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임용 지원자들에게는 입사지원서 접수만 마치면 곧바로 필기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목적인데요. 비슷한 이유로 비교적 예산이 충분한 일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도 자기소개서 불성실 작성자 같은 부적합 지원자만 제하고 거의 모든 지원자에게 필기전형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제한된 예산 안에서 채용을 완수해야 하는 대부분의 조직은 다음 전형 대상자를 선발하는 서류전형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이때 입사지원서는 지원자의 ‘직무능력’과 관련된 ‘타당한’ 정보를 ‘적절한’ 방법으로 수집하기 위한 기준이 됩니다.
1. 스펙 중심에서 직무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부터 ‘스펙 중심 채용’이 이뤄졌는데요. 이로 인한 여러 부작용이 커지자 2015년부터 정부 주도 하에 ‘직무능력 중심 채용’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흔히 동네 문방구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이력서 형태의 비구조화된 입사지원서가 쓰였습니다. 여기에는 주민등록번호, 주소, 키, 몸무게, 취미, 특기, 종교 등의 항목을 기재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요즘 세대에게는 낯선 ‘본적’이나 ‘원적’까지 기재하는 양식도 있었습니다.
일부 대기업들은 이를 전산화한 입사지원시스템을 활용했지만 작성 항목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학점, 자격증, 영어성적, 봉사활동, 각종 수상경력 등 새로운 항목이 추가돼 지원자들의 부담이 컸습니다. 직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지식, 기술, 태도, 능력, 경력, 경험 등을 의미하는 ‘온 스펙’과 직무와 무관하거나 불필요한 인적요건인 ‘오버 스펙’에 대한 개념이 보편화되기 전, 지원자들은 온갖 종류의 스펙을 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2013년 ‘스펙 초월’이 채용시장에서의 키워드로 급부상했고, 2015년 정부 주도 하의 ‘NCS 기반 채용 컨설팅 사업’을 기점으로 ‘직무능력 중심의 채용’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입사지원서도 직무능력 중심의 면모를 갖추게 됐습니다. 공통 양식의 입사지원서가 직무별/모집분야별로 분리되기 시작했고, 취미, 특기, 종교 등 직무와 무관한 항목들은 최소화됐습니다. 대신 지식, 기술, 태도 등 직무수행에 필요한 KSAO(Knowledge Skills Abilities and Other)를 중심으로 입사지원서가 구성됐습니다.
2017년부터는 공정성 강화 차원에서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됐고, 사진, 성별, 나이같이 편견과 차별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항목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2. 타당한 정보를 요구하라
‘타당한’ 정보 수집을 위해서는 지원자들에게 입사지원서 작성에 대해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직무분석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직무분석에는 다양한 방법론이 있지만, 업무 효율성을 고려해 표준화된 직무분석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현재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널리 사용되는 NCS(국가직무능력표준, National Competency Standards)이 있습니다. NCS는 직무별로 능력단위, 지식, 기술, 태도, 직업기초능력, 자격증 등 매우 풍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보가 텍스트 형태로 기술돼 있어 이를 요약해 곧바로 적용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습니다.
민간분야에는 워크넷에서 제공하는 한국직업정보(KNOW: Korea Network for Occupations and Workers) 활용을 권장합니다. NCS에 비해 내용의 풍부함은 다소 부족하지만, 업무수행능력, 성격, 지식, 흥미, 가치관 등에 대해 수치화된 데이터를 제공하기 때문에 직무별로 상대적 비교가 가능합니다. 입사지원서를 개발하거나 평가기준을 수립할 때 보다 간편하게 활용할 수 있죠.
NCS나 한국직업정보에 없는 추가적인 직무나 또 다른 세부정보를 원한다면 미국노동부에서 제공하는 O’NET을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직무분석 데이터는 표준화된 정보를 제공해 개별 조직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한계점이 있긴 합니다만 현업 실무자와의 논의를 통해 일부 내용을 수정한다면 대단히 효율적으로 직무분석을 마칠 수 있습니다.
