상이고요. 그녀가 하녀였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어요. 그리고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이 그림은 「푸른 터번의 소녀」라고 불렸어요. 또한, 영화와 달리 베르메르와 소녀는 화가와 모델 이상의 관계는 전혀 아니었을 확률이 높아요. 

 

왜냐하면 베르메르는 자기 아이만 12명이었고 그 많은 가족을 부양해야 했기 때문에라도 거의 일중독에 빠져 살았어요. 사실 이 그림은 특정 주문자로부터 초상화를 의뢰받아 그렸다기보다 그냥 기성품으로 팔기 위해 그린 그림이에요. 요즘도 매력적인 스타나 아이돌들의 사진을 캡처하거나 다운로드하여 들여다보는 게 즐거운 일이 된 것처럼요. 당시도 화가 개인에게만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잘 팔릴 만한 아름다움을 지닌 이상적 인간형을 그린 것인데요. 이런 그림을 ‘트로니’라고 해요. 한 마디로 트로니는 어떤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베르메르의 작품에서 많이 그려졌고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대표적인 트로니라고 할 수 있죠.

 

Q:  당시 비싼 초상화에 자기 자신이나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담지 않고 전혀 모르는 사람의 초상을 그린 ‘트로니’가 그렇게 인기 있었나요?

A:  이런 점이 당시 네덜란드의 사회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어요. 요즘 우리도 그림 속 모델이 누구인지에 상관하지 않고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에 가치를 많이 두잖아요? 이런 그림의 원조가 바로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트로니였어요. 이런 트로니나 정물화, 풍경화 같은 미술의 새로운 장르가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것은 17세기 경제적 호황을 누리던 네덜란드의 상황과도 연관 있어요. 네덜란드는 1581년 종교의 자유를 찾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어요. 이 지역의 지형 특성상 네덜란드인들은 농사를 지을 땅도 부족하고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세계를 상대로 무역에 집중했어요. 

 

그 결과, 막대한 부를 축적한 네덜란드에서는 부자 평민들, 즉 부유한 시민들이 많이 생겨났는데요. 그들이 추구한 아름다움의 대상은 기존 귀족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달랐어요. 그들은 어느 천상의 고귀한 존재나 천사가 아니라 길모퉁이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매력적인 사람이나 자신이 소유한 땅의 우거진 숲, 또는 식탁 위에 놓인 꽃이나 과일 등과 같이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그들은 가치 있다고 여기는 대상을 색다른 모습으로 그리게 되었고 바로 그런 것들이 새로운 장르의 미술품을 향유하려는 새로운 풍조를 만들어낸 거예요. 당시 네덜란드 화가들은 시민들의 이런 욕구와 수요에 맞춰 이야기가 있는 정물이나 풍경, 또는 이런 트로니에 이르기까지 미술작품을 기성품으로 제작해 판매했던 것이죠.

 

Q:  베르메르가 부유한 시민 구매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사용한 특별한 방법이 있었나요?

A:  베르메르는 당시 네덜란드 부자들을 타깃으로 정해 이 그림을 제작했기 때문에 귀고리뿐만 아니라 머리에 쓰고 있는 터번이나 의상에도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아요. 우선 소녀가 착용하고 있는 우아한 진주 귀고리는 유리구슬에 물고기 비늘을 칠한 모조품으로 추측되고 소녀가 입은 노란 옷은 당시 네덜란드가 국제적 교역이 활발했던 덕분에 꽤 유행했던 일본풍 옷이에요. 그리고 머리에 쓴 푸른색 터번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건너온 듯한 디자인이죠.

 

이들은 하나같이 네덜란드의 돈 많은 부유층이 선호하는 고가의 사치스러운 것들이었어요. 게다가 베르메르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비싼 물감을 이 그림을 그리는 데 아낌없이 사용했어요. 당시 유화물감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었어요. 유화물감은 말 그대로 기름에 색을 나타내는 재료를 섞어 사용하는 것인데요. 색깔에 따라 금보다 비싼 경우도 있었어요. 특히 파란색이 그랬죠.

 

Q:  물감 값이 금보다 비쌀 수도 있나요? 그리고 파란색이 다른 색들보다 왜 그렇게 비쌌나요?
A:  파란색의 재료로 ‘청금석’을 사용했는데 이 청금석이 아프가니스탄의 어느 광산에서만 소량 생산되는 귀한 재료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물 건너왔다’라는 의미로 예전부터 파란색을 ‘울트라마린’이라고 불렀죠. 그래서 중세 시대에도 파란색은 예수님의 옷이나 성모님의 옷 색깔처럼 중요하고 가장 고귀한 대상을 그릴 때만 사용했어요. 베르메르는 이렇게 비싼 ‘울트라마린’을 소녀가 머리에 쓴 터번에 아낌없이 사용했으니 이 그림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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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베르메르는 어떤 작가였나요?

A:  베르메르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살았던 작가인데요. 델프트에서 출생했고 작가와 상인을 겸했고 자녀가 12명이었다는 몇 가지 사실 외에는 별로 알려진 게 없어요. 게다가 남겨진 작품도 30여 점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을 보면 뛰어난 색의 조화와 정밀하면서도 고요한 아름다움이 탁월하게 표현되어 있어요. 그런 베르메르 그림의 아름다움을 ‘정중동의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하는 학자들도 있어요. 즉, 조용히 있는 가운데 어떤 움직임이 느껴지는 묘한 아름다움이라는 거죠. 베르메르는 역사화나 풍속화의 경우 주로 뒷 배경과 조화를 치밀할 정도로 완벽히 구현하지만 뒷배경을 그냥 까맣게 칠해놓고 모델의 아름다움에만 집중시키는 그림은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가 유일해요.

 

Q:  끝으로 이 작품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를 어떻게 보십니까?

A: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우리가 모르는 역사 속에 존재했던 전설적인 미인 클레오파트라도 아니고 우리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비너스 여신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우리 주변에서 우연히 만나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라는 트로니가 증명하듯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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