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재밌게 보는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 최강록 셰프가 출연한다고 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프로그램에 매력 포인트가 가득가득하다. 개별 재료의 맛도 잘 모르는 내게 생소한 고급 요리 콘텐츠의 맛을 상상해 보게끔 하는 연출이 일품이다.
보다 보니 처음 보는 사람이 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 앉아있는데 굉장히 유명한 셰프라고 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모수'라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이끌고 있는 안성재 셰프라고 한다. 모수는 1인당 디너 32만 원을 받는 한국 유일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다. 미슐랭 3스타인데 생각보다 싸다 싶어서 검색을 더 해봤더니 역시 현재는 영업을 안 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 오마카세 열풍이 불 때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국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은 대부분 재료 원가와 인건비, 임대료가 매우 높은 편이고, 영업이익률이 5% 전후다. 인당 32만 원을 받지만 남는 돈은 16000원 정도라는 것이다. 파인다이닝에 온 손님들이 머무는 시간은 적어도 1시간 이상일테니, 회전율을 감안하면 좋은 장사라고 보기는 어렵겠다. 물론 글로벌 파인다이닝이 모두 비슷한 형편은 아니다. 미슐랭 별 수가 가격으로 직결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3개 정도면 글로벌리 대략 한화 40~50만 원선에 디너코스 음식값이 형성된다.
하지만 아무리 정성을 다하는 파인다이닝이라 한들, 한국에서 그 정도까지 가격을 올려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모수 관련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다들 가격에 놀라는 눈치다. 그러고 보니 꽤 많은 팬을 보유한 최강록 셰프도 좀처럼 식당 운영을 길게 가져가질 못했던 것 같다.
몇 년 전, 작가들에게 파격적인 고료를 지급하며 화제를 일으켰던 콘텐츠 플랫폼 '얼룩소'가 오늘 법원에서 최종 파산 선고를 받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어처구니없이 높은 수준의 고료를 주는 이 플랫폼이 탄생했을 때부터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낮은 퀄리티의 글을 쓰는 작가들이 횡재하는 플랫폼이 아닐까 싶었다. 또 글이 아무리 좋아도 그걸 읽으며 지불 의사 비슷한 걸 갖는 한국 사람들 숫자에는 한계가 있으니 어떻게 돈 버는 구조라도 변변하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됐다.
결국 걱정은 현실이 됐지만, 아예 실패한 실험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주목하던 몇몇 작가들의 경우 시가보다 후한 원고료가 주어지니 글의 퀄리티가 점차 높아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후한 원고료란 한국어 사용자라는 시장 크기를 인위적으로 확장했을 때 가능한 조건인데, 그게 갖춰졌을 때 한국어로 글 쓰는 사람들의 콘텐츠 퀄리티에 어떤 변화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뮬레이션의 느낌이 있었던 셈이다. 어쩌면 미리부터 주어진 조건에 갇히지 않고 자기 깜냥에 맞는, 충분한 글값을 받아낼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종국적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돈을 많이 받는 게 아니라, 좋은 값을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이 좋은 글을 쓰게 된다.
잘 쓰인 글이나 파인다이닝의 음식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그게 사는데 반드시 필요한 필수품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흑백요리사>에 대중이 열광하고 있지만, 솔직히 이 프로그램이 잘 된다고 해서 모수가 후원자 없이 국내에 재오픈해서 지속가능한 영업을 해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넷플릭스 프로그램을 볼 때는 한 달에 만원 정도가 필요할 뿐이지만, 모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뭔지도 모르는 음식을 준다고 하면서 하루 저녁에 32만 원씩 밥값을 받으니까. 둘은 실존적으로 다른 문제다. 결국 적당한 가격대에서 버티면서 그 둘의 경계를 부셔주는 웰메이드 요리 크리에이터가 더 많아질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흑백요리사>가 더 많은 사람이 파인다이닝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프로그램과 셰프들이 더 다채로운 음식을 선보이며 사람들을 파인다이닝의 세계로 꼬셔주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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