직무분석을 통해 도출되는 직무명세서에는 직무수행을 위해 필요한 KSAO가 포함되며, 입사지원서는 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항목이 구성돼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교육사항’ 항목에서 직무 관련 ‘지식’을 제시해 지원자가 이와 관련된 교육을 이수한 경험과 내용에 대해 작성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조직 입장에서는 지원자가 해당 직무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성실하게 준비해 왔는지 평가할 수 있고, 지원자 입장에서는 희망 직무에서 어떤 지식을 요구하는지 미리 알고 준비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마찬가지로 ‘자격사항’ 항목에서 직무 관련 ‘기술’과 관련된 자격증을 미리 제시할 수 있는데, 조직은 직무와 무관한 자격증에 현혹되는 것을 피할 수 있고 지원자는 미리 제시된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직무 관련 ‘기술’을 익히게 됩니다. 입사지원서에 ‘경력사항’과 ‘경험사항’을 구성해 지원자가 직무와 관련된 일이나 활동을 해본 경험이 있는지도 물어볼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입사지원서가 지원자의 모든 경력과 활동 내용을 작성하도록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 지원자가 해당 직무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준비해 왔는지는 해당 직무에 대한 내용으로 한정했을 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기대와 실제 업무 간 괴리가 적은 지원자를 선발하려면 넓게 퍼뜨리기보다는 분야를 좁혀야 합니다.
3. 적절한 방법을 동원하라
입사지원서에 편견이나 차별을 야기할 수 있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특정 성별이 진정직업자격(Bona Fide Occupational Qualification, BFOQ)이 아니라면 성별을 추정할 수 있거나 병역사항을 삭제한다거나, 연령제한이 없는 경우 출생 연도 또는 고등학교 졸업연도를 묻지 않는 식입니다.
유사한 이유로 블라인드 채용에 위배되는 내용이 적힐 우려가 있는 성장배경은 묻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대신 조직과 직무에 대한 ‘지원동기’와 더불어 조직의 ‘인재상’ 관련 내용을 경험 중심으로 기술하도록 해 서류전형뿐만 아니라 시간적 제약이 발생하는 면접전형에서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소개서를 포함한 입사지원서 모든 항목을 구성했다면, 직무분석 결과에 근거해 이에 대한 평가기준을 수립해야 합니다. 크게 객관적이고 증빙 가능한 내용에 대해서는 ‘정량평가’로, 주관적이고 증빙이 곤란한 내용에 대해서는 ‘정성평가’로 접근하면 됩니다.
‘정량평가’의 배점이나 계산 방식 또한 직무의 특수성을 반영해야 합니다. 직무분석을 통해 도출된 KSAO 중에서도 더욱 중요한 내용이 보다 크게 반영될 수 있도록 하되, 직무별로 평가기준을 달리 설계하는 겁니다. ‘정성평가’는 훈련된 평가자 또는 실무관리자가 주로 수행하게 되며, 평가자 간 신뢰도와 평가의 타당도를 높이기 위해 평가기준과 척도를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정의해야 합니다.
일련의 과정을 모두 거쳤을 때, 우리는 입사지원서와 서류전형을 ‘구조화했다’고 표현합니다.
4. 직무능력 중심 채용 현황
우리나라의 채용은 현재 공공분야와 민간분야가 서로 다른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우선 공공분야에서는 2015년 정부주도의 ‘NCS 기반 채용 컨설팅 사업’을 기점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입사지원서를 포함한 필기전형과 면접전형에서 평가방식과 평가기준이 구조화됐으며, 이를 통해 ‘정확한 선발 결정 가능성의 최대화’라는 공정채용의 첫 번째 요건을 갖추어나갔습니다. 그리고 2017년부터는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되면서 ‘차별적 판단 가능성의 최소화’라는 공정채용의 두 번째 요건까지 갖추어 나갔습니다.
다만, 최근 공공분야의 채용을 살펴보았을 때 다소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공정한 채용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위에 언급한 2가지 요소가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최근 공공분야의 채용에서는 ‘차별적 판단 가능성의 최소화’가 좀 더 강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절차적 공정성의 명목으로 서류 정성평가를 외부 평가위원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외부 평가위원은 다양한 조직에서의 평가 경험을 갖추고는 있지만, 해당 조직의 조직문화와 인재상에 대해서는 내부 현직자만큼 이해하고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만에 하나 발생할지도 모르는 민원 또는 감사 지적을 피하기 위해 이러한 방식을 취하는 공공기관이 적지 않습니다. 또는 블라인드 채용의 명목으로 입사지원서를 지나치게 간소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서류전형뿐만 아니라 면접전형에서도 제대로 된 평가를 곤란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반면 민간분야에서는 현실적 어려움들로 인해 ‘직무능력 중심의 채용’ 도입에 아직은 미온적인 분위기입니다. 여기에는 크게 3가지 원인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1) 대부분의 중소기업에서는 직무분석조차 온전히 수행되지 않아 ‘직무능력 중심의 채용’을 도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2) ‘직무능력 중심의 채용’이 정부 주도로 NCS를 기반으로 추진되다 보니 오히려 민간기업 입장에서 NCS 활용에 대한 부담과 오해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NCS 활용은 직무분석의 한 가지 방법일 뿐, 이 외에도 민간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분석방법이 존재합니다.
