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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23

표현주의와 추상미술 (feat. 에드바르트 뭉크) 1. 표현주의와 추상미술 1905년, 독일의 드레스덴 공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네 명의 건축과 학생들은 그림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이들 중 나이가 가장 어린 슈미트로틀루프는 이 모임에 ‘브뤼케(Die Bruke)’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인류의 위대함은 인류가 결코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다리라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이 명칭은 여러 가지 의의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 특정한 계획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하나의 언덕에서 다른 언덕으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브뤼케의 성립은 표현주의 회화가 정식으로 탄생했음을 알리는 시발점이었다. 2. 에드바르트 뭉크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유년 시절은 매우 불행.. 2024. 2. 16.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feat. 에두아르 마네와 빈센트 반 고흐) 1.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1863년, 미술계에는 두 가지의 큰 사건이 일어났다. 낭만주의 회화를 탄생시킨 들라크루아의 사망과 앵그르가 주도하는 살롱전 심사에서 벌어진 소동이 그것이다. 소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살롱전 심사는 너무나 편파적이었고 평가의 공정성이 떨어졌다. 자신의 제자에게 유리한 점수를 주는 심사위원에 의해 입선하는 화가가 많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아름다움을 표현한 아카데미풍의 작품이 아니면 입선도 어려웠다. 결국 이런 관행에 환멸을 느낀 심사위원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났고, 전보다 훨씬 더 엄격한 기준으로 출품작을 평가했는데, 살롱전에서 낙선한 4천여 점의 작품 중에는 마네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었다. 2. 에두아르 마네 살롱전의 결과는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 소식을 접한 나폴레옹 3세.. 2024. 2. 11.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feat. 들라크루아와 장 프랑수아 밀레) 1.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1820년대에 들어서서 신고전주의 회화는 낭만주의 회화의 강한 도전을 받게 된다.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대결은 사실 선과 색채, 이성과 감성, 안정성과 역동성의 대결이었는데, 이 대결은 결국 낭만주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1814년 부르봉 왕조가 다시 부활함에 따라 프랑스혁명의 ‘자유 · 평등 · 박애’ 정신은 소멸되었고 프랑스 지식 계층은 예술 창작을 통해 마음속의 울분을 털어버리고자 했다. 정적이고 사회 현실과 무관했던 신고전주의 회화는 그들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했으므로, 보다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고자 했던 것이다. 2. 들라크루아 들라크루아(Delacroix, 1798-1863)는 화려하고 과감한 색으로 자유롭게 화가의 감정을 표현했고, 낭만주의를.. 2024. 2. 11.
로코코 미술과 신고전주의 (feat. 프랑수아 부셰) 1. 로코코 미술과 신고전주의 바로크 양식은 이탈리아, 스페인, 플랑드르와 같은 가톨릭 국가로 퍼져 나갔지만 프랑스는 달랐다. 왕권을 강력하게 쥐고 있던 루이 14세가 푸생의 고전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17세기의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루이 14세의 사망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루이 14세의 뒤를 이어 5세의 나이에 왕위를 계승한 루이 15세는 당시 나이가 어려 섭정에 의지하게 되었는데, 그는 친정 후에도 정치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국사를 스승인 플뢰리에게 맡기고는 주색에 빠져 지냈다. 향락에 물든 국왕 때문에 정치 활동의 중심도 궁에서 살롱으로 옮겨졌고, 프랑스의 정치와 예술 등은 전반적으로 궁에서 살롱으로 옮겨졌다. 때문에 프랑스의 정치와 예술 등은 전반적으.. 2024. 2. 9.
북유럽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 (feat. 얀 반 에이크와 디에고 벨라스케스) 1. 북유럽 르네상스 알프스 이북 지역인 북유럽은 예로부터 문화가 낙후된 지역이어서 그리스 로마 문화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았다. 북유럽 사람들은 좋지 못한 기후나 자연환경 때문에 이탈리아나 스페인, 프랑스인들처럼 여유롭고 낙관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했으며, 장장 천여 년 동안 계속된 중세시기에도 이들의 가톨릭교는 오래되고 신비한 고딕 문화의 흔적을 지우지 못했다. 고딕양식의 신비로움과 현실에 대한 높은 관심은 북유럽 르네상스의 특징으로, 회화 작품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2. 얀 반 에이크 유화 작품은 9세기말에 처음 나왔지만 유화 기법을 발전시킨 것은 플랑드르의 에이크(Jan Van Eyck, 1395?-1441)이다. 그는 피마자유, 수지(樹脂) 등을 사용해서 색을 배합했고, 이 새로운 기법으.. 2024. 2. 9.