3) 블라인드 채용을 강조함에 따라 입사지원서에 출신학교, 최종학력, 외국어성적, 자격증 등을 기재하는 것이 차별이라는 잘못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인들로 민간분야에서는 여전히 직무 공통의 입사지원서 양식을 사용하거나, 취업포털에서 개개인이 작성한 이력서 양식 또는 헤드헌팅 업체가 제공하는 기존 양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매우 빈번합니다. 동일 직무에 대한 인재를 채용할 때 입사지원서 항목이 제각각인 경우, 다시 말해 입사지원서가 구조화되어 있지 않은 경우 직무능력 중심의 공정한 채용을 실행하기가 곤란해집니다. 다수의 지원자들을 일관된 기준으로 평가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평가자들의 주관적 판단에 크게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동안 민간분야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만회하기 위해 필기전형과 면접전형을 체계화하는 데 많은 고민을 해왔고 실제 과거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서류전형에 대한 구조화와 체계화에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5.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공공분야와 민간분야가 보이는 양상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적용 가능한 개선 방안이 있습니다.
1) 현재 활용 중인 입사지원서 항목이 과연 직무분석 결과에 기반한 것인지 점검해봐야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직무 관련 KSAO를 도출했다면 이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입사지원서 항목을 구성해야 하는데요, 직무능력을 검증한다는 목적으로 입사지원서 항목을 무작정 늘리기보다는 서류전형을 위해 꼭 필요한 최소한의 ‘타당한’ 정보를 요구해야 합니다.
2) 입사지원서에 직무능력과 무관한 항목이 있는지 반드시 점검해야 하는데요. 이는 블라인드 채용이 대체로 정착되지 않은 민간분야에서 특히 신경 써야 할 부분입니다. 공공분야에서는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지원서 항목을 구성하기보다는 직무능력을 검증하기 위해서라면 좀 더 다양한 항목이 추가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서류전형의 평가기준이 직무별로 맞춤 설계되어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공공기관에서는 ‘교육사항’과 ‘자격사항’에 대해서는 정량평가를 적극 도입하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경력사항’과 ‘외국어성적’ ‘출간논문’ 등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만약 개인식별정보를 제외한 과거의 정량평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면, 이를 이후 전형 및 입사 후 평가결과와 종합적으로 분석해 평가기준을 정밀하게 다듬어 나가는 작업을 수행해야 합니다.
4) 최근에는 IT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정성평가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블라인드 사항 기재 여부’ ‘회사명 오기재’ ‘의미 없는 철자 반복’ ‘표절’ 등에 대한 검증 정도는 인공지능 기반의 솔루션이 기대 이상으로 잘 처리하고 있으며 앞으로 점점 더 나아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기존에 다수의 지원자에 대해 자기소개서를 전부 읽고 평가하기 어려웠던 조직에서는 이러한 IT기술을 활용할 부분과 평가자의 정성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을 구분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가령 IT기술을 활용해 적정 배수의 지원자를 한 번 걸러낸 후에 평가자를 투입하면, 평가시간이 단축돼 평가자의 부담과 피로도가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지원자 한 명 한 명을 보다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6. 스크리닝 아웃에서 셀렉트 인으로
서류전형에 대해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자면 역할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공분야와 민간분야 할 것 없이 기존에는 서류전형에서 스크리닝 아웃 Screening-Out의 역할을 주로 강조했었지만, 앞으로는 서류전형에서도 셀렉트 인 Select-In의 역할이 커져야 할 것입니다. 민간분야는 이미 수시채용 중심으로 상당 부분 옮겨갔으며, 공공기관도 직무 중심의 채용이 확대됨에 따라 수시채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수의 지원자 간 상대평가 방식이 주로 적용되는 공채와 달리 수시채용에서는 지원자의 수 자체가 적습니다. 그중에서 조직의 기준에 정말로 부합하는 지원자만 합격하게 되므로 절대평가 방식이 주로 적용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려면 평가기준이 더더욱 섬세하게 설정되어야 하겠죠.
채용에서 입사지원서는 그 조직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원자들은 여기서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합니다. 사회적으로는 대규모 공채 중심에서 소규모의 직무별 수시채용으로 전환 중입니다. 조직 입장에서 다행인 건 과거에 비해 직무분석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가 많이 수월해졌고, IT기술의 발전으로 보다 효율적인 채용방식을 도입할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지금까지 입사지원서를 입사신청서의 역할에 국한해 사용했던 조직에 진지한 고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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