이탈리아 르네상스 (feat. 레오나르도 다 빈치) 1. 이탈리아 르네상스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콘스탄티노플을 로마제국의 수도로 정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죽은 후 로마는 동로마와 서로마로 양분되었고, 그 후 476년 서로마제국이 야만스러운 게르만족의 손에 멸망당함으로써 유럽에는 암흑기라 불리는 중세시대가 도래한다. 장장 천 년에 달하는 중세에는 문화와 예술이 크게 퇴보했다. 이에 비해 강력한 왕권으로 제국의 통일을 유지하고 있던 동부의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은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내며 천여 년 가까이 제국을 유지해 냈다. 그들은 서유럽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러나 1453년, 오스만제국의 군주인 모하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함에 따라 비잔틴제국의 영화도 막을 내렸다. 비잔틴제국의 몰.. 2024. 2. 8.
바티칸 미술관 (feat. 가장 작은 나라, 가장 큰 미술관)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의 시내 가운데 위치한 도시 속의 도시 바티칸 시국은 면적이 0.44제곱킬로미터에다 인구는 1,000여 명인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지만, 한 국가가 면적당 보유한 미술품의 숫자로 보자면 바티칸은 세계 최강국 중 하나다. 바티칸은 주권 국가인 동시에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다. 다만 바티칸 박물관(미술관)이라는 공식적인 명칭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어로 ‘Vatican Museums’, 즉 복수로 표현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바티칸은 여러 미술관, 박물관이 모여 있는 예술 복합 단지에 가깝다. 오늘날 바티칸에는 50여 개의 크고 작은 미술관, 박물관들이 모여 있다. 그중 관람객들에게 유명하고 인기 있는 곳으로는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 키아라몬티 미술관, 바티칸 회화 갤러리,.. 2024. 2. 7.
아카데미아 미술관 (feat. 우피치가 결코 갖지 못한 것) 피렌체에 하루만 머물러야 한다면, 우피치 다음으로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가 볼 것을 추천한다. ‘아카데미아’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원래 18세기말 합스부르크 왕가의 토스카나 공 레오폴드(후에 오스트리아 황제 레오폴드 2세)가 설립한 왕립 미술원이었다. 이 오래된 미술 교육 건물이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올라서게 된 계기는 1873년 피렌체시가 의 전시관으로 이 건물을 선정한 덕분이다. 그때까지 거의 500년 가까이 시뇨리아 광장에서 풍찬노숙하던 을 위해 이후 장장 9년에 걸쳐 전시관 건설을 마무리하고 1882년 공식 개장했다. 그 후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전 세계에서 방문객을 불러들이는, 특히 미켈란젤로의 팬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일종의 성지가 되었다. 전무후무한 조각 - 내가 이 조각을 마주한 .. 2024. 2. 6.
파블로 피카소 (feat. 현대 미술의 제왕) 입체파 화가인 피카소는 스페인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초기에 르누아르, 툴루즈, 뭉크, 고갱, 고흐 등 거장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미술 양식은 초기 청색 시대를 거쳐 입체주의 미술 양식을 창조하였고 20세기 최고의 거장이 되었다. 파블로 피카소는 입체주의의 창시자로 양식과 매체의 변경에도 기교, 독창성, 해학에 한계가 없이 다양한 작품을 제작했던 20세기 최고의 거장이다. 초기 청색 시대를 거쳐 종합적 입체주의까지 입체주의 미술 양식을 창조했다. 아방가르드 미술 모임에 핵심인물로, 많은 미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피카소는 1881년 스페인의 말라가에서 미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림을 그릴 정도로 그리기에 재능이 있었지만, 읽기와 쓰기는 더뎌서 졸업하기가.. 2024.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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